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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표지를 보고 언젠가 봐야지, 했다가 최근 하버드 언어철학 수업에서 문제 중 하나로 언급되었길래 궁금해서 좀 더 빨리 읽어본 책이다. 다만 철학적으로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는 내용까지는 아니고, 아무래도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게임이라는 매체를 바라보고 그 예술적 가치를 논증하고 있어 시의성 있는 주제로 선정됐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게이머에게는 그리 흥미 있는 주장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의미심장한 게임들과 함께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단순히 승리만을 바라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게임에 몰입하는 그 경험 자체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시로 파티 게임이나 바보 게임처럼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 정말로 목표는 아닌 게임이 있다. 또한, 승리를 목표로 싸우지만 기본적으로 그 싸움이 비등비등해서 기분 좋게 이기는 것을 원하는 게임에서, 너무나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법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이 게임을 끝내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하는 상황이 있다. 마찬가지로 분명 게임에서는 이기고 있지만 내심 속으로 '그런데 이게 즐거운 게 맞아?' 하고 스스로 물어보는 반성의 순간이 있다. 게임은 신기하게도 게임의 목표에 전념하는 행위와, 이 행위에 몰두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행위, 둘을 모두 포함하는 듯하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게임의 목표에 전념하는 행위성은 우리가 일상에서 갖는 행위성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 상대를 죽이는 데에 몰두하는 광전사, 회사를 불리는 데에만 신경 쓰는 기업가, 때에 맞춰 수확을 하고 이를 내다 파는 데에 온 정신이 쏠린 농부, 그리고 괴상한 경우로는, 전염병을 온 지구에 퍼뜨리는 데에 집중하는 수상한 존재까지. 잘 디자인된 게임은 특이한 목표와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의 제약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행위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행위성은 게임 내에서 숙련되는 동안 게임 외에서도 우리가 필요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일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https://youtu.be/6RHH7M4siPM?si=lekslNbQaeemYll9
이에 대한 장단점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을 법한 실제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면, 비디오 게임 <다키스트 던전>이 제시하는 소시오패스적인 행위성이 있다. <Game Maker's Toolkit>은 <다키스트 던전>이 어떤 식으로 도덕성을 다루게 하는지 분석하는데, <다키스트>는 한 번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는 환경에서 운적인 개입을 극도로 강화시켜 우리가 아무리 최악을 신경 쓰고 고려하려 하더라도 늘 그 이상의 참사가 일어나도록 만든 게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주의 입장에서 던전을 탐험하기 위해 고용한 용병들을 챙겨주려고 하지만, 그 노력은 대체로 결실을 보지 못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강화하고 투자한 용병은 너무나 손쉽게 몰살당하고, 만약 최대한의 노력과 운으로 어떻게든 그들을 잘 살려냈다고 하더라도 게임의 결말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GMTK>는 우리가 영주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은 매우 비인간적인 입장이다. 영주는 악덕 고용자처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을 점점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고용하자마자 곧바로 스트레스를 가득 받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온갖 역경에 던져놓는가 하면, 병에 걸리거나 미치면 그대로 해고해버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키스트>는 우리가 이 병자들을 데리고 있을 때의 고통과 손실을 늘 보여주지만, 이들이 체계 밖으로 내던져진 시점에서는 아무런 부작용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유능하고 성실한 고용주로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걸 발견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키스트>가 제시하는 기업가의 행위성에 끝까지 반발하며 플레이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우리가 살면서 언제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까?
이러한 체험은 소설, 영화, 그 밖의 어떤 매체로도 전달하기 어려운 체험이다. 고용주의 삶을 유년기부터 돌아보는 글도, 영화도, 우리가 진정으로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행위성에는 도달하기 힘들다. 이것은 게임이 다른 매체들의 합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행위성 전달자'라는 가치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경험들의 목록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페이퍼 플리즈>는 억압적인 정치 아래에서 한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디즈 워 오브 마인>은 전쟁 상황에서의 개인이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인' 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언더테일>은 이야기하면 창피해지지만 어차피 다들 알 테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젤다 스위치 타이틀들을 하며 '유한한 내구성을 갖지만 늘 무한히 생성될 수 있는' 물건들에 둘러싸인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위에서 말했듯, 이런 내적 행위성의 몰두와 동시에 그런 행위성으로부터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외적 행위성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때에 맞춰 그 상황에 맞는 행위성을 갖췄다가 다시 바꾸듯, 게임 플레이에서도 게임의 행위성과 그 밖의 행위성을 구분할 수 있고, 게임의 행위성을 삶에 끄집어낼 수도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게임의 간결한 목표로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저자가 강력히 주장하듯 정도의 문제다. 게임을 '끌' 수 있는 능력도 능력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사실 오히려 그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의 행위성에서 단숨에 나올 수 있는 통제력이라는 건, 한국과 일본에서 얘기하는 '리셋 증후군'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문제시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게임 자체에 대한 책 중에서는 확실히 가장 깊은 분석을 보여준 책이다. 행위성이라는 걸 단지 위에서 언급한 예시들처럼 인격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는 데에 국한하지 않고, 단지 체스 같은 퍼즐 게임에서 요구되는 한정된 규칙 상에서의 집중 같은 점까지 포괄적으로 바라본다는 데에서 더욱 유연한 논증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게임과 얽혀 있는 피곤한 PC 논쟁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 결국 똑같은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게 뻔하기도 하고. 아마 그런 '올바른' 게임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도, 행위성 전달자로서의 게임은 유효한 분석틀이겠거니 싶다.
응牛옌도 금지어야?? ㅋㅋㅋㅋ
오 이거 안그래도 어제 샀는데 개추 - dc App
예전에 샀는데 잃어버렸음 이 글 읽고 재구매 욕구 뿜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