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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항상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는 저 드넓은 바다도 그렇지. 그리고 침대도,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침대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다면 참 좋을 거야. 침대는 바로 네가 패배했을 때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지, 그는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한 곳인지 난 여태껏 알지 못했어. 그런데 널 패배시킨 것은 누구지?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도 아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노인과 바다를 읽는데에 있어서,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어'라는 노인의 독백이 너무 유명하기에, 그 굳센 다짐 이후 찾아온 상어떼의 습격에서 맞이한 처절한 상황은 많이들 부각되지 않는듯 싶다.
노인과 바다 하면 흔히들 푸르른 바다와 커다란 청새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는 새벽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노인의 독백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에선 카리브해의 뜨거움을 가득 담은 낭만적인 해변은 없다. 단지 고독, 그러니까 멜빌이 이미 그려낸 바 있는, 자연들의 무한한 투쟁만이 심연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들에겐 매일매일이 야구 게임과 같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일까? 패배하는 것일까?
항해가 위기에 이를 때마다 노인은 자신이 두고온 지상을 생각한다. 소년을 생각한다. 소년과 떠들던 일상을, 뭍에서 이뤄지는 하찮음, 떠들석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고 지상에 머무를 수 없다. 그는 매일 바다로 나가며, 매일 지상을 그리워한다. 낚시꾼들은 평생을 고향에 있으면서도, 그곳을 그리워하며 산다. 여기에는 뱃사람들 특유의 낙향 의식이 서려있는 듯하다.
필자는 미국 문학에 대해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필자가 감히 미국 문학에 나타난 공통 의식에 대해 일축해보자면, 낙향 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멜빌에서부터, 지금의 디아스포라 문학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인간이란 늘 항해 상태에 있는 자들인 모양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다다르기 위해 걷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고 있든, 그들은 늘 지나치는 중에 불과하다.
노인과 바다로 돌아오자. 청새치와의 거친 투쟁은 그에게는 직업이면서도 일상이면서도 투쟁이면서도 일종의 게임이다. 노인은 거의 사흘 동안 벌어진 씨름을 통해 청새치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안타깝게도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우승컵이나, 챔피언 벨트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기야 그런 것들도 이사할 때 들고가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컵과 바지에 차기엔 터무니 없이 큰 벨트일 뿐이지 않는가? 그는 육지로부터의 원정 선수다. 그럼 멋있게 담장을 넘긴 그가 할 일은 하나이다. 홈으로의 귀환.
상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쟁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인이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전후의 무력감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헤밍웨이가 전후 세대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게 전적으로 옳은 설명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옳은 설명이란 없을지 모른다. 그들은 우리로선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상어로부터 얻는 시련은 마치 노인이 과분한 성과를 누렸다고 꾸짖는 듯하다. 그는 청새치를 잡았을 때 청새치와의 일종의 우정을 잊어버렸다. 노인의 머릿속에서, 일순간 청새치는 돈으로 환산 가능한 토막난 고깃덩이가 되어버린다. 노인은 그러한 상념을 금방 떨쳐내지만, 바다는 뭍에서 온 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방랑자 신분으로 얻는 성과란 결국 허위에 불과했다. 그 성과로 인해 그는 방황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겐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뱃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그가 청새치를 얻으며 놀고 먹게 되면 뱃일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청새치를 잃음으로써 다시 뱃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제 그는 귀향할 뿐이다. 소년이 있는 곳으로. 뱃사람으로서. 다시 야구 비유로, 그는 아무런 점수를 얻지 못한 채 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에게는 벤치보다는 베이스가 더 몸에 익숙할 것이다. 한 번의 히트가 그를 벤치에 앉혀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순번은 돌아오고, 다시금 타석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베이스를 떠도는 것이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다.
그 유명한 말이 노인이 정신없이 혼잣말을 내뱉다 나오는 걸 생각하면 유독 그 문장에만 중요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생각함 오히려 상어를 대치하고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자기 용기를 북돋는 의식 정도에 가깝지 않았을까
중요한 말은 맞긴함 다만 뒤에 상황과 대비된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함 솔직히 노인과 바다 띵언은 청새치를 거의 잃은 상황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세간에서 작품에 대한 인식은 노인과 바다=패배창조아님=인간찬가->오오 대단한 노인의 의지! 정도기 때문에... 난 앞선 말들과 거의 동일한 지위를 줘도 된다 생각함
예아 맞음 그러니까, 뒤에 상황이 인간 찬가처럼 느껴지는 앞의 말들과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에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짐 노인과 바다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임
뭔가 항상 그 부분을 읽으면 고난을 앞둔 상황에서 쓰읍 어쩔 수 없지.... 하는 정도의 쿨함만이 생각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 같은? 그래서 뭔가 앞뒤가 다른 낙차보다는 솔직하게 뱉어내는 자신의 심정에 가까워 보이고. 바다에 홀로 나가 고난을 앞두고는 솔직한 상념이 마구 튀어나오며 스스로를 꾸짖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다가 육지로 돌아오면 모든게 다시 교류 없는 하드보일드함으로 변하는
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생각이 많아지네요 역시 좋은 작품,,
일축해보면? 일축하다 一蹴하다 1. 동사 제안이나 부탁 따위를 단번에 거절하거나 물리치다. 2. 동사 소문이나 의혹, 주장 따위를 단호하게 부인하거나 더 이상 거론하지 않다. 3. 동사 운동 경기 따위에서 상대를 손쉽게 물리치다. 벨트를 바지에 차?
슬러거 slugger 명사 체육 야구에서, 장타를 많이 날릴 수 있는 힘을 가진 타자. 표준국어대사전 한글 전용의 문제점들이지 영어는 잘하는데 우리말 속의 한자어는 점점 뜻을 모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