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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그렇지만 중국은 고위 지도자의 글이나 발언 내용을 모아 <선집>이나 <문선>으로 출간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것으로는 <마오쩌둥 선집>(제1~4권)과 <덩샤오핑 문선>(제3권) 정도가 있는데, 지난 2019년에 <후야오방 문선> 한국어판이 출간됨에 따라 한 가지가 더 추가 됐습니다. 참고로, 후야오방 문선 중국어판은 2015년 출판됐습니다.


2. 후야오방이라는 이름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라는 이름과 1989년의 천안문 사태는 대부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후야오방은 그 두 가지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덩샤오핑 시절 당의 '공식' 1인자로 개혁 개방에 앞장선 사람이 바로 후야오방이었고, 1989년 천안문 사태도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은 '인민' 해방군이 '인민'에 총을 들이 댔고 이후 중국 공산당이 잊고 싶어 하는 흑역사가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후야오방은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중국의 공식 입장은 여러 모로 애매했습니다.


3. 그래서 <후야오방 문선>은 그가 당 총서기직에서 내려온 지 28년만에, 사망을 기준으로 따지면 26년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후후임 총서기였던 장쩌민의 <장쩌민 문선>이 그보다 9년 빠른 2006년에 출간됐고, 후야오방의 후후후임자였던 후진타오의 <후진타오 문선> 역시 <후야오방 문선>이 나오고 겨우 1년만에 나왔다는 점을 보면 <후야오방 문선> 편찬과 출간이 얼마나 늦었는지 감이 오실 겁니다.


후야오방 문선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중국 공산당과 중국 현대사에서 후야오방이 얼마나 뜨거운 감자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4. 물론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됐습니다. 당연히 2015년 시점에서의 중국공산당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 뽑아 내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제외 했을 것입니다. 이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후야오방은 어린 나이에 대장정에 참가했고 여러 전투에서 사선을 넘나 들며 성장해 왔습니다. 당연히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제도"(p.312)라고 주장했고, "인민 특히 청소년을 […] 그들이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부패사상의 침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p.753)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의 중국공산당이 절대적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다른 사람들, 특히 비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덩샤오핑이 지시한 '부르주아 민주화'에 반대하며 '정신 오염을 제거하기' 같은 것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는 후야오방 실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덩샤오핑이 후야오방을 사상 면에서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끌어 내리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도 이런 부분은 거의 빠져 있습니다.


5. 당시 중국의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가난하다는 것과, 종신제로 간부들이 죽을 때까지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입니다. 덩샤오핑은 우리 지도 간부들의 노쇠 현상은 거의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고, 천윈 역시 거의 매일 간부들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면서 진짜 일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종신제 폐지와 지도부 세대 교체를 제기했습니다.


이 책 곳곳에서도 이 점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납니다. 후야오방은 "자연 규칙은 어길 수 없는 일입니다. […] 예젠잉, 덩샤오핑, 천윈, 리센녠 등 동지들은 원로 동지가 일부 다른 착오를 범하는 것을 가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젊은 후계자를 하루 빨리 양성하지 않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사적인 착오를 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p.369), "후계짜 육성이 원로 동지들의 첫 번째 임무"(p.194)라고 말했습니다.


6. 마오쩌둥에 대한 그의 평가도 1981년 당 중앙위원회에서 채택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의 시각을 그대로 따릅니다. 즉, 다시 마오의 깃발을 높이 들되, 마오쩌둥 사상과 마오쩌둥 개인을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마오쩌둥 동지를 완전히 부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 […] 마오쩌둥 동지에게 이런저런 결함과 착오가 있긴 하지만, 그의 기여가 가장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야 합니다. (p.227)"

"마오쩌둥 동지의 위대한 공적뿐만 아니라 그의 심각한 착오도 충분히 언급해야 합니다." (p.281) "마오쩌둥 사상은 전당의 지혜를 모아 놓은 총집합입니다. […] 마오쩌둥 사상은 단지 그의 개인 지혜의 결정체가 아니라 전당의 지혜가 응결된 전당 지혜의 결정체이며,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우리당의 인식과정을 반영한 것입니다. 마오쩌둥 사상은 단지 그의 개인 재능의 표현이 아니라 전당이 분투한 성과입니다. (p.285)"


7. 지금 시점에서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계획생육(1자녀만 낳기)에 대한 부분이 그것입니다.


"중국의 경제와 사회발전에서 인구문제가 줄곧 극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계획출산은 중국의 기본국책입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인구를 12억 명 이내로 반드시 통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출산의 고봉기에 들어서 인구성장이 지나치게 빠른 실정입니다. 이는 1인당 소득의 향상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양식과 주택 공급, 교육과 취업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 는 데에도 모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 안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계획출산 업무에 대한 강화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p.547)"


8. 800페이지가 넘는 데 대체로 번역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종종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예를 들어 11기 3중전회를 3차 대표대회로 잘못 표기한 부분이나 중국인 인명을 현지식 발음과 한국식 한자음으로 섞어 기재했다는 점, 같은 페이지에서도 음체와 '합니다'체가 섞여 있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문제를 빼고 보면 전반적으로 번역은 나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