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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사주팔자」
대왕이나 성왕이나 왕중왕짜리가 적어도 될랴면은
되도록이면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되게 야합해서 낳은 게 좋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하느님이라든가 햇님의 넋을 붙어 그랬노라고
그 핑계가 아주 썩 잘 풍류로 된 아이가 좋나니,
그러구선 또
이걸 자알 이해해 맡아 길러 주는
성인 같은 의붓아비가 있어야 하나니,
이 사납기만한 팔자로 태어난 고주몽이여.
그대는 무엇보다도, 무기를 일등으로 잘 다루고,
참말보다 나은 거짓말을 골라서 자알 해내고,
죽게 되는 마당에는
비호(飛虎)같이 아주 잘 뺑소니를 칠 줄도 안다면,
그대 어느 구석땅에 몰릴지라도
아무렴, 대왕이나 성왕 하나는 너끈히 될 것이오,
또 어쩌면
한 나라의 시조왕(始祖王)까지도 될랴면 될 것이니라.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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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숱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 말 그대로의 순수시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가당한 일이냐고. 그러나 서정주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김우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근교의 이녕 속에서」는 오늘의 도시의 흙탕물--사회상을 이야기한다. 이 흙탕은 '썩은 뼉다귀와 살가루와 피바랜 물의 반죽'이다. 이러한 반죽을 건너가거나 그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되기 위하여서는 '심줄', '눈치', '묻거나 튀어박이는 기교'를 훈련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에는 여러 가지의 경력이 필요하다. '사환', '좀도둑', '거지', '안잠자기', '창부'--이러한 직업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뒤에 인용된 마지막 대목이다. '이것 위에 씨를 뿌려 돼지를 길러 (…) 그래. 또 한 벌 도복 지어 입혀서/ 국립 서울대학교라도 졸업시켜서/ 순수파라도 만들어 놓을 터이니/ 꾀부리지 말아라.' 여기서의 '순수파'란 비꼬듯이 쓰인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순수파'일 뿐이지 순수한 사람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순수의 추구는 이 '흙탕' 위에서 생겨나는 법인 것이다.
자신을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를 추구할 뿐인 사람으로 지칭한다는 점에서 「근교의 이녕 속에서」는 서정주의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의 하나이다.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사주팔자」는 「근교의 이녕 속에서」와 동일한 현실 인식을 공유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 시는 현실과 함께 '팔자'의 문제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설화적인 내용을 시인이 현실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데에 있다. 시에서의 입담에 따른다면 고주몽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만드는 역할의 절반은 미화된 어머니 유화의 임신과 권력자 금와의 비호라는 그의 '팔자'에서 비롯된다. 그 해석이 옳냐 그르냐보다도 그만큼 한 인물의 성공 원인이 선대의 능력과 비전에 관계된다고 본 점이 중요하다. 팔자라는 절반의 기반 위에 얹힌 고주몽 자신의 능력이란 '무기'를 다루는 일, '참말보다 나은 거짓말'을 잘하는 일, 그리고 '뺑소니'이다. '흙탕' 속에서 '순수파' 시인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매한가지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대왕이나 성왕'보다 '시조왕'을 높게 치고 있는데 이 시의 앞에 「왕 금와의 사주팔자」가 또 실려 있어 이 점에서 대비된다. 금와가 왕밖에 못 되고 고주몽이 '시조왕'까지 된 것은 팔자의 힘인가 능력의 힘인가? 이를 셈해 보는 것은 언제나 재밌고 허망한 일이다.
안잠자기 명사 여자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 일. 또는 그런 여자.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