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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정치-사회철학>, 리좀총서 <들뢰즈로 말 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저자 신지영 교수신문 글의 일부.



들뢰즈가, 플라톤의 후기 대화에서 이데아가 어느 정도 다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질 때를 고려한다면, 그때에는 차이 그 자체와 플라톤의 이데아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한 것처럼, 만약 헤겔이 부정과 모순이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갔더라면 자기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헤겔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플라톤은 실체(실사)적 이데아를 놓음으로써 전체를 주어진 것으로 상정했고, 헤겔은 (모순적) 자아를 놓음으로써 전체를 주어진 것으로 상정했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존재는 (개체적-명사적 실체라기보다는 사건으로서) 열려 있는 것이면서 관계이기 때문에 그 전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들뢰즈는 이데아를 사유할 때 무엇을 물을 것이 아니라, 누가, 얼마나, 어떻게, 어디에서, 언제로 묻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제언을 한 것이며, 모순으로서의 자아를 놓고 변증법을 통해 전체로 나아가려는 헤겔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것이다. 목적이나 기원은 나중 문제고, 주어질 수 없는 사건 전체로서의 존재를 실체적으로-주어진 것으로 간주한 지점에서, 이미 문제는 틀어진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플라톤과 철학에 대한 생각이 맞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