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사물들에 대한 스포 포함
조르주 페렉, 허경은 역
세계사
1996. 02. 15.
186p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들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의 입맛은 그들의 행복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해보자. 페렉은 이 소설에 '60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아두었다. 페렉은 이것을 소설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이야기. 당대 60년대 프랑스 사회와 맞물려 이 소설에는 사회학적 보고서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사회학적 보고서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제롬과 실비는 보고서 속 A와 B는 아닐 것이다. 이 글의 구체적인 장르에 있어서 당대 프랑스에서도 이런저런 담론이 오간 모양이다. 이 글에 실린 후기를 쓴 자크 레에나르트는 이 소설을 비소설적인 소설이라 칭한다. 시대의 상징. 표징. 이런 낱말들이 텍스트를 지나친다. 사회와 허구 사이에서 시대는 갈팡질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옮긴다. 상투적인 규정을 내려보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라는 말에 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옳다. 흘러간 텍스트들이 말했듯 이 소설은 자본주의에 대한 첨예한 풍자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일상사를 살펴보자. 제목처럼 이 소설에는 무수히 많은 사물들이 등장한다. 마치 두 사람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막처럼. 그 막은 '사물'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사실 매우 허상적이다. 그들은 사물의 상상을 한다. 그들의 상상은 사물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벗어난 그외에는 (소설 내에서 말하듯) 무엇도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만 같다.
소설의 도입부는 현란하고 현학적인 묘사를 통해 두 사람의 환상과 꿈을 묘사한다. 매우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환상. 물질과 환상이라는 모순이 결합되며 그들은 일종의 환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시대 자체가 환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성공을 꿈꾼다. 그들은 돈을 꿈꾼다. 그들은 현물을 꿈꾼다. 멋있는 삶, 고급진 브랜드 제품, 좋은 옷, 사랑스러운 집.
그럼 물질적이지 않은 건 무엇이 있을까. 친구들과의 관계. 상투적인 업무. 두 사람의 취미. 취향. 현상처럼 흘러가는 나날들. 사실 살펴보면 이들에겐 비물질적인 것, 그러니까 행동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다소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이들의 행동은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실제적인 바람이나 꿈, 미래, 희망 등등 무엇과도 규합되지 않는 것. 현재. 현실. 사실. 일상. 삶. 그들은 공허한 굴레를 살아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더욱 공허한 환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알제리 전쟁에 대한 언급. 그들은 여기에서도 자신들이 매우 무력하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전쟁과는 다소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모든 것이 무관한 것처럼. 전쟁이 그들을 빨아들이기보단, 그들이 그것으로나마 삶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복잡하고 기괴한 상황 후, 전쟁이 끝나고 그들의 삶은 이제 탈진에 이른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와해된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도 세월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무기력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다만 페렉은 그들을 生으로 잡아두길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흔히들 묘사되는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도 아니고, 하루하루 기업에 봉사하며 정신을 잃은 현대인의 표상도 아니다. 카프카가 그레고르 잠자를 묘사할 때처럼, 그들의 일상은 집요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자본주의라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톱니바퀴의 윤곽 하나하나를 비추어낸다. 그렇게 삶이 있고, 사물들이 있고, 허정허정, 모든 게 흘러가는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이 이것이 제롬과 실비에 관계 묘사, 대화, 친근함의 표시, 표정과 말투의 묘사, 등등 '인간적인' 묘사를 빠뜨려놓은 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제롬과 실비는 단 한 번의 발언권도 얻지 못한다. 마치 무성 영화처럼 블라인드 처리된 그들은 매우 사물적인 인간이며, 인간적인 사물이다. 그리고 <사물들>이 도달하는 곳은 바로 그들이 그려내는, 또는 그려지게 되는 하나의 궤적인 것이다.
소설은 환상에서 시작되어 현실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문장, 솔직히 그들에게 제공된 음식은 맛이 없을 것이다.는 그들이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일상의 단상들을 깨뜨린다. 아니, 깨뜨린다기보단 이미 깨뜨린 조각을 주워서 다시금 비춰보는 것이다. 전쟁 이후 제롬과 실비는 '또 전혀 다를 삶'을 찾지만 모든 게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 행복은 어디 있을까? 그것은 그들의 환상들에 있다. 사물로 둘러싸인, 그들의 현실과 전혀 감응하지 못하는, 그래서 꽉 차있지만 동시에 텅 비어있는 그런 환상에 말이다.
이 글은 그리 깊고 복잡한 소설은 아니다. 다만 복잡하고 깊게 보여질 뿐이다. 이제 더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들이 길게 이어질 때, 이보다 더 단조로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한 일상들에 생기를 부여한다.
음. 이제 더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더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이 그랬듯, 여기서 빠져나오자.
다만 제롬과 실비로부터 또 다른 삶들이 있으리라고 추측할 따름이지만, 아마 그리 중요치 않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