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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주의 산들: 미국 산시 19」


  허허어

  저 사나운 독수리들이

  송아지들이 되어

  매애 매애 울면서

  걸음마해 나오네요.



「아캔서스 산들이 하시는 말씀: 미국 산시 21」


  곳간에 양식이 그득히 쌓여

  우리 모다 부유스럼 하오니

  우리가 하는 일의 빛깔은 두루

  저 푸른 하늘빛으로 하는 게 좋겠소이다.



「인디애나 산들의 기원(祈願): 미국 산시 23」


  하느님이시여

  비옵나니

  우리를 늘 무명(無名)으로 하시고,

  기워서 입은 옷처럼

  뙈기 뙈기의 풀밭들을

  우리들 둘레에 매양 있게만 하소서.



「매사추세츠 산들에서 오는 이미지: 미국 산시 31」


  늙은 아내여

  당신의 은빛 머릿단은 아직도

  우리가 젊었을 적에

  산허리에서 같이 추던 춤만 같구려.

  희어져서 더 삼삼히 나타내고 있구려.

  옛날의 쌍두마차를

  또 한번

  타보고 싶게 하시는구려.



「버지니아 산에서는: 미국 산시 34」


  로저스씨가

  부자가 되었다고 좀 뻐기니

  곰들의 마을은

  가난한 사람의 사과나무 동산이

  더 좋다고 자랑해 얘기하고 있도다.



- 『산시』(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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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학을 두고 그 궁극적 목표가 현실 도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증오한다는 것은 현실을 의식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산물은 당연히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무의미시와 유사성을 띠는 서정주의 『산시』는 뜻밖에 그 증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시집에 실린 자신의 말놀음 시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 것이다. "부조화의 조화는 왜 만드느냐고? 물론 그건 이 세상을 살자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서정주 문학앨범』)


앞서 『팔할이 바람』에서 그가 김지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산시』 역시 김춘수의 시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시』에서의 말놀음 시편은 특정 지역의 이름이나 뜻을 이어붙이는 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춘수의 방식과 비교하면 너무나 단순한 방식이어서 마치 편법을 쓴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어떤 작품의 경우 완전히 실패작이 아닌가 하는 당혹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산을 주제로 다룬 단시(短詩)에서만은 나름의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 위의 다섯 편은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고른 것이다. 가령 「매사추세츠 산들에서 오는 이미지」의 경우 위키피디아를 참조해서 '그레이록(Greylock)'과 '새들 볼(Saddle Ball)'이라는 산 이름의 뜻을 가지고 이미지를 만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