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세부적으로 보면 의외로 의견 일치를 보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 중 하나가 저우언라이에 대한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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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오의 모든 동료들은 신하 같은 신세가 되었고 그에 걸맞게 처신했다.이러한 처세에 가장 능한 자는 저우언라이였다.

[…] 하지만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오는 의심이 너무나 많아져서 끊임없이 측근의 충성을 확인해야 안심했다. 저우언라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석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배신했기 때문이다." - 필립 쇼트, 『마오쩌둥2』, pp.426-427


"[회의에서] 저우언라이의 비판이 특히 맹렬했다. […] 1980년대에 덩잉차오는 당시 공산당 총서기였던 후야오방에게 이 의사록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사록은 중앙 문서고에 저우언라이의 비밀문건 중 하나로 보관되고 있었는데, 후야오방은 덩잉차오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본을 파기했다. 하지만 후야오방은 복사본이 하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 필립 쇼트, pp.638-639


"저우언라이도 마찬가지였다. 6월 16일에 그는 마오에게 굴욕적인 자아비판서를 보냈다. 제목은 '쭌이회의부터 현재까지 40년간 나의 실책과 죄'였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의 비서 장위펑에게 이 글을 보내어 메모를 하나 첨부했는데, 대단히 처량한 느낌을 자아낸다. "주석의 기분이 좋고 편안할 때, 식사를 든든히 해서 배가 두둑하고 숙면을 취한 뒤에야 보여주십시오. 주석이 피곤할 때는 절대로 보여드리지 마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 필립 쇼트, pp.646-647


"[저우언라이는] "유연한 성격으로 마오에 대한 충성이 종교가 된 사람" - 필립 쇼트, pp.308-309


"[대약진 운동으로] "수천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 [보고서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에게만 제출되었[고,] 저우언라이는 이 보고서를 읽은 뒤 보고서 복사본을 전부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 필립 쇼트, pp.280-281


"그[저우언라이]는 그야말로 납작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부인이 모든 결정을 내리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제가 나서서 부인의 명령이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하겠습니다.> " - 프랑크 디쾨터, 『문화 대혁명』, p.233


"열쇠는 저우언라이였다. 그가 군부의 대의를 지지한다면 힘의 균형이 군부 쪽으로 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총리는 주석의 심기를 절대로 거스르지 않기로 다짐함으로써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 프랑크 디쾨터, pp.231-232.


"국무원 총리로서 저우언라이는 숫자들을 가지고 단순히 땜장이 노릇만 [했다]" - 디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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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자 모두 저우에 대해서는 그리 좋지 않게 평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