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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예찬하는 것은 삶을 힐난하는 것만큼 근거가 없다. 당신은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삶을 긍정할 근거는 삶을 부정할 근거를 압도하지 못하고, 후자 역시 그럴 것이며, 이 둘을 완전히 계량할 수 없는 이상 이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다. 만약 당신이 전자에 속하는 다수의 내부자라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만약 한 번이라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고, 우리가 바라본 것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보이는 섬뜩함을 느낀 적이 있고, 불합리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떨쳐낼 수 없는 운명적인 죄책감에 시달려본 적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애석하게도 당신은 고대로부터 지속된 음모에 도달했다.
누구에게도 이를 알리지 마라. 음모는 우리가 의식을 가졌던 순간, 이 의식이 우리의 생존에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음모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당신을 배척하며 하찮은 푸념으로 당신의 모든 말을 무시할 것이고, 음모를 인지한 사람은 그 뚜껑을 도저히 열어젖히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당신의 말을 묵살할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당신의 말에 정말로 공감하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이미 태어나버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정말로 그 공포의 순간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의식해버린 신을 생각해보라. 자신을 제외한 그 어느 것도 자신을 의식하지 않으며, 폭력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의 이치가 그저 그런 것일 뿐이라고 체득한 채 행동하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꼭두각시들로 둘러싸인 세상. 그 으스스함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그는, 자신과 동일한 공포를 느낄 이들을 자연에 풀어두는 것으로 공포로부터 탈출해 비존재로 돌아간다. 그리고 비존재에서 존재로 끌려나온 우리 작은 신들에게 축복을!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우리가 우리에게 너무나 이질적인 탈의식적 질서를 부여하는 자연과, 우리가 언젠가 찾아올 죽음의 공포를 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산만한 흥미 속에서 삶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의지에 끌려다니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 뿐이다.
<인간종에>는 일종의 코즈믹 호러 에세이다. 이것이 담보하는 '음모'는 코즈믹 호러 소설에 알맞은 문법으로, 마치 우리가 비슷해보이면서도 어딘가 다른 으스스한 순간을 다른 호러 소설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의 내부를 마주하도록 한다. 방 안에 널부러진 신발이 순간 신발로 보이지 않아 이 물질 덩어리가 대체 무엇인지 잠시 섬찟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처럼, 가만히 우리의 비자연적인 도덕과 무근거한 삶에의 의지를 살펴보는 순간, 그 신기할 정도의 불합리와 이 불합리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이를 배부른 자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려고 하는 끈질긴 의식에 경악하게 된다.
분명, 인간종의 연속은 하나의 거대한 음모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음모를 더 이상 음모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 우리 자신을 인간종으로부터 초월하도록 만들고자 하고, 애초에 이 음모가 가리는 대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포가 자연으로부터 튀어나온 이 의식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아름다운 자연이 통증 속에서 전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보라. 의식 없이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갖고 있지 않은 이 이질적인 자연 속에서, 고통에는 한계를 두지 않되 쾌락은 그 정도에도, 지속에도 한계를 두고 계속 살아가고자 유도하는 의지에 이끌리는 동안, 도대체 어떻게 음모로부터 벗어나려는 우리의 움직임이 최초의 음모를 만든 이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새로운 음모를 만들 뿐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러니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계획이 있다. 더 이상 그런 세상들은 없다. 더 이상 그런 날들은 없다. 네 가지 죽는 방법이 있다, 냉정한 영혼이 내게 말했던가. 비교적 갑자기 죽는 것이 있다. 비교적 서서히 죽는 것이 있다. 비교적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죽음이 있다. 곧, 이 넷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된다. 급작스러운 것과 점진스러운 것. 고통 없이, 혹은 고통 가득한 것. 최대한 양보해도 이 네 가지 방법. 그리고 이 이외는 없다."
무서웡...
무서워잉 - dc App
철스퍼거들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
세상 혼자인척하는 또존주의
딱히 그쪽이랑은 상관 없지만
코즈믹 호러가 원래 실존주의 파생물인데
내용물이 다른데 머... 됏다
내용 찾아보니까 맞는데 머... 모르면 알아가면 되는거아님?
내용 찾아봤으면 이 책이 반출생주의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그 내용이 왜 실존주의라는지도 의문이고 감상에서 쓴 내용이 기반이 되는 삽페, 마인랜더, 쇼펜하우어는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면 줬지 딱히 실존주의 기류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태어나지 않음 외에 해소 방법이라는 게 제시되지도 않은 데에다가 실존적 공포와 연관 있는 코즈믹 호러 풍으로 쓰였다고 엮이고 있으면 이건 관념론도 될듯...
반출생주의면 실존주의가 아니라는 이유도 아닌데 왜 실존주의가 아닌지도 의문이고 감상의 기반이 되는 삽페 마인랜더 쇼펜하우어 찾아보면 연관 검색어에 실존주의 나올텐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해소 방법이라는게 제시되지 않은게 실존주의고 생철학같은 개인주의적 근대철학인데 뭐가 반박인지 모르겠고 코지믹 호러가 실존적 불안 파생물인것도 팩트인데 우겨보겠다고 관념론 소환하는것도 이해가 안가고.... 그냥 니가 잘모르는데 알고 싶은척하는 쿨찐같으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존주의라고 안했다고 실존주의 작품을 쓴게아님? 파스칼도 실존주의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은데 뭐가 아니라고 빡빡 우기고 있는지
그냥 서로 실존주의를 얼마나 넓게 보느냐의 차이인 거 같은데 이건 (어차피 서로 삔또 상해서 별로 동의될 거 같진 않지만)/ 원래 있었던 쿨찐주의라는 댓글은 반출생주의에 대해서 한 말이었긴 한데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고대부터 늘 있었던 주장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해서 지웠던 댓글이라 그게 딱히 댓글에 대한 비난으로 쓴 댓글은 아님
빡빡 우기는 거야 당연히 범주를 넓게 잡고 먼저 기분 나쁘게 달았으니 나오는 반응인 거고... 도스토옙스키 글 감상 보고 이렇게 댓글 달면 비슷한 반응 나올 거라 생각하기에 그게 수긍되진 않지만 대충 스탠스는 이해했으니 걍 그런 반응이겠거니 한다
그냥 말하는거 보면 니가 실존주의가 뭔지 잘 모르는거 같은데 2차대전 이후에 나온것만 실존주의로 알앗나봐 대륙 관념론 이딴것도 그런식으로 치면 후대에 이름붙인건데 ㅋㅋㅋㅋㅋ
아니 난 키에르케고어를 그 하이데거부터의 계보 밖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라 실존주의를 좁게 보는 건데
그래서 네가 느끼는 실존주의에 대한 염증이랑 내가 느끼는 거랑 따지고 보면 비슷할 거 같아서 뭔가 흥이 식은 것도 큼
아 너는 키르케고르도 니가 규정하는 실존주의 범주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사상가임? 그렇구나 알았어!
굿
멍청하네
코스믹호러가 무슨 실존주의 파생물임? 우주의 구조 자체가 개인의 실존과는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며 그 구조 속에서 각 개인들은 우주가 짜놓은 판의 별볼일 없는 역할의 꼭두각시로 존재함을 깨닫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인데.
코스믹호러는 우주가 내팽개쳐 놓아 갈 길을 잃어 무의미한 존재라 느끼는 실존적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소모하는 도축장의 희생양으로서 그 역활이 명확하게 한정지어진 것에 대한 구조적 공포인데 무슨 실존주의 파생물이라고 씨부리면서 아는척이노?
이건 염세주의와 실존주의가 엮이는 것 때문에 실존주의로 생각하는거 같은데 둘다 범위를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다를듯 - dc App
쿨찐 ㅈㄴ 역겹네
반출생주의 책인갑네 리뷰 재밌게 봤어요
호오…흥미롭군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