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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의 책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어 읽기 시작함.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되는 긴장감에 간만에 몰입하면서 읽었는데 이게 독이 돼서 속이 내내 메스꺼웠음.
책 읽으면서 이런 감정은 처음 느꼈는데 시의적절하게 등장하는 팩트 폭격가 '넬리'만 아니었으면 중도하차했을 것임.
등장인물은 적은 반면 콩가루집안인 탓에 호칭 정리하느라 애먹음.
힌들리와 캐서린을 보며 안나 카레니나와 알렉세이 까레닌이 많이 떠올랐음.
록우드, 캐서린 커플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헤어턴 변화구는 생각도 못함.
처음부터 끝까지 앵무새에 불과했던 록우드..
린튼 히스클리프 죽었을 때가 제일 좋았음.
다시 읽어보면 넬리가 팩트폭격기라기보단 가스라이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음. 넬리가 얘기해 줄 때 자기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건 은근슬쩍 스리슬쩍 한두 마디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넬리 때문에 상황 악화되거나 틀어진 경우도 많더라구.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악의를 가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넬리는 그 결과가 어찌되었든 악의없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거기에 숨통이 트였던 것 같음.
넬리가... 이타적?
그렇게 느껴서 유독한 워.하 읽는데 숨통이 트여 완독에 도움이 되었다면 어쨌든 잘 된 일인듯
넬리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경우가 있었던가? 캐서린, 혹은 안주인 등을 위해 헌신하고 충고하는 모습만 보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처음에 말한 상황 악화된 경우도 넬리가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택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고. 넬리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꼬맹이놈들이 말을 오지게 안들었음.
일단은 넬리도 은근 기 센 다른 캐릭터들이랑 기싸움하면서 타인을 꺾어 누르거나 상처 주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어린 히스클리프를 이유 없이 꼬집거나 폭행하거나 학대하면서 그 반응을 관찰하기도 하고, 캐서린1이 아플 때도 '응 니 고집이 센지 내 고집이 센지 보자구~ 네 자존심 굽히던가 죽을때까지 버텨보든가^^' 하는 마음에
캐서린1이랑 린튼 양쪽으로 거짓말 하며 이간질시키고 캐서린1 고통주다가 죽으니까 '앗 죽었네?' 이정도고..
자식세대 3인 고통받는건 대부분 넬리 실수/오지랖/잘못에서 연유된 사유가 많았던 것 같은데 넬리가 자기 실수나 잘못을 인지한 다음에도 애들(예 : 캐서린2)이 큰일 나지 않게 대비책을 세우는 것들보단 '주인님한테 내 실수/질못을 들키면 안 됨'을 우선시해서 속이고, 캐서린2한테도 거짓말시키고 결국 상황 악화된 이후에는 모른척하는 점들이 이기적으로 느껴졌어.
넬리도 네 말이랑 비슷한 말을 여러번 했던 것 같긴 해. '물론 내가 내 의무를 깜박한건/말실수를 한 건/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상황을 심하게 악화시킨 건 맞지만, 그래도 남들(캐서린1,히스,캐서린2 등등)이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이었으면 별 일 없이 넘어갔을텐데 쟤들 잘못이 크군' 하는 식으로
넬리도 인간쓰레기랄 정도는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실수하고 평범하게 소심하고 평범하게 비열한, 그만큼 다정다감하기도 한 인물인데 내가 읽으면서 넬리의 자기정당화나 공허한 도덕적 우월감이 너무 비호감이고 불쾌했어서 좀 기분나쁘게 받아들인 면이 없잖아 있는듯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넬리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이고 과거의 후회 혹은 자기 결점을 털어놓는 모습에 나는 솔직하고 되게 인간적이다 느꼈는데 역시나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구나, 생각해보면 상대적인 걸 수도 있겠음. 넬리가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건 아니고 그 외 인물들에게 너무나 큰 혐오감이 느껴져 어쩔 수 없이 넬리를 피난처로 삼았던 것 같음. 실제로 소설 속에서 건강하고 발랄하게 그려지는 유일한 한 사람이기도 하니.
그니까. 읽는 사람마다, 또는 같은 사람이 읽어도 책을 읽는 때마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이 더 다양하게 나오는 책들이 재미있는 책 같아. 특히 독서 모임 하기에.
캐서린2도 나름 건강하고 발랄하지 않았나? 힌들리 자식도 히스클리프 밑에서 자라며 쌍욕 배우고 표독스러웠던 어린 시절 말고 좀 커서는 순둥하고 어벙하고 귀엽게 나왔던듯.
뒤에 댓글 읽어보니 내가 놓친 게 많이 있었네. 댓글 읽으면서 기억이 다시 나는데 분명 넬리가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이타적이었다는 내 판단은 잘못된 것 같음 ㅋㅋ.. 대단하네 어제 완독한 나보다 스토리를 더 잘 알고 계신듯 ㄷㄷ..
아 캐서린2도 매력있는 인물이죠. 넬리와 중후반부 케미도 좋았고 마지막에 헤어튼이랑 잘돼서 훈훈하게 끝난 것도 좋았고 ㅋㅋ
그런 판단은 매우 자연스러움. 넬리의 자연스러운 가스라이팅에 록우드도, 너도, 나도 당했기 때문임. 넬리가 이야기 중간중간 얼마나 자주 (이 미친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옳은 말, 선한 일만 하는 인물이라 어필하는지를 한번 인식해버리고 나면 수상해지고, 의혹이 싹트고, 재독할 때엔 넬리의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할거야ㅋㅋㅋ
아 헤어튼! H로 시작하는 이름이란 건 기억이 났는데 힌들리, 히스클리프, 헤어튼 모두 H들이라 헷갈려서 이름이 기억 안 났어 맞아... 독서 내내 긴장시키는 유독한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말랑말랑 캐서린 헤어튼 귀여운 커플로 끝나서 좋았음. 굿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은 책 중 유일하게 재독하기 싫은 책 ㅋㅋ.. 얘기 나누면서 다음번엔 좀 더 천천히 느긋하게 문학 작품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귀한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 또 감사
한 10년쯤 후에 문득 재독이 끌릴 수도 있으니..ㅎㅎ 저도 책 얘기에 잠시 즐거웠네요. 일요일도 즐독하시길~
난 오히려 넬리가 제일 역해서 읽기 힘들던데.. 다른 애들은 그냥 지맘대로 뇌 빼놓고 싸우기만하는데, 얘는 비슷하게 행동하면서도 자기만 맞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기분나쁨
뇌 빼놓고 싸우는 와중에 그래도 정신 온전한 사람 하나 꼽자면 넬리 아닌가 ?..
그건 맞긴함 ㅋㅋ 사회화가 가장 잘 되어있긴하지, 근데 내 기준에는 위선적인거보단 차라리 제대로 합리적이던지 아니면 제대로 또라이던지 둘 중 하나인게 더 매력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