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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서 신화사 사장과 인민일보 총편집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등을 지냈던 우렁시(오냉서)의 회고록입니다.

우렁시는 문화대혁명 시절 실각되었다 덩샤오핑 시대에 복권되어 라디오텔레비전부장(장관)과 광둥성 서기 등을 지냈지만 이 책은 거의 문혁 이전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습니다. 문혁 이후의 이야기는 아주 가끔 나오는 정도입니다. 참고로 광둥성에서 일할 때 그의 상급자(제1서기)중 한 명이 시중쉰(시진핑 부친)이었습니다.


원래부터 한 편의 책으로 나온 게 아니라 저자가 생전에 작성했던 여러 글들을 묶어서 출판한 것이라 비슷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2. 원래 회고록이나 자서전이라는 게 거의 '자기에게 유리한 점은 부풀리고, 불리한 점은 언급하지 않거나, 약간의 거짓을 섞거나, 변명을 포함하거나 하기 때문에' 무작정 책에 나온 내용을 맹신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나오는 정치인(또는 그 가족 등 주변인들까지)들의 회고록은 모두 당의 검열/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나오는 회고록들은, 자오쯔양 회고록(『국가의 죄수』) 같은 경우가 아닌 한, 거칠게 말해서 저자와 공산당의 공동 집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서문에서 "본 문집은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의 심사를 거쳤다"(p.29)면서 이 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정확히 당의 공식 역사 해석을 따릅니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가장 뛰어난 국제정세 평론가", "신문업무의 전문가"(p.54)라거나 류사오치에 대해서는 "관점이 선명하고 예리[…] 논증이 충분하고 논리성이 강한 뛰어난 장점"(p.293)을 가지고 있다고 높이 평가합니다.


반면, 옌안 시절부터 마오의 칼로 활약했지만 사후 공산당에서 제명된 캉성과 국가주석직 재설치를 주장하다 실각한 천보다 등에 대해서는 아주 비열한 음모가 정도로 묘사됩니다.


한편, 주더에 대해서는 "붙임성이 좋고 후더분한 연장자"였다며 "얼핏 보면 취사부나 마부로 오해하기 딱 좋은 인상"이고 "수장으로서의 용모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p.39)다고 평가했습니다.


주더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무렵부터 나이가 많아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데(마오의 주치의였던 리즈수이의 회고록에서도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죠), 최고 지도부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3. 사회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당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활동해야 안전한데다 인민일보는 원래부터 일반적인 신문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이니 더더욱 그렇죠. 마오가 인민일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유명한데, 닉슨이 마오와 회담을 하다, 마오가 인민일보의 구체적 편집 방향에 대해 지시하는 걸 보고 놀랐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인민일보 편집에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최고 지도부가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오는 저자를 자주 불러 이것 저것 지시를 내리곤 했는데, 그 중에서도 구체적 상황이 아닌 신문에 대한 마오의 일반론적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이 특히 흥미롭더라고요.


"작은 소식에서 큰 평론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앙에 보고해 지시를 받도록 하고, 중앙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독립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글자 하나 글 한 마디일지라도 독립성을 주장해서는 안 되며, 신문사 내부에서 자유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p.54)


"무릇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에는 모두 자유가 있다. 무릇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는 모두 자유가 없다." (p.122)


이건 마치 스탈린이 말했던 "소련에는 언론의 자유가 존재한다. 다만 부르주아에만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뿐이다"라는 대사가 떠오르는군요.


4. 흐루쇼프 시절 소련이 헝가리에서 철군하려 하자 중국이 "역사의 죄인이 될 것"(p.94)이라고 지적했고 결국 소련은 군대를 헝가리에 계속 주둔시키로 결정했는데 이때 소련 간부들이 중국 대표단에 뜨겁게 배웅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되어 있는데 뭐 진실일 수도 있지만 회고록 특유의 부풀리기가 아닐까 싶네요.


5. 류사오치가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스탈린 격하 연설)을 비판할 때 '개인 숭배'가 아니라 '개인 맹신'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중국 내에서 마오쩌둥 개인 숭배에 불똥이 뛸 까 그런 것 아닐까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6. 1945년 8월, 마오쩌둥은 장제스가 "항일전쟁 승리의 성과를 빼앗아가려"(p.64)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요즘은 공산당은 중일전쟁때 세력 키우기에 급급했고 진짜 항일에는 거의 활약하지 않았던 걸로 정리되고 있는데, 상당히 재밌게 느껴진 대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