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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와이즈베리, 2016. 11.28.
흔히 책을 평가할 때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로 평가하지만, 그보다 앞선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저술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이 있는가?’라는 기준이다. 논지의 전개와 제시하는 근거의 질에 따라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이냐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기준을 갖췄다면, 나는 책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이 기준에서 의문이 드는 책이 종종 있다. 내겐 『대리사회』가 그렇게 느껴졌다. A라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B라는 내용이 나왔을 때 느끼는 당혹감, 그 비슷한 걸 느꼈다.
‘대리사회’라는 제목과 서문을 보면, 이 책이 사회비평을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회비평을 할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책에 ‘대리사회’라는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대리기사 체험기’ 정도만 돼도 충분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제시하는 문제의식도 지극히 사회‧구조적인 것이란 점에서 독자는 자연히 ‘이 책은 한국사회에 대해 뭔가 사회적‧구조적 문제를 말하려는 책이구나.’하고 짐작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내가 대리인간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이 글은 “내가/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다.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은, 그래서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지나온 ‘대리의 시간’을 몸의 언어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타인의 공간에 침투해 수백 차례나 운전대를 붙잡았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대리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음을 확인했다. (p8.)
그런데 실상 내용을 들어다보면 의외로 사회‧구조적 분석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상 책의 내용을 이끄는 것은 대리운전을 하면서 겪었던 저자의 체험담이다. 물론 이런 미시적인 경험에서 거시적인 담론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그 내용이 모호하고 이미 많이 언급된 것이다 보니 독자로서는 엉뚱한 짐작을 하거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대리’라는 개념을 들 수 있겠다. 이 책이 가장 집중적으로 해부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대리사회의 괴물’이다. 저자께서는 이 ‘대리사회의 괴물’이란 수사를 자주 사용하지만, ‘대리’가 어떻게 주체성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독자는 저자께서 군데군데 언급한 대리사회에 대한 언급으로 이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말이다.
타인의 운전석은 이처럼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한다. 신체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도 빼앗는다. 그런데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도 나의 신체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대리’라는 단어에 묶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느 공간에서도 그다지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p9.)
즉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대리사회’란 타인의 수고를 대리하면서 주체성과 의사를 통제당하는 상태가 만연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주체적이고 완전히 자기 의사를 관철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인간이 어려서부터 각종 사회문화와 규범을 학습하고 내재화한 채 살아감을 생각해본다면, 온전히 주체로서 존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닐까? 특히 생계를 위해 조직에 소속되어 노동을 한다면, 그곳의 조직문화를 따르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은 아닐까? 너무 보수적인 생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다. 하지만 TBS의 책방 북소리>에서 진행된 『대리사회』 저자 인터뷰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겪는 일 아닌가?”라는 앵커의 질문이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단순히 나만 갖는 의문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의문의 일차적 원인은 저자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대리’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된다. ‘대리’라는 개념을 둘러싼 혼란은 뒤로 가면 더욱 심해진다. 일례로 이 부분을 보자.
대리기사들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보이지 않는 요정이 산다.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항상 존재한다. 타인이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을 치우고, 사고를 대신 처리해 주고, 모두가 꺼리는 그 어떤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 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리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실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우리는 스스로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을 타인에게 대가를 주고 대신하게 한다. 하지만 과정의 수고로움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결과만이 남는다는 점에서 노동 그 자체는 대개 은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하는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요정이다. (p241.)
만약 노동의 본질이 ‘대리’라면, 노동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는 대리사회인가? 그렇다면 문제는 수고를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춰진 노동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결국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왜 굳이 이 사회를 ‘대리사회’로 지칭해야만 했을까? ‘불감사회’ 정도로 정의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물론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대리’는 단순히 타인의 수고를 대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추정컨대 저자께서 지적하시고자 한 ‘대리’란 것은 노사관계라는 엄연히 평등한 거래관계 속에서 타인의 수고를 대리한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권력관계(단적으로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일인 것 같다. 이 ‘대리’라는 기묘하고 새로운 신분관계 때문에 대리기사는 종이 아님에도 손님의 반말과 욕설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보수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단지 대리기사라는 이유로 손님의 의견에 무조건 복종(단적인 예로 “예, 그렇죠. 사장님” 같은 말들)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심화되면 사용자의 욕망이 곧 노동자의 욕망이 되는 기괴한 현상으로까지 이어진다.(“나는 노동자지만 주인 마인드로 일할거야.”) 자아와 주체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주체성이 훼손되는 기이한 현상, 이것이 바로 ‘대리사회’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고 읽었다. 그러나 ‘대리’의 개념이 모호하게 정의되다 보니 논지가 자꾸만 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의식의 핵심이 되는 ‘대리’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저자께서 사회의 어떤 측면을 비판하시고자 하는지 역시 모호해진다. 저자께선 ‘대리사회의 괴물’이란 표현을 쓰지만, 정작 책에서 그 괴물의 실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리사회의 괴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왜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이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독자는 마치 전설 속 괴물을 상상하듯이 대리사회의 괴물을 스스로 상상해야만 한다. 그리고 결국엔 ‘대리가 왜 나쁜 거야?’와 같은 엉뚱한 의문으로 빠져들게 된다. 저자께서 문제의식과 개념 정리를 좀 더 꼼꼼하게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거시적인 분석보다는 미시적인 경험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 또한 아쉬웠다. 만약 독자가 대리기사의 일상을 보고 싶었다면, 굳이 1년 남짓 대리운전을 체험한 저자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10년차 경력의 대리기사 쓴 ‘대리기사 생활기’ 같은 책을 읽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물론 그런 책은 아직 없지만.) 그럼에도 왜 독자는 (저자께서 스스로 지칭하셨듯이) 사회인과 학자의 사이존재인 저자의 책을 골랐을까? 대리기사들은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보지 못하는, 사회의 어떤 거대한 맥락을 알고 싶어서 아닐까? 저자께서도 굳이 ‘대리사회’라는 제목을 고르신 걸 보면, 이러한 독자의 욕구를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대리사회의 경험은 흥미롭게 묘사된 반면,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사회 분석은 너무 적고 자세히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리 사회’가 아닌 ‘대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 나 같은 독자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당연히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숭고한 행동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경험이 절대적인 진리는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 제일 잘 안다.” 또는 “경험이 이론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라는 식의 생각은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세대는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 없다.”라는 식의 논리와 별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육신을 지닌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육신에 각인된 경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육신의 사적 경험과 다수가 공유하는 이론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 훌륭한 르포르타주가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그 자체로 강렬한 것이지만, 고통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큰 틀에서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저자의 대표작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읽지 못했고, 그래서 이런 평가가 부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음을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음 저서가 나온다면, 체험과 이론이 좀 더 균형을 이룬 저서가 나왔으면 하고 기대한다. 사회인과 학자의 경계에서 글을 쓰시는 분이시기에 기대하는 바가 여전히 크다.
마지막 단락 짤린거같은데
억 ㅠ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ㅠㅠ
제목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다른 의문을 준다는 날카로운 분석이 인상적이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