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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낀 점인데, 특정 유형의 인간을 미워하고 험담하는 인간은 대개 그러한 유형에 속해있는 인간이다. 즉,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서로 닮아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닮았다, 당연히. 이들 역시 서로를 애증한다. 경우에 따라선 증오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제3자는 부모를 욕하는 자식에게서 그 부모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화자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잔혹할 정도로 민감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탈출하여 자신만의 삶을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살갗에 파묻힌 가면 마냥 절대 손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떼어내려고 손댈 때마다 그것은 더 깊게 파고들어 깊은 상처만 굳건히 남길 뿐이다.
서커스, 난민, 트레일러, 서방세계, 독재, 가족의 분열 등등. 그들은 많은 가면을 공유한다. 어머니는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과 똑닮은 것을 자식들의 얼굴에 심어넣는다. 이제 그 자녀들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모습과 함께 있는 가면을 동시에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래서 아마도 이 작품의 마지막이 어릴 적 가족들이 함께 찍은 싸구려 영화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닐까? 거기선 현실과 다른 모습을 그려내야만 하니까. 자신이 쓰고있던 가면이 거기서만큼은 거짓이 될 수 있으니까.
물론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작품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거기선 아이들이 아니라 마녀가 화로 속에서 불타긴 하지만. 아무튼 왜 하필 이 동화가 연상되었을까? 같은 독일어권 문학이어서? 잔혹해서? 공통점이긴 하나 그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운 소망, 본능은 경우에 따라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유로서 이러하다는 것이지, 범죄를 옹호하는 발언은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 속 마녀는 자신의 거처에 불법 훼손 및 침입한 그들을 당연한 본능에 따라 벌한 것 뿐이다. '동화 속 마녀'라는 정체성을 갖춘 자가 그러한 방식으로 남매를 벌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유일한 선택 가능 행동이다. 마녀는 마녀로서의 행동을 했을 뿐인데, 화로에 밀어져 살갗이 녹아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폴렌타 속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 역시 가면을 뜯어내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부림쳤을 뿐인데 그것이 크나큰 죄가 되어 폴렌타 속에 들어가 끓여지는 형벌에 처해진다.
"아이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머니 얼굴에 가위를 꽂아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작중에서 실제로 이러진 않았고 마음 속의 독백이다.)
그렇다면 동시에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아이를 폴렌타에 밀어넣은 손은 누구의 손인가?
그것은 어머니일수도, 아버지일수도, 서커스일수도, 자기 자신일수도, 신일수도,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이는 태어났을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병원 대기실처럼 보이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소파에 누워도 되고, 책을 읽거나 잠을 자도 된다고 했다. 얼마나 아늑한 방인지, 아르만도도 내가 와서 매우 기뻐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잠 시 중요한 얘기를 하고 오겠다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병조림 속 양파처럼 빛났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공책 페이지마다 미키 마우스의 눈동자란 눈동자에 모조리 구멍을 뚫었다.
그 일을 다 마친 다음에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과자를 먹었다.
심장이 내 머리에서 두근거리고 있었다.
밖이 어두워졌다.
밤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파가 얼었다.
벽이 얼었다.
내 손과 발이 얼었다.
내 눈동자도.
눈이 나를 덮었다."
세계는 이렇게 한없이 차가운데 아이는 한없이 뜨거운 폴렌타 속에서 끓고 있다. 아이에게는 과연 그만한 무게의 죄가 있는가?
+ 이 책을 옮긴 배수아의 후기 중, 작가의 미완성 유작 중 일부가 실려 있었는데, 작가는 결국 자신의 가면을 못 벗어낸 것 같음.
'매일 나는 자살한다. 난방기에 목을 매거나 발코니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는다. 나는 어둠으로 죽는다. 여름으로, 슬픔으로, 혹은 기다란 피부로 인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얼굴에서 자라난 어머니로 인해 나는 죽는다'
- 아글라야 페터라니, [마지막 숨의 선반] 중에서
이 작품을, 데뷔작이 출간되기 전부터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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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운이 깊게 남은 작품이었음. 두 페이지 가량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쓴 것도 어린아이가 흰 종이에 빽빽하게 반성문을 쓰듯 자신을 위한 벌칙 과제를 적은거라 하니.. 자연스럽게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를 창문 아래 정원에 묻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딸기에서 어머니의 맛이 날 것이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부분 앞선 빌드업? 보고 읽으니까 더 묵직하게 다가왔음…그리고 딸기 그 부분도 오히려 아이같이 순수하게 표현해두는 바람에 더 잔혹하다는 느낌도 받았고 다른 부분들도 다 좋았는데 특히 2부가 너무 슬프더라 - dc App
약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느낌도 났음
안읽어봐서 모루게씀 하핫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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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근데 남 욕하는 사람도 그들과 똑같은 부류라는건.. 좀 말이 안되는 논리인듯. 트라우마 걸린 사람들 보면 걍 기계적으로 계속 그 말을 하게됨. 이를테면 예전 친구 직장 동료가 납치되었던 과거가 있었는데 직장에서 계속 그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 어느정도의 기준에서 그런 논리는 납득되는데 (이를테면 속물근성 비판이나, 과도하게 정치에 몰입하는 경우) 폴렌타 작가도 기이할정도로 돌아버린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 좀 안됐지 그 트라우마때문에 허덕이는게 보이더라
뇌가 어느 고통의 임계점을 넘는순간 그 영상을 계속 되풀이해서 보여줌. ptsd가 그런 질환이고, 상마초들조차 전쟁에서 그런 증상을 입고 자살하는게 허다하지.. 결국 그걸 이겨내면 베스트인거지만 못이겨냈다해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굴레를 씌울 필요는 없다고봄.
음…일단 내 경우에는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생각보다 꽤 봐와서…좀 더 넓은 범위의 자신의 삶으로부터 오는 트라우마도 있겠지만, 결국 해당 작품이나 미완성 유작이나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강박이 과도하게 느껴져서 결국 작가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던 부분들에서 해당 논리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음 - dc App
아 근데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굴레 씌울 의도는 없었는데 - dc App
화자가 처한 절망적인 세계, 환경이 마치 화자를 '죄인인 것처럼 몰고 가는 부조리한 상황' 같아서 이에 대한 동정을 표한 감상이었는데 쩝..나의 글솜씨 부족인가보죠 - dc App
아니 뭔 말하는진 알거같음 남 욕에 집중하는 사람은 결국 한장차이긴함... 나도 트라우마 있는 사람으로써 좀 찔려서 적은것도 있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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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룸 제안들 단순히 힙한 표지로 기억하는 사람들 많은데 재밌는 책 많음
동의합니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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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선 그럴수도?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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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범죄자를 미워하는 사람은 범죄자와 결국 같은 사람이다'라는 의미로 적은 게 아니라, '사람은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자기혐오 마냥 그러한 부분을 다른 부분들보다 깎아내리는 경향이 많다' 이런 의도로 적은 건데…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 dc App
음..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그림자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투사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그리고 이 글은 '가해자-피해자 관계'보다는 '동족혐오'의 의미로 적은 거긴 함. - dc App
물론 작가의 삶이나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함께 피해자로서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존재함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 그런데 그런 트라우마 속에서 '부모-자식'의 관계로서 분명 작가와 작가의 어머니는 동족으로서의 공통점(ex. 서커스, 난민, 유랑, 남자로부터의 고통 등등)을 공유하고 있음. 그리고 작가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의지하지만 그런 공통점은 철저히 부정하고 혐오함. 그래서 작가는 어머니를 가위로 찌르는 망상을 함. 왜냐하면 자신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여서. 그런 면에서 나는 해당 언급을 한 거임. - dc App
너무 싸잡아서 일반화될 수 있는 발언이라는 건 나도 공감되고 반성함. 그건 충분한 배려가 부족했던 발언이었음. - dc App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걸 얘기하고 싶었던 건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