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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탑의 수수께끼(오페레타)」



  여(余) 서정주의 독창


  이세상의 남녀노소 얇지않은 귀있걸랑

  이내말씀 들어보소. 깊이깊이 들어보소.

  옛부터 까마귀는 불길하다 하는 샌데

  어찌하여 대영제국 웡머식한 사람들은

  런던탑에 까마귀들 날개잘라 먹이면서

  '이 까마귀 훨훨 날아 딴나라로 갈작시면

  영국땅은 망한다'고 안간힘을 쓰시는고?


  런던탑에 목이 잘린 억울한 원귀들의 합창


  여보소 자네씨(氏)가 무슨 묘책 가졌걸랑

  우리들 좀 풀어주소. 답답해서 못살겠네.

  이나라의 인종들은 웡머식은 해설랑은

  형이하학 곧잘 하나 형이상학 서툴러서

  추상어나 갖구 놀다 하폄하는 것 알지않나?


  답답해서 답답해서 답답해서 답답해서

  그러다가 우리피를 기껏 흘려 만든 것이

  꼭 단 하나 실감있는 이 저승의 간접상징

  꾸무룩한 원귀들이 못떠나는 간접상징

  어슴푸레 안개속에 런던탑 이것이니,

  까욱까욱 우리 불러 울어대는 까마귀떼

  보내구선 잊을까봐 걱정되어 그런다네.

  답답하고 답답하이. 우리들 좀 풀어주소.


  날개 잘린 까마귀떼의 합창


  까욱까욱 까욱까욱 아이구구 까욱까욱

  억울하고 억울키사 우리가 더 억울하요.

  당신들은 피도 살도 이미 없는 원귀지만

  몸포 좋은 날짐승이 날개 잘려 놓이다니!?


  그러신데 당신네들 말하는 것 들어보니

  미련하고 미련해서 아무짝에도 못쓰겠소.

  그야 나도 던져주는 모이나 주어먹고

  그럭저럭 뒤척뒤척 살기사 사요만은

  그래서?!

  이세상에 대영제국이 대영제국일락시면

  이만큼한 기분일깝세 없어서야 되갔이요?


  깜깜한 어둠속에 까마귀떼 울음만이 한동안 이어 나가다가, 두번째 그 까마귀떼의 합창


  까욱까욱 우리 울음 들은 소감 어떻시오?

  왼몸에 소름발이 주욱쭈욱 뻗히시지?

  그거라고, 그거라고, 그게 필요한 거라고!

  우리들도 날갤랑은 잘리기는 잘렸어도

  마음속엔 자그만한 천리안도 있어설랑

  웬만큼한 먼데 것도 보구나서 말이지만

  어디있어?! 어디있어?! 도대체 어디있어?!

  이만큼 실감나는 형이상학 어디있어?!

  런던탑 빼어놓고 또 다른 데 어디있어?!

  까욱까욱!! 까아우욱!! 까욱까욱!! 까아우욱!!



-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하늘을 떠받드는 형벌을 받고 있는 아틀라스를 향해, 서정주는 이런 우스개를 던진 바 있다. "할 수 없네 아틀라스여./ 자네가 동양사상이라도 새로 배워서/ '자각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라도 하기까지는/ 자네 그 따분한 팔자를/ 누가 어떻게 하겠나?"(「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의 주봉 투브칼에게」) 그의 농담이 재미있는 것은 이른바 서양적인 가치관과 동양적인 가치관이 부딪히는 지점을 무던한 재치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 탑의 수수께끼」는 그에 비하면 시적인 매력은 훨씬 덜한 편이다. 4/4조의 시 속에 '형이상학'이나 '간접상징' 같은 말을 집어넣은 것은 어색한 대로 실험적인 시도라고 할 만하나, 전체적인 서술이 서정주답지 않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고 특히 후반부가 날림에 가깝게 처리되어 있어 유감스럽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한결 복잡한 면이 있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시 속에서 시인 자신과 런던 탑에서 처형당한 원귀들은 동양적 내세관을 대표한다. 런던 탑 근처에 까마귀 날개를 잘라서 머물게 하는 풍습에 대해 시인은 죽은 원귀들을 내세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라 해석하면서, 이를 '형이하학 곧잘하나 형이상학 서툴러서' 나온 행동으로 평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이는 하늘이 무거운 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아틀라스처럼 우스운 일이다. 반면 까마귀들은 서양적 내세관을 대표한다. 그들에게는 런던 탑이야말로 가장 '실감나는 형이상학', 즉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가장 그럴듯하게 시각화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이 '대영제국일락시면' 그런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제국을 경영하기 위한 비정한 현실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판단된다. 부족한 대로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을 충돌시키는 실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