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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덕분에 전반적인 신학 전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아무래도 키에르케고르와 해석학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근현대 신학에도 흥미를 가져 읽어본 책이다. 이런 까닭에 근본주의와 같은 분파에는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적당히 넘겨 읽기는 했지만, 다행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도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좀 더 학술적이고 흥미로운 갈등과 다양한 전제들을 좀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신학에서 갖는 흥미가 마치 분재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전반적인 맥락을 이야기하자면, 합리주의는 기독교를 기존의 영역에서 몰아내기 시작했고, 기독교는 현대성modernity이 자신에게 정해준 영역을 새롭게 설정하거나, 벗어나거나, 애초에 그런 영역 설정을 무시하거나, 하는 식의 여러 가지 대응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의 우여곡절만큼이나 현대성 역시 상당한 갈등과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이미 현대성에 함뿍 젖은 상태에서 현대성을 부정하거나, 현대성의 틀에서 벗어난 탈현대postmodern의 입장에서 기독교에 던져지는 질문을 역으로 현대에 던지기도 한다.
현대성의 공격의 시초는 칸트와 헤겔인데, 구교와 신교 사이의 갈등을 뒤로 한 채 칸트는 자연과학이라는 분과로부터 신학을 분리시켜, 형이상학적인 전제들을 배제한 채 오직 윤리적인 규범으로서만 한정되는 합리적인 종교를 제안했으며, 반대로 헤겔은 그러한 전제들과 자연과학을 전부 포함시켜 세계 전체와 함께 존재하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신을 전제하는 범재신론을 제안했다. 이 두 제안은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구성하는 하나님, 예수, 삼위일체, 기적 등을 배제하거나 극단적으로 변형시키는데, 이를 수용하는 신도도 있겠지만, 신학적 반응은 그것은 기독교에서 파생된 다른 종교일 뿐이라고 하는 쪽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변화 과정에서 신도들 역시 이미 현대성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정말로 교리를 믿을 수 있느냐, 그것을 어떻게 신도에게 설명할 수 있느냐, 심각하게는, 애초에 교리라는 것이 정말로 기독교의 성립에 핵심적인 것이냐, 하는 반응까지도 나오게 된다. 논쟁적이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인물은 니버로, 자신을 기독교도로 상정하고 기독교도의 윤리성을 강력히 주장하지만 정작 그가 기독교라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믿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예전에 그의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를 다른 이유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미국인의 가치관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게 기독교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참 애매해보였다.)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관점은 해방신학이다. 예수의 강림과 수난을 억압받는 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은 현재 가장 억압 받고 있는 흑인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거나 제도에 의한 불의는 곧 하나의 폭력이라고 해석하는 참 정치적이고 상황주의적인 논지들을 보며 예전에 별 생각 없이 넘겼던 해방신학적인 예시들이 떠오르곤 했다. (디안젤로의 <Black Messiah> 앨범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수록곡인 <<1000 Deaths>>는 흥미롭게도 예수의 흑인성을 이슬람교도의 입으로 역설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아마 이런 관점은 성서를 해석학적으로 접근하되 역사적 인물 예수를 한 명의 혁명가로 보는 것과도 유사할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공감되는 관점은 바르트의 신학이다. 애초에 신학에 대한 관심사가 키에르케고르에서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 종교란 그래도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을 강렬하게 준 탓도 크다고 본다. 어쨌든 종교는 일종의 믿음, 굳건하고 타협할 수 없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할 테고,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결국 기독교라는 기획 자체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근대적 해석학의 시초를 열고 신학을 합리주의에 개방시킨 슐라이어마허가 찬사를 받는 만큼 비판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다. 믿음의 근본을 해석하는 시도는 그 해석 대상 자체를 완전한 회의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쓰고 있자니, 이런 태도야 말로 바르트에 대한 비판처럼 기독교를 게토화시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관광객으로서 찬탄하면서.
신학 하나도 모르는데도 재밌어보이네
무신론자 입장에서 왜 신이나 신학에 빠져드는지 알고 싶어서 읽었는데 신을 믿는 사람 입장에서의 신학 개론서에 가깝더라 - dc App
솔직히 나는 그런 데에 빠져드는 데에는 책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 만남이 핵심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나마 CS루이스처럼 친근하고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책 아니면 무리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