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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나는 역사에 책임을 질 것이며 학생을 진압하는 총서기는 절대 될 수 없다" - p.118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내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 내가 이러한 위치에 있는 이상 그런 일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는 감옥에 갈 것이고 분명 가족들까지도 말려들 것이다.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 p.20


"과거에는 기계적으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국제시장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점을 발휘할 수 없었다." - p.237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국가가 실행하고 있는 모든 대권을 개인에게 집중시키거나 혹은 소수 몇 사람이 집권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고 좋아했으며, 분권과 견제와 균형 제도를 몹시 싫어하고 경멸했다." - p.380


"우리 사회주의국가에서 실시하는 민주제도는 완전히 형식으로 흘러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고 소수가,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 되었다. […] 지금은 아직 이것 [서구 의회민주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를 찾을 수 없다." - p.410




1. 이 책의 제목은 국가의 죄수, 부제는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입니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과 함께 덩샤오핑의 후원을 받으며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지만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일어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군을 동원한 강제 진압에 반대했다 실각했고, 이후 15년 가까이 신체적 자유를 제한 당한 채 '죄수 아닌 죄수'로 살다 일생을 마친 비극적 인물입니다.


다만 사실 그를 구속한 건 '국가'보다는 '당'이었기 때문에 '당의 죄수'였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2. 한국과 미국 그리고 타이완에서는 국가의 죄수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홍콩에서는 개혁역정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홍콩판에서 개혁역정이라는 제목을 사용할 정도로 1980년대 개혁 개방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 지도부 내 여러 비화들이 담겨 있습니다.


3. 원래 회고록은 자기 중심적으로 쓰여지기 마련이라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중국에서 나오는 고위 간부들의 회고록은 중국공산당 연구실에서 검토와 편집을 하기 때문에 구술사보다 가치가 낮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더욱 신뢰도가 떨어지는게 사실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원 저자와 공산당의 공동 집필이라고까지 볼 수 있죠.


그 점에 대해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자유롭습니다. 물론, 회고록 특유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야오방의 실각 즈음 자오쯔양의 역할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후야오방의 실각에 자신은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 하고 있지만 이 해명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산당과의 '공동 집필'이 아닌, 자오쯔양 본인의 생각이 그대로 실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더군다나 자오쯔양의 이 회고록은 처음부터 자오쯔양 본인이 활자화한 것이 아닌 그의 구술 회고록을 활자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련 흐루쇼프의 비밀 회고록과도 닮아 있습니다.


4.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부릅니다. 이런 수식은 마치 덩샤오핑이 처음부터 중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청사진을 갖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지시했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덩샤오핑 역시 어떠한 청사진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역할은 처음에는 지방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중앙의 지도자들이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반대파들의 저항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을 보호해주고 지지 격려 해준데 있습니다.


이 책 곳곳에서 덩샤오핑의 이런 '역할'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5. 총서기로 재임하던 기간 자오쯔양은 정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채 2년도 되지 않아 쫓겨나면서 미완의 개혁으로 그치게 됐고, 많은 개혁 조치가 철폐됐습니다.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자오쯔양은 공산당 일당 집정은 유지한다는 틀에서의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안문 사태로 실각하면서 점차 자신의 생각을 고쳐 먹게 됩니다.


비록 몸은 자유를 잃었지만 그의 정신은 더욱 더 자유로워졌던 것이죠. 


원래 그는 소련이나 중국의 제도가 인민을 대표하고 더 민주롭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서구의 의회 민주제도는 "더욱 충분히 민주를 구현할 수 있고 […] 지금은 이것보다 더 좋은 제도를 찾을 수 없다"(p.410)고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도 서구 제도에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공산당 일당 독재보다는 훨씬 나은 제도로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선진국이"(p.411) 의회 민주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p.411)한다며 "한 국가가 근대화를 이루고 현대적인 시장 경제, 현대문명을 실현하려면 정치체제는 반드시 의회민주제를 실시해야 한다"(p.411)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6. 그의 개혁개방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후야오방에 대해서 비록 경제 분야에서는 견해가 다르기도 했지만 "비교적 깨인 사람이라 다른 의견을 귀담아 잘 들었고 사람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으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p.281)다면서 만약 그가 계속 집권했다면 "세계적인 민주적 흐름의 추진과 영향 아래 국가 정치의 현대화와 민주화의 여정에 맞게 중국의 정치체제개혁을 전진시켰을 것"(p.403)이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덩샤오핑에 대해서도, 결국 안좋게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높게 평가했고, 자신의 개햑 개방을 반대했던 보수파의 대부인 천윈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덩리췬이나 후차오무, 야오이린, 리셴녠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