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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악인들만이 가득 나오는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메리칸 타블로이드>를 읽으면서 신기했는데, 좋아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인데도 상당히 흥미롭게 읽어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마 <아메리칸>에서 그려내는 50-60년대의 미국과 주인공 격 인물들이 너무나 혼란스럽게 뒤엉키면서 옳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저자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이들이 멋져서? 잘 모르겠다. 사실 등장인물들은 분명 유능하고 잔혹하고 준수한 외모의 인물들인데도, 소설을 보면서 참 친근해서 오히려 좀 당황스러웠다. 딱히 큰 이유 없이 사람을 쏴죽이고 스스로도 놀라는 사람이 근처에 있을리는 없는데, 영문은 모르겠다.
사실 어쩌면 번역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글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해결사 피터의 경우 분명 묘사로는 190cm가 넘는 거구에 일만 터지면 주먹을 휘두르는 건 일상이고 총으로 머리를 따는 데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그런 사람인데, 어째 켐퍼나 워드와 같은 다른 주인공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면 "당신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하는 앙증맞고 귀여운 말을 하곤 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인식에 혼란이 자주 온다. 물론 실제로도 건조하고 잔인한 묘사가 간결하고 충격적으로 툭 던져지는 만큼 유머러스하고 어이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 그런 식으로 던져지곤 하니 어느 정도는 의도된 바일 수는 있겠지만, 원문을 보면 아닌 거 같다. 그래도 어쨌든 참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순식간에 죽어버린다. 분명 윤리 관념이 나름 있는 편이었던 켐퍼도 어느새 살육을 더욱 더 찾게 되고, 가장 도덕적이었던 워드는 모든 기대가 순차적으로 좌절되며 참 유능하게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며,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죽는 것 따위는 솔직히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해결사인 피터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세 사람의 시야로 바라보는 당시의 미국은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들끓는 폭력 속에서 동작하는데, 그 폭력의 주제가 되는 사건이 하필이면 미국에서 가장 번들번들하고 사랑받는 대통령 JFK와 얽혀 있다는 것이 참 얄궂다. 물론, 나는 미국인이 아니고 JFK를 좋아해야 할 이유도 모르다보니 그런 이미지에 대한 것도 잘 공감되진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참 락스타 같은 대통령이었다는 정도일까?
덕분에 JFK의 배경이 기본적으로 당시 미국의 부패 문제와 너무나 깊게 얽혀 있던 것과, 후버의 반공에 대한 집착이 다른 분명한 문제인 마피아를 무시하다 못해 아예 자기 수족처럼 다루는 것을 보면서 이루 말하기 힘든 쾌락이 느껴졌다. 기대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 기대하던 사람이 자연스럽게 절망하다가 전향하는 모습이나, 애초에 그런 기대를 전혀 가지지 않고 행동하는 세련되게 천박한 모습이 즐거웠다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피터 등의 주인공에 대한 매력과 마찬가지로, 오타쿠스럽게 읽어나간 소설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품성이 뛰어난 범죄 소설로 꼽히는 글이고, 실제로도 도시와 인물의 암흑을 참 세련되고 면밀하게 묘사해 감탄하면서도, 왜 이런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정작 <밀레니엄 시리즈> 같은 진짜 유치한 글은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그리고 번역에 대한 불만을 더 적어두자면, 어조 같은 데에서 문제를 갖는 것보다도 그냥 전반적으로 너무나 어색한 오역이 많다. 하드보일드 느와르란 원래 이렇게 좀 뚝뚝 끊기고 영문 모를 문장들이 흩어져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러 오역들을 지적한 바가 있다. 여러 속어와 옛 숙어들이 워낙 많이 활용되는 글이라 번역문만을 보면 원문을 추측조차 할 수 없어서 더더욱 골치 아픈 문제인데, 적당히 넘겨 읽으면 큰 문제가 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번역이 '문제'라고 분명하게 느껴진 책이다. 물론, 읽기 전에 이미 끔찍한 번역에 대한 악평을 들은 터라 약간의 선입견이 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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