산지 한참 되었는데 10년 이상 모셔만 두다가 이제야 완독했어.
작가의 필력에 빨려들어간 첫 부분은 미쯔랑 타카가 S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 둘의 기억이 너무 다른데, 제국주의 노선를 걷다가 패전한 일본의 근대에 대한 두개의 시선 같아서 재미있었어.
그리고 후반부에 타카가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린치나 사형의 처벌을 받으려고 기획할 때 미쯔가 한치도 용서 없이 밀어붙이며 도망갈 구석을 차단하는 부분도 몰입해서 읽었다. 보통은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감각적으로 느끼기는 하지만 그걸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잘 안 되잖아.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분석해서 글로 써낼 수 있는 것도 대단하고 동생을 말로 밀어붙여서 공격하는 그 날카로움. 나까지 코너로 몰린거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어. 물론 개폼 잡는 등장인물들의 오글거리는 장면에 부끄러워지는 거와는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임. 읽으면서 아 이거 동생 부끄러워서 죽을거 같은데 싶었는데 역시나 그런 결말이더라.
그런데 후반에, 친구의 죽음에 대해선 그렇게 힘들어하고 고뇌하던 미쯔가 정작 자기 동생의 죽음은 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좀 김 빠진 듯한 기분은 들었다. 증조부 동생의 비밀과 S형의 죽음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발견해도 이미 동생이 죽었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고 오히려 더 허무할 거 같은데. 친구는 기괴하게 죽었고 친구가 왜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어서 힘들었지만 동생의 죽음의 이유는 명료하고 자신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선 당연한 결말이라는 정당화 기재가 미쯔의 내면에 있어서 인가?
민중의 폭력적인 봉기에 대해서 그 시작 과정과 끝을 담담하게 그려낸 것도 좋았어. 말랑말랑한 휴머니즘으로 접근해서 참가한 민중 하나하나에 서사를 부여하며 다들 자신만의 사정이 있고 민중은 무조건 선하다는 방식으로 접근한게 아니라, 냉정하게 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비위생적이고 이기적이며 잘 선동되고 폭력적인지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도 그들의 에너지를 부정하지 않으며 마지막에 희망을 남겨놓는 방식이 좋았다.
다음엔 오에 할아버지 단편선집 읽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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