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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瓦家)의 전설」



  속눈섭이 기이다란, 계집애의 연륜은

  댕기 기이다란, 볽은댕기 기이다란, 와가 천년의 은하물구비…… 푸르게만 푸르게만 두터워갔다.


  어느 바람 속에서도 부끄러운 열매처럼 부끄러운 계집애.

  청사(靑蛇).

  뽕나무에 오디개 먹은 청사.

  천동(天動) 먹음은,

  번갯불 먹음은, 쏘내기 먹음은,

  검푸른 하늘가에 초롱불 달고……


  고요히 토혈하며 소리없이 죽어갔다는 숙(淑)은,

  유체 손톱이 아름다운 계집이었다 한다.



- 『화사집』(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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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이 자신의 전집 출간 직후에 발표한 글인 「떠돌이의 귀향」은 서정주의 『화사집』에서 『신라초』까지 실린 거의 모든 시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못한 작품들이 재조명되는 대목이 적지 않은데, 위의 시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와가의 전설」이 흥미로운 것은 이 시가 "서정적 설화이면서 당대의 현실과 전통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연에서, 마지막 구절에서 그 이름이 밝혀지는 '계집애'의 기다란 댕기라는 심상은 자연스럽게 와가(瓦家)의 기다란 '천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은 그가 전통에 매여 있는 처지임을 암시한다. 이로 보아 부끄러워만 하는 '계집애'의 성격 역시 그 자신의 성격이면서 동시에 전통에 의해 빚어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청사(靑蛇)'는, 그 뒤의 '오디'와 함께 파란빛을 띠는 이미지로서, 피의 강렬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화사집』의 전반적 주조에서 의도적으로 정반대되도록 만들어진 표현이다. '청사'도 뱀은 뱀이지만, 그는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지' 못한다(「화사」). 그가 머금은 천둥번개며 소나기는 마음속에 응어리로만 있을 뿐이다. '계집애'가 아름다운 손톱을 달고도 고요히 죽어갔다는 마지막 구절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강한 주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성적 억압을 견디어내야 했던 정절의 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김우창은 적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시는 관능의 존재를 과감히 인정하는 『화사집』의 주조와 정반대되는 주제를 비판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 이 정도의 수준으로 제작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