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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이래저래 바쁜 일도 생기고 딴 데 한눈을 판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저번 달 보다 독서량이 저조하다. 다음 달은 더 분발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달에 읽은 책들을 정리해 보겠다.


1. 도시와 개들 (La ciudad y los per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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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은 타고난 범죄자들이야.’ 피탈루가가 말했다. ‘그놈들은 그 어떤 벌을 받아도 배우지 못한다니까. ‘ (…) ’생도들은 타의에 의해,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도 군사고등학교로 오기 때문이야.‘ 감보아가 말했다. ‘그게 문제야.’”

- 도시와 개들 中 -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태생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의 첫 장편소설 도시와 개들을 읽어봤다. 작가가 어렸던 시절 문학에 심취해있던 그를 고깝게 본 작가의 아버지가 아들을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 보겠다며 강제로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에 진학시킨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시절 작가가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지난 몇달 간 바르가스 요사의 또다른 작품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염소의 축제를 워낙 감명 깊게 읽어서 그의 작품을 더 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그가 군사학교에서 보냈던 2년의 세월이 유달리 눈길을 더 끌어서 본 작품을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한밤중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 화장실에서 한 무리의 5학년 생도들이 주사위를 굴려 이들 중 거사를 치를 누군가를 주사위를 굴려 추첨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들의 정체는 ‘왕초그룹’ 이라고 불리는 5학년 생도들의 사조직으로 싸움을 잘하는 ‘재규어’라는 별명의 생도와 그를 추종하는 ‘왕뱀’, ‘곱슬머리’, 그리고 ‘산골 촌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포르피리오 카바로 구성되었다. 원래는 이들이 3학년이었을 당시 온갖 똥군기를 부렸던 상급 학년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자경단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현재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동급생들의 보급품과 시험지를 훔쳐 비싼 값에 파는 일로 범죄조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날은 누가 화학 시험지를 훔칠까 추첨하는 중이었는데 이 일의 책임자로 포르피리오 카바가 당첨되었다. 카바는 야음을 틈타 성공적으로 시험지를 훔치는데 성공하는 싶었으나 예기치 못하게 유리 창을 하나 깨버리고 말았고, 그날 불침번을 서던 리카르도 아라나 생도가 이를 몰래 목격한다. 아라나는 동급생들이랑 달리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지 않고 성격이 부드러운 편이었는데 이 때문에 3학년 시절부터 왕초그룹의 눈밖에 나서 2년 동안 끔찍한 따돌림에 시달렸고 ‘노예’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는다. 그나마 아라나가 가깝게 지내던 동급생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라는 생도인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글솜씨도 보기 좋게 다듬왔던 덕에 동급생들에게 야설을 써주면서 용돈벌이를 해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위인으로 아라나도 그에게 짝사랑하는 여자인 테레사에게 쓸 러브레터를 의뢰하곤 했다. 하지만 상기한 시험지 도난 사건이 학교 당국도 인지하며 진범이 나타가기 전까지 전 생도들의 외출을 금지하는 연대처벌을 내린다. 안그래도 이전부터 도난당한 보급품 때문에 외출금지를 당해온데다 왕초그룹에 반감이 있었던 아라나는 짝사랑을 만나기 위해 몰래 학교 당국에 카바를 고발해 외출 허가를 얻어냈고, 이후 카바는 영창에 끌려가고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에 단단히 화가 난 왕초그룹은 눈에 불을 켜고 밀고자 색출에 나선다.

대충이나마 스토리라인을 요약해 놓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한 사건을 따라 이야기가 정직하게 달려나가는 선형적인 구조가 아니라 과거 회상과 현재를 시도때도 없이 넘나드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비선형적인 구조를 갖췄다. 더군다나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인물도 한명에 그치지 않는데,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리카르도 아라나의 이야기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신원 미상인 화자의 이야기들이 죄다 섞여 있다. 복잡다난한 일화들이 초반부터 몰아치는데다 이야기의 템포도 조금 느린 편이라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때까자만 하더라도 작가의 다른 작품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비교하며 왜 이렇게 스토리가 늘어지는지 마음 속으로 투덜댔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각 일화들이 연결고리가 눈에 띄면서 어느 정도 이야기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뭔가 퍼즐을 맞춰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신원 미상의 화자들의 정체를 가지고 긴장감 있게 극을 이끌다가 후반 들어서 이를 통해 반전을 일으키며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작가의 필력을 보고 꽤나 감탄했다.

작중 배경이 되는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는 다양한 지방, 사회적 배경, 인종으로 구성된 생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실제로도 다인종 국가인 페루의 축소판 같은 곳인데 본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페루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지역감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가령 예를 들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백인인 알베르토가 유색인종들을 혼혈이라며 꺼려하거나 흑인 혼혈 생도인 바야노를 급우들이 ‘검둥이’라고 부르며 놀리는 장면도 있고, 수도인 리마가 있는 해안가 지역 출신의 왕뱀이 안데스 산맥이 있는 고산 지방 출신 사람들에 대해 비겁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가지며 꺼려하는 장면들이 있다. 더불어 작중 학교가 군사학교이라서 억압적인 면학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생도들이 부모의 강권으로 학교에 진학했다보니 규율에 순순히 복종하기 보다는 도리어 반감을 가지고 흡연과 음주는 기본에 학교 무단이탈과 성욕 해소를 위한 수간, 도박, 절도 등을 저지르며 탈선하는 경우가 잦았다. 학교에서도 탈선 행위를 엄히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그 규모가 크니까 학교의 명예 길추를 막기 위해 생도들의 비행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아이러니한 행태를 보인다. 자신의 학창시절을 통해 바르가스 요사가 거침없이 폭로하는 페루의 악습과 군부의 부패상을 보노라면 페루에서 이억만리 떨어진 곳에 사는 한국인들도 기시감을 느낄 만한 대목들도 눈에 띄었다. 상술하였듯이 초반 부분이 늘어지고 독자에게 불친절한 부분이 있어서 마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젊었을 때부터 탄탄히 다져진 바르가스 요사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니만큼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2. 사랑의 사막 (Le Désert de l'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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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우리를 사랑해 준 사람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그들의 사랑이 쉬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작품인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만들 의도를 가진 적이 없다 해도."

- 사랑의 사막 中 -

프랑스 가톨릭 문학의 대가이자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 (François Mauriac) 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의 사막을 읽어봤다. 한국에서는 어째 작가의 작품 보다는 작가의 어록(?)인 "나는 독일이 너무 좋다. 그래서 독일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로 더 유명하다. 그래도 불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작가들을 살펴보면 한 번씩은 모리아크가 한 번씩은 언급되길래 기회되면 이 사람의 작품은 읽어 보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보니 사랑의 사막 한 권이 새 책이나 다름 없는 상태로 책장에 꽃혀있는데다 가격도 5,000원이 채 안 되길래 바로 사왔다.

이 책은 레몽 쿠레주라는 35세의 남자가 17년간 마리아 크로스라는 여자를 상대로 복수심을 품고 있다가 우연히 파리의 뒤포 가에 있는 한 술집에서 그녀를 보고는 주변 테이블에 앉아 17년 전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보르도에 있었던 레몽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18세 소년이었다. 그는 학교생활에 별 흥미를 못느끼고 비행을 일삼는 바람에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악명을 떨치면서 선생님들과 동급생등로부터 공포 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다. 또 레몽의 아버지인 폴 쿠레주는 보르도에서 이름난 의사로 지역사회의 큰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지나치게 무뚝뚝한 가장이라서 항상 가족들을 냉랭히 대했고, 레몽의 누나인 마들렌과 매형인 가스통 바스크 중위와는 티격태격하기 일쑤라서 레몽은 집안에서 그닥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가족과 보르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틈틈히 공부를 해서 끝내는 바칼로레아까지 통과하며 그 결실을 맺었다. 그렇게 완벽한 도피를 꿈꾸며 여름방학을 맞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극심한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못한 채 다음 학기를 맞이하고 만다. 그렇게 여느 날과 같이 전차를 타고 등교를 하던 와중 아름다운 여인을 목도하고, 운명이 이어준 모양인지 매일 같이 그녀를 보게된다. 심지어 여인도 레몽을 의식하고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연모의 감정이 섞인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정전으로 인해 전차가 멈추게 되자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말을 섞고 각자의 정체를 밝힌다. 바로 그 순간 레몽은 이 여인의 정체가 다름이 아니라 보르도의 부호인 빅토르 라루셀의 내연녀로 뭇 여인들의 비난을 사던 마리아 크로스라는 걸 알게된다.

‘사랑의 사막’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도 본 작품은 황량하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보통 사랑은 열정적이고 생기넘치는 감정으로 여겨지는데 어떻게 이를 황량하고 무미건조하게 다룰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본작에서는 다루는 사랑의 유형은 많이 비틀어져 있다. 작중 주인공인 레몽 쿠레주, 폴 쿠레주, 마리아 크로스는 서로에게 연모를 품고 있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기 보다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상을 직조해놓고 상대방에게 끼워맞춰 정염을 불태운다. 애시당초 사랑의 초점이 완전히 잘못 맞춰져 있다보니 주인공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만이 앞설 뿐 상대방과 제대로된 교감을 나누지 못해 관계를 더 위태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 인물들이 사막과 같은 황량한 사랑에 빠져 갈팡질팡 하는 내용이 이 책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모리아크가 노벨 문학상을 단순한 요행으로 얻은 게 아닌 걸 증명하듯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엇나간 감정을 섬세하고 유려하게 묘사해냈다. 책에 적힌 문장들은 마치 햇빛에 뜨겁게  달궈진 모래알을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처럼 따갑지만 곱디 고운 질감을 뽐내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덕분에 엄청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개인적으로 꽤나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었다. 전술하였듯이 섬세한 매력이 돋보이기도 하고 분량도 230쪽 안팎으로 큰 부담이 없는데다 정가 기준으로도 가격까지 착한 편이라서 시간이 난다면 일독을 권한다.


3.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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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 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잖아요. (…) 제 생각에는요, 누군가가 뭔가에 관심이 생기고 거기에 신이 나있으면 적어도 그걸 계속 얘기할 수 있게끔 내버려둬야 한다고 봐요. (But what I mean is, lots of time you don’t know what interests you most till you start talking about something that doesn’t interest you most. (…) What I think is, you’re supposed to leave somebody alone if he’s being interesting and he’s getting all excited about something.)”

- 호밀밭의 파수꾼 中 -

미국의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가 1951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본 작품은 커다란 인기를 얻었지만 오히려 작가 본인이 작품의 흥행에 피로감을 느끼고 은둔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한 번 읽어보려고 원서 책을 오래 전에 사두기는 했는데 너무 책장에만 짱박아 두는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꺼내서 읽었다.

이 책은 한창 사춘기를 거치고 있는 고등학생인 홀든 콜필드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미국은 학제가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일요일 날 벌어졌던 일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당시에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가 펜실베이니아 주의 펜시 기숙학교라는 곳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곳에서 마저 시험에서 다섯 과목 중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받으면서 퇴학 처분을 받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홀든은 자신이 매니저를 맡고 있던 펜싱부를 뉴욕에서 열리는 대회로 인솔하다가 지하철에서 장구류를 모조리 분실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학교에 먼저 돌아와야 했고,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독감을 앓고 있는 역사 선생님인 스펜서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더니만 도리어 선생님은 낙제맞은 역사 시험지를 다시 꺼내들어 읽어주면서 그의 신경을 긁었다. 마음이 심란한 와중에 기숙사로 돌아온 홀든은  한 학년 상급생인 룸메이트 스트래들레이터를 만나는데 스트래들레이터는 그에게 위로는 커녕 데이트할 사람이 있다면서 뻔뻔하게 자신의 작문 숙제를 맡긴다. 거기에다가 그의 데이트 상대는 제인 갤러거라는 여자아이로 홀든의 이웃이자 전 애인이었는데 홀든은 여성 편력이 화려하다는 소문이 나도는 스트래들레이터에게 내심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본인의 안부를 좀 전해 달라는 당부를 남긴다. 하지만 홀든이 데이트에서 돌아온 스트래들레이터에게 자기 안부는 전해줬냐고 물어보니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반응만이 돌아오자, 감정이 폭발한 그는 스트래들레이터와 대판 싸우고 만다. 그후 홀든은 학교생활 자체에 지쳐 있기도 하고 퇴학 처분도 당한 마당에 굳이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정해진 퇴학 일자 보다 몇일 앞서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자신의 고향인 뉴욕으로 여행길을 나선다.

본 작품은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방황 중인 사춘기 소년 홀든 콜필드의 심리를 그려낸 소설이다. 홀든이 가장 혐오를 표하는 것은 가식이다. 그는 허례허식에 구애 받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과시욕에 빠져있는 위선적인 어른들과 또래들을 경멸한다. 또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학교생활을 향한 반항심도 강하다. 그러면서도 홀든은 변하지 않는 순수함을 희구하고 비록 악연으로 엮인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을 추억할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다. 이야기 내내 쏟아지는 홀든의 불평과 그가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기행들은 마냥 철부지의 치기어린 반항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진실함이 자취를 감춘 가식의 황무지에서 홀로 방황하는 한 사람의 역정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홀든의 방황은 독자로 하여금 순탄한 인생살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가식으로 치장하고 좋은 사람을 연기하려 드는지 한 번 씩은 곱씹어 보게 만든다.

이 작품이 지닌 주요 특징 중 하나로는 주인공이 10대 청소년인 만큼 1940년대 슬랭이 자주 등장하는 점이다. damn, goddamn, hell (세 단어 모두 과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슬랭), kill (의역하면 끝내준다 정도) 같이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슬랭도 있지만 hot-shot (끝내주는 사람), flit (게이) 등 한물간 표현들도 있었다. 슬랭을 천박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홀든의 불안한 심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이 작품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상술하였듯이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충분히 있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이 택이 지닌 개성도 확실한 만큼 한 번 정도는 읽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니 시간나며 한 번 읽어 보기 바란다.


4. 성 (Das Schlo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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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런데 마을의 대로인 그 길은 성이 위치한 산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다가도 의도인 양 옆으로 굽어졌다.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 성 中 -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프라하 태생의 유대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집필한 장편소설인 성을 읽어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경배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가 바로 프란츠 카프카이다. 몇 달 전 작가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인 소송을 워낙 재밌게 읽어서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성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카프카의 다른 장편소설과 마찬가지로 본작도 미완성 원고로만 남아있던 작품인데, 작가 본인이 막역한 친구이자 동료 문인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으면 미완성 원고를 전부 다 소각해 달라는 부탁을 해서 원래대로라면 이 작품은 잿더미가 되어 자취를 감출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원고의 가치를 알아본 브로트가 친구의 유언을 어기면서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난해하다는 평이 있긴 했지만 카프카 특유의 기괴함에 푹 빠진 저로서는 별 고민하지 않고 교보문고에서 새 책으로 사서 읽어봤다.

이 책은 K라는 한 30대 남성이 한밤중 어떤 성으로 향하다 바로 그 밑에 있는 한 마을에 당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워낙 늦은 시간이었던데다 몹시 피곤했던 K는 다리목 여관에서 잠시 묵기로 하지만 공교롭게도 여관이 만실인 상황이라 일단 식당 한 켠에 매트리스를 깔고 눈을 붙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한 청년이 다가와 그를 깨우는데, 이 사내는 자신을 성의 관리인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는 이곳은 베스트베스트 백작이 다스리는 성의 영지이기에 외부인이 허락도 없이 마을에 머무를 수 없다며 K를 쫓아내려 든다. 이에 기가찬 K는 자신은 도리어 백작의 의뢰로 성에 초청을 받은 측량사라며 항변하였다. 관리인의 아들은 K의 대답에 의심을 한 가득 품고 있었으나 성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K의 말이 사실이라는 답변을 받아 마지못해 그를 내버려두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K는 일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성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기이하게도 아무리 걸어도 성에는 접근조차 못할 정도로 길이 꼬여 있었다. 힘만 잔뜩 뺀 채로 허탕만 치고 온 K는 묵었던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난데없이 한 쌍둥이 형제가 자신의 조수를 자처하며 들러 붙었고 얼마 안 가 바르나바스라는 성에서 온 심부름꾼이 K를 찾아와 편지를 하나 건넸다. 그 편지는 클람이라고 하는 성의 관리로부터 왔는데 편지의 내용은 K의 초청을 환영하며 앞으로 그의 직속상관은 마을의 촌장이 맡을 것이니 그를 찾아가 일거리를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하루 뒤 K는 편지에 적힌대로 촌장을 찾아갔지만 우리 마을에는 토지 측량사가 더이상 필요가 없다며 K의 초청은 행정상 착오 같다는 황당한 대답을 받는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본작은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이다. 다른 장편소설인 소송과 비교해도 미완결성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소송은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갖춰진 상황에서 전에 해당하는 내용이 조금 잘려나간 인상을 주지만 성은 기-승 까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다 끝나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카프카의 대표작이자 불후의 명작으로 찬탄을 받는데, 이 책에는 카프카의 작품세계가 모조리 집약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내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괴함과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인 ‘성’이 내뿜는 미스테리함을 통해 악몽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는 다른 작품에서 쉬이 볼 수 없는 본작만의 개성이기도 하다. 소송과 마찬가지로 근현대 시기에 도입된 관료제에 폐단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중 성의 관리들은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로 인한 행정상 착오로 K를 비롯한 민원인들을 안달볶달 시키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성에 예속된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착취도 하고, 민원인하고 직접 만나는 것도 너무 꺼리는 나머지 이들의 심신을 지치게 하고자 일부러 야간에 민원업무를 보는 등 지극히 폐쇄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면모도 여실히 담아낸다. 또 관료제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규칙에 의거해 만사가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명문화되지도 않은 암묵의 관습으로 대소사가 결정되는 것도 작가는 놓치지 않고 담담히 서술한다. 토마스 만 말마따나 카프카는 작품을 통해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내면서 우리네 삶에 산재한 기괴한 그림자 놀이를 열렬히 비꼬고 있습다. 전술한 요소들이 작품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와 초현실주의적인 필치가 만나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이 구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본 작품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성격도 갖추고 있다. 이는 주인공인 K의 작중 행보를 통해서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성으로부터 약속받은 측량사로서의 업무에만 집착을 하지만 정작 성에는 한 치도 들어갈 수 없는데다 마을에서는 이방인이라고 배척 받으며 마을 사람들과도 섞여들지 못한다.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 또한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에 있던 프라하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체코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프라하 사람들이랑 달리 독일어를 모어로 사용하던 사람이라 이들과 적극적으로 녹아들지는 못했다. 거기에다 그는 유럽에서는 내리 배척을 받던 유대인이라는 점 때문에 프라하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독일계 주민들과도 동화되지 못했다. 심지어 작가는 입신양명만을 쫓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인해 철저히 독일식 교육만 받아왔던 바람에 유대계 전통과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작가의 인생과 성의 주인공인 K이 겪는 고립감을 비교해 보면서 기시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감상 좀 보태면 괜히 이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을 받은게 아니다 보니 읽으면서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도 책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이 책의 난이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을 드리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미완임에도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니 만큼 읽어볼 가치는 충분한 걸 넘어서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자와 같이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읽는데 얼마나 오래 걸려도 상관이 없으니 이 작품에 꼭 한 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5. 진주 (The 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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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은지 얼마 안됐는데도 흐릿한 신기루가 떠올랐다. 어떤 것은 크게 보이도록 하고 어떤 것은 형태를 가려버리는 이 불확실한 기류는 온 멕시코 만을 덮어버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만들고, 보는 이의 시각을 믿을 수 없게끔 하였다. (…) 이 때문에 멕시코 만 사람들은 영혼이니 상상속의 존재 같은 것은 믿지만, 멀리 떨어진 것이든 윤곽이 분명히 보이는 것이든 시각적으로 정확히 보이는 것이든 눈으로 보는 것들은 믿지 않았다. (Although the morning was young, the hazy mirage was up. The uncertain air that magnified some things and blotted out others hung over the whole Gulf so that all sights were unreal and vision could not be trusted; (…) Thus it might be that the people of Gulf trust things of the spirit and things of imagination, but they do not trust their eyes to show them distance or clear outline or any optical exactness.)”

- 진주 中 -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 의 중편소설 진주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스타인벡이 미국 문학에서 굉장한 입지를 가진 작가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한다고 정평이 나있어서 예전부터 그의 작품을 읽어버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 서점에서 진주 한 권을 팔고 있길래 덥썩 집어왔다. 또 본문이 90 페이지 정도로 부담이 없는 분량이라 8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로는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생각해서 한 번 읽어봤다.

이 책은 멕시코 만에서 어부로 일하는 키노라는 남자가 새벽에 부스스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부터 시작해서 3대째 카누를 타고 굴을 따며 거기에 있는 진주를 채취하는 일에 종사했는데 3대 동안 가난한 형편에도 큰 변화가 없어서 목조 움막집에서 사는 처지에 있었다. 그래도 아내인 훌리아와 갓난아기 아들린 코요티토랑 평화로이 살고 있었으나 그날 아침 지나가던 전갈 한 마리가 코요티토에게 독침으로 놔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키노와 훌리아는 고토에 신음하는 어린 아들을 업고 도심에 있는 의사에게 찾아가지만 돈에만 눈이 먼 의사는 키노 부부의 처지를 외면하고 진료를 받지 않았다. 결국 두 부부는 치료비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카누를 타고 굴 채취에 나서는데 무슨 바람인지 엄청나게 큰 진주를 발견한다. 진주가 어찌나 크고 빛깔이 영롱한지 세상에사 제일 가는 진주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키노가 어마어마한 진주를 찾았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이런 소식 때문인지 매몰차게 키노 부부를 외면한 의사도 손수 가방을 꾸려 키노의 움막집까지 왕진해서 코요티토를 치료해 줬다. 치료비는 언제 받을 수 있냐고 의사가 묻자 키노는 진주를 처분하는대로 주겠노라 대답하였다. 이후 키노는 매혹적인 빛깔을 내뿜는 진주를 보며 진주를 매각하고 훌리아와 근사한 옷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고, 코요티토를 학교에 보내는 원대한 꿈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밤새 키노의 진주를 노리는 한 남자가 움막집에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며 키노와 훌리아는 진주로 인해 자신들의 앞날에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본 작품은 진주로 인해 일가족에게 들이닥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사실 보물 하나로 인해 사람이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내용의 플롯은 고대 서사시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소재다 보니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을 전개하는데만 치중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에 변모하는 인간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작중 소박한 삶을 살아왔던 어부 키노도 영롱한 진주를 두 눈으러 직접 보게되자 평소에는 꿈만 꿔왔던 것들을 이뤄볼 생각에 부풀어 올랐고, 진주를 노리는 이들에 의해 위험에 빠지게 되어도 오로지 꿈을 이뤄보고 싶은 욕망에 집착에 빠져 진주를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더 파국에 몰아넣는다. 키노뿐만 아니라 주위 동네 사람들의 심경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평소에는 가난한 키노를 거들떠 보지 않다가 그가 엄청난 진주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네 신부는 성당 보수에 필요한 기금을 기부받을 궁리를 하고, 의사는 시키지도 않는 왕진을 가서 치료비를 뜯어낼 생각을 하는데다 동네 진주 감정사들을 어떻게든 가격을 후려쳐 키노를 등쳐먹을 생각도 한다. 이처럼 황홀한 빛을 내뿜는 진주에 현혹당하여 일그러져가는 인간 군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덕에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하다.

앞서 말했듯이 스타인벡의 문체는 꽤 간결한 편이다. 그렇다고 문장을 마냥 짧게 끊어서 쓰진 않았지만 난해한 문장은 거의 없어서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만 갖추면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문장을 구성지게 작문해 놓아서 인물 및 배경 묘사가 간단명료하면서도 감각적이다. 덕분에 읽으면 읽을수록 스타인벡의 깔끔한 문장에 매혹되어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조만간 스타인벡의 다른 대표작인 토르티야 연립주택,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도 읽어볼 생각이다. 난이도 적당하고 글맛도 음미할 수 있는 수작이니 영어 원서에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영어 책 입문작으로 주저없이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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