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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을 좋아하는 거예요.
없어질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봤자 소용없지만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한 버튼을 누르면 억 단위의 돈을 받는다. 대신 버튼을 누른 당사자는 5억 년 동안 공허의 공간에 갇혀 살게 된다. 어떤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살아야 한다. 5억 년 동안 산 이후에는 그동안 보냈던 5억 년이란 시간이 사라진다. 아예 없었던 일이 된다. 정신도 멀쩡하고 5억 년 동안의 기억도 없다. 결국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억 단위의 돈이 ‘공짜’로 생겨나는 꼴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주 발칙하면서도 흥미로운 사고 실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이런 식의, 아주 독특하면서도 때론 심오하게 보이는 사고 실험들은 알 수 없는 흡입력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그만의 흥미진진하고 깊은 통찰을 안겨주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작가 미야키 스가루가 쓴 <3일간의 행복>도 그렇다.
수명을 팔았다. 1년당 1만 엔에.
나의 삶에는 앞으로 뭐 하나 좋은 일 따위는 없다고 한다. 수명의 “감정 가격”이 1년에 겨우 1만 엔뿐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미래를 비관해 수명 대부분을 팔아버린 나는, 얼마 안 되는 여생에서 행복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지만 무엇을 해도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헛돌기만 하는 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감시원” 미야기. 그녀를 위해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의 수명은 2개월도 남지 않았다.
주인공인 쿠스노키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특별해야만 했던 아이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학급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외톨이였던 그는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히노메와 친해지게 된다. 쿠스노키와 히노메는 ‘소꿉친구’이자 라이벌과 같은 관계로 지낸다. 그들은 10살 때 20살이 되어도 서로 동반자가 없으면 만나자고, 풋내 가득한 약속을 한다. 그들은 가정환경과 학업 같은 문제로 인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헤어지게 된다.
20살이 된 쿠스노키. 그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 특별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생활고에 시달린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비관적인 처지다. 그런 그는 자신이 아끼던 책이나 CD들을 팔러 간 곳에서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수명을 매매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수명을 판다면 억대의, 커다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명을 매매하는 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남은 수명은 30년. 그리고 그가 이 수명을 팔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은 30만엔. 1년당 1만엔 꼴. 수명의 가치가 최저 매매가인 액수였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비관해 3개월을 빼고 나머지 수명을 다 팔아버렸다. 3개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허튼짓이나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그에게 미야기라는 여성의 감시원이 붙었다. 미야기는 매분 매초 쿠스노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가 슬플 때도, 그가 욕망에 솔직해질 때에도. 스스로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보잘것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버린 쿠스노키에게 남은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펼쳐질까.
!스포주의!
상처투성이인 채로 살아가는 존재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일까. 글을 온전히 글 자체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작가의 꿈과 함께 섭취된 약이다. 좋은 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 부작용이라 함은 무언가를 내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글이 있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기어코 파헤치고 헤집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파헤치고 헤집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상처 난 존재’일 것이다. 주인공인 쿠스노키는 물론 히메노, 미야기까지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등장인물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는 특별한 사항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의 크기나 깊이는 각자가 생긴 꼴처럼 다를지라도 상처가 있다는 것은 딱히 주지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상처는 이야기 속에서 사연으로, 사건으로, 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해 읽는 이로 하여금 인물에게 몰입하게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3일간의 행복>에서는 쿠스노키의 상처가 이야기의 큰 줄기를 그리고 있다. 그 옆으로 히메노, 미야기의 줄기가 보인다. 그렇다면 쿠스노키, 히메노, 미야기는 어떤 상처들을 가지고 있을까.
쿠스노키와 히메노의 상처는 한 곳에서 태어나 갈라져 다른 모습으로 곪고 곪은 모습이다. 서로의 상처를 발견했을 때는 서로 상처에 대해 공유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상처는 서로의 존재로만 치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이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상처는 그들의 관계에서 특유한 것으로, 중점적인 것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맨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아주 어릴 때, 10살 정도였으니까 어른의 시점에선 너무 어리고 섣부른 판단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을 때가, 믿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겐 그랬다. 그들은 껍질을 만들어 그 안을 은신처처럼 여겼다. 그 껍질 안에 다른 사람을 출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소꿉친구’였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져야 했다. 헤어지고 나니까 상처는 치유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상처는 그렇게 찢어진 껍질 속에서 곪기 시작했다.
쿠스노키는 10년 동안 히메노와의 재회를 그리며 살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찾아오는 인연들을 모조리 거절해가며 히메노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나중에 히메노와 만나게 될 때를 그리며 더욱더 특별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었다. 비록 중간에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가 히메노의 ‘구조’ 신호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히메노의 구조 신호를 알아차렸지만 주의 깊게 여기지 않고 평범하게 답장했던 것이다. 20살이 될 때까지 그는 평범하지만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어디에 가서도 녹아들지 못했다. 그의 껍질은 여전히 배타적인 것으로, 자신에게마저도 배타적으로 되었다.
히메노는 몇 년 동안 쿠스노키와의 재회를 그리며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18살의 나이에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전에 쿠스노키에게 구조 신호로써 편지를 보냈지만 쿠스노키는 그것을 무시하고 만다. 사랑했던 이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기분이었을까. 양가적인 감정이 극대화된 것이었을까. 히메노는 쿠스노키를 철저히, 극도로 원망하게 된다.
이 둘은 우연히, 10년 전 약속했던 장소에서 마주하게 된다. 쿠스노키는 이미 수명을 팔아버린 뒤였고, 히메노는 쿠스노키에 대한 원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상황이었다. 쿠스노키는 히메노의 원망을 알지 못했고 히메노는 쿠스노키가 수명을 판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며칠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났을 때 쿠스노키의 껍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히메노가 쿠스노키를 극도로 원망해 그를 다시 만나는 날에 그의 앞에서 자살해버릴 생각을 했던 것이다. 히메노는 쿠스노키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음을 확인하고 자살하는 대신 그에게 원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다. 쿠스노키에겐 그토록 고대하던 만남이 절망이자 파멸의 순간으로, 히메노에겐 복수할 가치가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으로 변했다.
미야기의 상처는 그의 부모로부터 비롯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가 어릴 때 집을 버리고 떠났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기다렸다. 남편이 올 때까지 살기 위해 시간을 팔아 수명을 샀다. 미야기가 10살 때 어머니는 죽어버렸다. 어머니는 미야기에게 빚을 남겼다. 그 빚은 10살짜리 꼬마가 갚기엔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미야기는 결국 빚을 갚기 위해 30년이란 시간을 팔았다. 그 대가로 30년 동안 감시관리원 역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감시관리원이 되면 감시 대상자 이외에 누구도 감시관리원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 인지해도, 그 인지조차 없었던 순간이 된다. 말 그대로 ‘투명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존재가 투명해지는 것은 존재가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보다 크나큰 결함이 된다.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게 되는 어중간한 존재. 존재라고 말하기에도 멋쩍은 그런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보면서 투명 인간의 삶을 살아갔다. 게다가 그에게도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미야기가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사회와 집단에 녹아들어 살았다.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한 순간
작품 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까지의 나는 구제불능이었지만, 과오를 깨달은 지금의 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사고에 빠집니다… 그 사람들은 간신히 시작 지점에 섰다는 것뿐입니다. 계속 패배해온 도박에서 간신히 냉정함을 되찾은 것뿐입니다. 그것을 일발역전의 찬스라고 착각했다간 변변한 일이 없습니다…”(p69) 석 달 동안 수명의 가치를 바꾸겠다는 쿠스노키에게 미야기가 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쿠스노키가 되풀이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방어 기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칠게 말해 저 말이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상처를 억누르기 위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해 절벽에 내몰린 사람에게 다시 시작점에 섰다는 것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낭떠러지에 섰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삶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그 시작점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맥거핀적인 여주인공 히메노를 지나 쿠스노키는 시작점의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자판기 순회’를 통해 그 전부터 이상형에 가까웠던 미야기와 더욱 친밀해지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히메노만 바라보며 껍질 안에 있던 쿠스노키가 세상을 향해, 이미 끝이 예정된 세상이지만, 한 발짝 도약하게 되었다. 쿠노스키는 자판기가 있는 곳들을 여행다니면서 미야기를 감시관리원이 아닌 한 인격체로 대우한다. 주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미야기에게 말을 걸고, 같이 걷고 웃으며 행동한다. 주변인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지만, 어차피 죽을 건데 뭐 어쩌라는 식이다. 쿠스노키에게 미야기는 정신적인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었고, 미야기에게 쿠스노키는 상냥한 인정과 존중이 되어주었다. 죽기 전에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된 쿠스노키는 점점 더 미야기에게 마음이 기울여졌고 미야기는 그런 쿠스노키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기댄다. 이 둘은 자판기 순회를 통해, 더욱더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미야기를 사랑하게 된 쿠스노키는 진심으로 누군가가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명은 두 달밖에 안 남은 상황. 그는 두 달 동안 미야기의 빚을 갚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남은 수명을 다시 파는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다시 팔아도 수명 가치에 변화가 없었다. 수명 가치에 변화를 주기 위해선 사회적 공헌도나 지명도가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런 것을 얻을 순 없었다. 쿠스노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로 했다. 바로 미야기와 함께 ‘사는 것’이다. 쿠스노키는 미야기가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그는 어느덧 그 지역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반은 그를 좋게, 행위 예술가나 팬터마임 연기자로 평가했고 반은 그를 나쁘게, 정신이상자로 평가했다. 그러던 도중에 쿠스노키는 미야기가 쿠스노키와 지냈던 일상을 그렸던 스케치북을 발견한다. 그 스케치북엔 미야기가 그린 쿠스노키가 있었고, 쿠스노키는 귀여운 앙갚음을 하기 위해 자고 있는 미야기를 그린다. 그리면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자신의 특별함을 비로소 되찾는다. 그가 세상과 화해하는 순간이다.
불꽃놀이가 터지던 밤, 쿠스노키는 미야기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그러고 나서 사회적 지명도와 재능으로 달라진 수명 가치에 따라 3일을 제외한 수명을 판다. 달라진 수명 가치에 따르면 그는 미술사에 영원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쿠스노키는 그 돈으로 미야기의 빚을 미야기가 3년만 일하면 자유가 될 정도로 탕감했다. 3일 동안은 감시관리원이 붙지 않기 때문에 쿠스노키는 미야기 없이 3일을 지내야 했다. 주변에서 미야기를 찾자 그는 슬픔에 빠진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미야기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3일을 보내기 위해 남은 수명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그 둘은 ‘앞으로의 3일을, 어떤 식으로 보낼까’ 고민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동안 상처로 얼룩져 있던 그들의 삶은 3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3일은 내가 보냈어야 했던 비참한 30년보다도, 내가 보냈어야 했던 유의미한 30일보다도, 훨씬, 훨씬 가치 있는 나날이 될 것이다.’ (p273)
작가 후기
<3일간의 행복>이란 작품은 이렇게 끝이 난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바보는 죽을 때까지 낫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것에 대해 조금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바보도 죽을 때까지는 낫겠지.”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제가 말하는 ‘바보’란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 바보의 특징으로 우선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보다 증세가 심해지면 그 믿음은 “나는 행복해져선 안 된다.”까지 확장되어, 최종적으로 “나는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라는 파멸적인 오해에 이릅니다…그렇습니다만, 첫머리에 말한 대로 저는 이런 바보라도 죽을 때까지는 낫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을 것이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러한 ‘바보는 나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그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은 아마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것입니다…“지금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데.”라는 후회와 탄식이 깊으면 깊을수록, 세상은 오히려 잔혹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아름다움에 대해 쓰고 싶다고, 저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3일간의 행복’도, 작품을 통해 목숨의 가치라든가 사랑의 힘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마음은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해 서스펜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나는 하루키를 떠올렸다. 유려하면서도 과감한 표현도 한몫했다. 초반부까지 나는 차라리 이 책을 읽을 바엔 하루키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일본 문단계에서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일본의 어린 작가들이 하루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아마 미아키 스가루라는 작가도 그랬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작가의 잠재태는 이미 하루키라는 대작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심리 묘사와 전개 방식이다. 아무래도 원작이 웹소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매 화마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화를 궁금하게 하고 결국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맥거핀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서스펜스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매우 탁월하다. 게다가 이런 방식에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묘사가 더해진다. 힘을 줄 땐 주고 뺄 땐 빼는 기술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그런 면에선 프랑스의 기욤 뮈소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언어 사용이나 심리 묘사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이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여백을 이용하는 것도 차이점이다. 쿠스노키가 미야기를 대하는, 그리고 미야기가 쿠스노키를 대하는 방식이나 마음의 묘사가 은밀하면서도 뚜렷하게 전해진다. 마치 밤하늘에 은은하게 빛나지만 확연하게 보이는 별처럼 말이다.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깊은 여운을 주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히 신카이 마코토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담긴 메시지도 훌륭하다. 자신의 인생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질문, “당신의 수명을 팔 수 있다면 팔 것인가?”부터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죽기 전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였으면 좋겠는가?” 등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해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삶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재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색다른 질문을 삶에 던짐으로써 말 그대로 삶의 다른 색을 재조명할 수 있다.
여기에 적힌 것은 이 책의 극히 일부분이다. 적지 못한 부분도, 적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직접 읽어보고, 생각하고 판단할 것을 추천한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