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0c9f8671c384698323e886e2459c7069f2386b74a2f872a983f9ac9c104c5105b75af803e88e8e1bb5dd990c76bb1ba046259091

09988170c4826a8023e68793349c701855fd983941240e74b95e571dd565e1e6b1b9970df2bc400e65bc4b56e5b8c7b55b5173be

살면서 느낀 점인데, 특정 유형의 인간을 미워하고 험담하는 인간은 대개 그러한 유형에 속해있는 인간이다. 즉,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서로 닮아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닮았다, 당연히. 이들 역시 서로를 애증한다. 경우에 따라선 증오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제3자는 부모를 욕하는 자식에게서 그 부모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화자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잔혹할 정도로 민감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탈출하여 자신만의 삶을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살갗에 파묻힌 가면 마냥 절대 손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떼어내려고 손댈 때마다 그것은 더 깊게 파고들어 깊은 상처만 굳건히 남길 뿐이다.

서커스, 난민, 트레일러, 서방세계, 독재, 가족의 분열 등등. 그들은 많은 가면을 공유한다. 어머니는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과 똑닮은 것을 자식들의 얼굴에 심어넣는다. 이제 그 자녀들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모습과 함께 있는 가면을 동시에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래서 아마도 이 작품의 마지막이 어릴 적 가족들이 함께 찍은 싸구려 영화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닐까? 거기선 현실과 다른 모습을 그려내야만 하니까. 자신이 쓰고있던 가면이 거기서만큼은 거짓이 될 수 있으니까. 

물론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작품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거기선 아이들이 아니라 마녀가 화로 속에서 불타긴 하지만. 아무튼 왜 하필 이 동화가 연상되었을까? 같은 독일어권 문학이어서? 잔혹해서? 공통점이긴 하나 그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운 소망, 본능은 경우에 따라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유로서 이러하다는 것이지, 범죄를 옹호하는 발언은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 속 마녀는 자신의 거처에 불법 훼손 및 침입한 그들을 당연한 본능에 따라 벌한 것 뿐이다. '동화 속 마녀'라는 정체성을 갖춘 자가 그러한 방식으로 남매를 벌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유일한 선택 가능 행동이다. 마녀는 마녀로서의 행동을 했을 뿐인데, 화로에 밀어져 살갗이 녹아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폴렌타 속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 역시 가면을 뜯어내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부림쳤을 뿐인데 그것이 크나큰 죄가 되어 폴렌타 속에 들어가 끓여지는 형벌에 처해진다.

"아이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머니 얼굴에 가위를 꽂아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작중에서 실제로 이러진 않았고 마음 속의 독백이다.)


그렇다면 동시에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아이를 폴렌타에 밀어넣은 손은 누구의 손인가?

그것은 어머니일수도, 아버지일수도, 서커스일수도, 자기 자신일수도, 신일수도,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이는 태어났을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병원 대기실처럼 보이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소파에 누워도 되고, 책을 읽거나 잠을 자도 된다고 했다. 얼마나 아늑한 방인지, 아르만도도 내가 와서 매우 기뻐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잠 시 중요한 얘기를 하고 오겠다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병조림 속 양파처럼 빛났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공책 페이지마다 미키 마우스의 눈동자란 눈동자에 모조리 구멍을 뚫었다.
그 일을 다 마친 다음에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과자를 먹었다.
심장이 내 머리에서 두근거리고 있었다.
밖이 어두워졌다.
밤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파가 얼었다.
벽이 얼었다.
내 손과 발이 얼었다.
내 눈동자도.
눈이 나를 덮었다."

세계는 이렇게 한없이 차가운데 아이는 한없이 뜨거운 폴렌타 속에서 끓고 있다. 아이에게는 과연 그만한 무게의 죄가 있는가? 



+ 이 책을 옮긴 배수아의 후기 중, 작가의 미완성 유작 중 일부가 실려 있었는데, 작가는 결국 자신의 가면을 못 벗어낸 것 같음.

'매일 나는 자살한다. 난방기에 목을 매거나 발코니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는다. 나는 어둠으로 죽는다. 여름으로, 슬픔으로, 혹은 기다란 피부로 인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얼굴에서 자라난 어머니로 인해 나는 죽는다'
- 아글라야 페터라니, [마지막 숨의 선반] 중에서


이 작품을, 데뷔작이 출간되기 전부터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이고…

14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