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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의 생과 사」



  강원도 양양군의 낙산사 바닷가엘 가면, 옛날 신라 때에 의상 스님이 자살하려고 뛰어 내렸었다는 낭떠러지의 바위가 천야만야 하늘 높이 솟아 서 있지.

  "죽어 버리자!"고 뛰어 내리노라니까, 관세음보살님이 이걸 살려 내려고 지키고 있다가 안 다치게 잘 받아 냈다는 바다 위의 이얘기가 그 낭떠러지 아래 또 꿈틀거리고 있지.

  그러니까 이런 이얘기는 두 개를 다 포개 보면 결국 무슨 이얘긴가?

  "에에잌! 빌어먹을 놈의 것! 물에 빠져 죽어나 버리자!"고 작정한 건 고 낭떠러지에서 마악 뛰어 내릴 때의 느낌이었지만, 그게 좋은 공중을 뛰어 내려가는 동안에 그 느낌에 아조 빠른 변화가 와서, 물에 빠져도 몸을 다치지 않을 만큼, 일테면 차린 다이빙의 균형 있는 낙하 쪽으로 바꾸아지며 "야! 역시나 사는 것이 제일 꽃다운 일이다!" 새로운 작정이 또 섰던 것이지. 앞으로 새로 필 꽃기운들이 그 공중에 모두 깃들여 있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도 뼛속에 닿게 셈하고 느끼면서 말씀이지.

  그러구서 바닷물에 잠겨서는 뭐 개구리헤엄 같은 거라도 치면서 치면서 언덕으로 그럭저럭 다시 깁더 올랐었겠지.

  아마도 이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뒤에 황복사에서 중들하고 함께 탑돌이를 할 때에도 "탑돌이는 땅을 도는 게 아니라, 하늘을 아조 자알 날아 도는 것이다."고 넌즛하게 말씀하고 있었던 것은…….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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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에서) 재계한 지 7일째에 좌구(座具)를 새벽 물 위에 띄웠더니 용천(龍天)의 팔부(八部) 시종이 굴속으로 (의상을) 인도하였다. (…) 다시 7일을 재계하고 나서 곧 (관음의) 진용을 보았다." 『삼국유사』의 이 구절을 과거에는 의상의 자살 미수로 해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정주는 이 일화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것을 위와 같은 논리로 처리하였다. 낙산사 바로 앞이 낭떠러지인 것은 사실이고 그 앞의 바다가 장관인 것도 사실이지만 기지를 발휘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다만 누구라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삶에 대한 절실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은 뒷날 공중에 뜬 상태로 탑돌이를 할 수도 있게 되는데 위의 시에서는 그것을 앞의 일화와 연결지어 역시 그럴듯한 경구로 바꾸어 놓고 있다.


서정주에게만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 서정주의 시에서 하늘은 흔히 이상적인 가치 또는 관념을 비유한 존재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그 점에서 종교적 행위인 탑돌이가 단순히 땅을 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아조 자알 날아 도는 것'과 다름없다는 표현은, 그 행위가 삶의 가치를 알아내기 위한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그렇게 충격적인 표현이 아니나, 이 시에서 의상은 정말로 공중, 즉 하늘 위에 떠 보았던 사람이라는 점이 이 구절을 재미있게 한다. 하늘에 떠 있을 때 그가 느낀 것은 삶에 대한 극도로 절실한 애착이다. 다시 말해 그가 가르친 교훈이란, 자살하기 직전, 자살하는 자신을 후회할 때의 그 순간처럼 삶을 살라는 뜻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