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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책이 막 나왔을 적에 한 번 읽었는데, 당시에는 이론적인 바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후기 소비에트의 생활상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읽었다. 엑스레이판을 불법 레코드판으로 재활용해서 쓰는 등 이 문화적인 생활상에 주로 관심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이 밴드 <키노>에 대한 영화 <레토>에서 주로 참고되기도 하고, <민방위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아우크치온АукцЫон> 등의 러시아 밴드에 대한 일화를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맥락들을 담고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책이기는 했다. 다만 최근 <모방 시대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전반부, 이 생활상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이론적 배경이 문득 생각나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독의 첫 후기는, 이 책이 후기 소비에트의 생활상과 소비에트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 여러 저술에 큰 영향을 줬겠다는 생각이다. 정치 권력의 규범과 실제가 충돌할 때 규범을 평가하는 분명한 주체가 사라지고 만 상황에서는 어떠한 변형도 규범적 일탈로 해석될 수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해 규범에 대한 말은 최대한 변형 없이 반복되기만 하며, 그 결과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진술적 의미보다는 제도의 실행을 위한 수행적 의미로만 받아들여져지게 된다는 이론은 <모방 시대의 종말>에서 소련 이후의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와 그 제도를 대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암시한다. 체제의 중심에 있는 신성한 규범의 축이 레닌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모방>이 러시아에 대한 분석 이후 미국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소비에트의 붕괴와 현대 미국은 묘한 공통점을 갖는데, 체제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규범이 있고, 이 규범의 평가자 혹은 평가대상으로서 스탈린 혹은 소비에트를 갖던 이 둘은 그것을 상실한 이후 더 이상 규범에 대한 말을 진술적 의미로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라는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스탈린이 없는 것처럼, 이것은 소비에트에서나 허용될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다, 라는 평가대상인 소비에트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 인해 이론적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실천적 영역으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으며, 이 성스러운 제도에 대한 발언은 오직 제도의 영속화를 위한 수행적인 의미에서만 받아들여진다.
다소 두루뭉술하게 접근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것이 역사철학의 포스트모던적 전개에 대한 좋은 설명을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확실히, 소비에트가 오히려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포스트모던을 맞이했다는 평도 그럴듯하다. 물론 이것이 미국 역시 곧 소비에트와 마찬가지로 붕괴한다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외려, <모든>은 기본적으로 책에서 보여주는 후기 소비에트의 생활상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곧 무너질 제국과 그 제도에 회의적인 시민들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그 제도에 염증을 느끼지만 문화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은, 이 생활상이 영원하리라 믿는 시민들이 제도의 안과 밖에 동시에 위치하는 삶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도식이 2023년의 미국과 나머지 미국적인 국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요즘의 정치 상황과 경제 상황이 자국에 대한 낙관주의를 뒤흔들고 있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전제 자체를 의심할 국민은 정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이론과 도저히 일치하지 않는 현실의 제도 사이의 위선적인 충돌을 빈정거리며 더 이상 제도에서 요구하는 진술-이를테면, 취임 전의 선서 등-을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게 될 테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소비에트의 고르바초프처럼 누군가가 정말로 이 규범을 공개적으로 의문시하지 않는 이상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미국 역시 그리 될 것인가? 이 질문을 지금 답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 후기 미국이라고 할 만한 시대는 이제야 막 시작한 셈이니까. (사실 ‘후기자본주의’라는 용어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런 용어들은 때때로 참 현실에 뒤떨어졌다는 인상을 주곤 한다.)
흥미롭게도 신비스러운 타자라고 할 것까지 부상했다.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딥스테이트 음모론은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의 담화 속에 섞여 들어 왔으며, 우리는 결코 딥스테이트를 진지하게 믿는 수용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페이스북의 설립자 주커버그가 렙틸리언일지도 모른다며 자연스럽게 딥스테이트의 개념들을 이 세상의 일원으로 삼는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덜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자료나 대화에서는 확실히 그 영향력을 느끼곤 한다.) 이들에 대한 농담은 체제에 대한 농담과 공존하며, 소위 공산주의 유머가 그러했듯 자유민주주의의 ‘다원성’에 대한 경멸 섞인 어조를 품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딥스테이트에 살고 싶어할리는 없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기 전의 후기 소비에트 시민들이 딱히 서구에서 살기를 원하지는 않은 것처럼.
물론, 이런 식으로 도식을 미국에 적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도약이 필요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모방>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대가 역사철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했다는 생각이다. 소위 신흥강자라고 불리는 국가들이나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국가들은 도식에 맞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냐는 양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그나마 중국이 후기 소비에트가 그랬듯이 수행적 의미로서의 규범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그나마도, 어떻게 국가가 발전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권력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의 영역에 한정되겠거니 싶지만. (하긴, 사실 이 이야기도 결국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들먹이며 몇 번이고 하던 그 나물에 그 밥일지도.)
P. S. 학교 도서관에 내가 신청했던 책인데, 몇 년 사이에 밑줄이 늘었다. 왜 기증도서도 아닌 책에 낙서가 이렇게나 가득한지는 정말 낙서한 사람 외에는 모르겠지.
모방 시대의 종말 책은 어떰?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모방해야 할 모범적인 제도로서 기능하는 데에 실패했는지를 중/동유럽, 러시아, 미국 세 케이스를 통해 분석하는 책인데 상당히 흥미로움
혹시 책에서 앞으로 지향할 방향이나 해결책에 대한 토론, 담론 얘기도 나온?
방향성이나 해결책 이야기가 조금 나오기는 하는데 현상 분석에 더 가까운듯
우러전으로 좀 조용해지긴 했다만 아직 현상황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못 찾고 있는 상황인 건 분명한 거 같음 / 좀 사족인 거 같긴 하지만
오... 좀 치우쳐져 있는 책은 아니지?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실패했으니 대안은 사민주의라던가 진작에 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안일하게 대처하다 트럼프 같은 히틀러 이상의 악마가 뽑혔다거나
ㅇㅇ 그런 건 아님 사실 오히려 나는 자유민주주의에 좀 비판적인 편이라 아쉬웠지만 기본적 논조는 자유민주주의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이걸 수용하는 과정이 문제다 라는 쪽에 가까움
재밌을 거 같네 얘기 감사
티머시 스나이더의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거 같음. 마크 마조워가 말한거 같은데 어디서 출발해서 국제관계나 세계사에 이르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차이가 나듯이 확실히 동유럽이나 러시아를 베이스로 발전해온 연구들은 동시대를 보는 관점이 서유럽 스타일과는 좀 다른거 같음.
사실 그것도 읽어봤는데 <모방>에서는 러시아를 그런 민족주의 이념으로 접근하는 관점에 대해서 비판하는 편이었음 / 나는 러시아 내부 정세를 잘 모르니까 그냥 둘 다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중이긴 한데 전에 읽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저서도 그렇고 어느 쪽이든 꽤나 설득력 있는 방향인듯
그리고 사실 <가짜> 읽을 때는 몰랐지만 <피에 젖은 땅> 읽어보고 나니 아무래도 <가짜>는 좀... 말이 과격한듯
충분히 공감한다. 너무 과도한 (성급한) 이론화가 아닌가 싶지. 갠적으로는 '치료 받을 권리'와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의 괴리가 커서 좀 놀라움. 같은 사람이 쓴거라고??? 그 생각만 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