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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살구꽃 필 때」



  숫돌이 나뻐서 날이 잘 서지 않는 것이었다. 안해의 편리를 위하여서 진종일 식도(食刀)를 갈고 있는 것이었다. 김치가 꽤 잘 써러지겠지.

  안 보아도 사방에선 쑥니풀 같은 것이 오손도손 오손도손 생겨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오히려 똑똑한 발음이었다.

  보면, 눈앞에는 살구꽃도 한주 서있는 것이었다. 내가 포이엘바흐를 읽던 것보다는 소얼찬히 독서를 잘하는구나, 벌이여 벌이여 꿀벌들이여.

  사실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수(潮水)는 들어왔다 그냥 왜 써버리나. 발톱이 빠알간 농발이란 거이들. 두 눈이 멀어빠진 장님의 무리. 나를 용서한다던 너. 소상강(瀟湘江)…… 파촉(巴蜀).……


  흙바람은 또 어찌도 많이나 불었든지, 안해는 미련하게 배만 자꾸 불러오고, 정말이지 나는 미안하여서 안해의 식도를 갈아주는 것이었다.

  "다 갈았어요?"

  "들 갈았어요"

  "다 갈았어요?"

  "들 갈았어요!"

  "다 갈았어요?"

  "들 갈았어요!!"


  진종일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었다.

  돌아다보는 서쪽에는 벌써 해가 없고, 못난 빌어먹을 것! 버꾹새도 새로 나온 놈이 벌써 기진(氣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세상에 원수도 하나 없는 것이었다.



- 『문장』(1941.4.); 『현대시집 3』(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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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필 때」는 『문장』 1941년 4월호에 실려 있다. 『화사집』이 나온 것이 2월이었으니 처녀 시집 출간 직후에 발표된 셈이다. 시집에 수록하려면 1946년에 나온 제2시집 『귀촉도』에 넣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후 6.25가 발발하기 직전에 정음사에서 총 세 권으로 된 『현대시집』을 출간하는데, 3권에 실린 서정주 편에서는 「저녁노을처럼」과 함께 시집 미수록 시편으로는 유이(唯二)하게 시인의 자선 작품 중 하나로 올라 있다. 『귀촉도』 속에는 이 시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시 「밤이 깊으면」이 실려 있다. 「밤이 깊으면」의 마지막 줄에서 언급되는 '단도(短刀)'는 「살구꽃 필 때」에서의 '식도(食刀)'와 연결되는 면이 있는데 유사한 주제를 관념적으로 다시 써본 것 같다는 인상도 준다.


이 시에 대해서는 유종호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어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처자식을 둔 백수의 비참한 심정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는 점, 그 점에서 역시 시집 미수록 작품인 「풀밭에 누어서」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점과 함께 "처음 발표되었을 때 분량이 길고 사설이 길었으나 반쯤 줄이고 특히 끝부분을 과감하게 잘라서 깔끔해졌"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다. 다만 '소상강'과 '파촉'이 언급되는 1연 4행은 발표 당시의 청승맞은 사설을 생략하다 보니 난해해진 면도 있다. 명색이 포이에르바흐까지 읽을 줄 알면서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칼 갈아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은, 그래서 분노가 치솟으면서도 자신이 '세상에 원수도 하나 없는' 우스운 처지임을 자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잡설이 두어 페이지나 더 많은 발표 당시의 원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