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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동경대의 상징 야스다 강당을 점거한 학생들은 전공투(全共鬪·전국학생 공동투쟁회의)를 결성하고 외부의 접근을 차단한 채 그들만의 ‘해방구’를 만들었다. 1969년 5월 13일. 일본 최고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전공투가 점거한 야스다 강당에 혈혈단신 들어선다. (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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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와 동경대 전공투 간 유명한 토론은 내용보다 사진으로 유명하다. 1970년 그가 자살하기 직전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텍스트이다. 강연을 텍스트로 옮기는 방식은 미셸 푸코의 <담론의 질서>, <주체의 해석학> 등을 통해 익숙하긴 했으나, 토론을 직접 읽어본 것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도였다. 다만 발화자들의 생각은 모호하고 두서없다. 쓰인 형식은 소설이나 연극과 비슷하나 결이 다르다. (한 작가가 쓴 희곡과 달리) 정제되지 않은 혼란, 패닉에 빠진 기분이다. 번역자 역시 그 곤혹스러움을 옮긴이의 말에 밝힌 바 있다.


특히 내가 기대를 너무 했나 싶지만, 당대 지성인 동경대 엘리트들의 말장난이 도가 지나치다. 시니피앙을 강조한 구조주의가 무르익은 시기에 여전히, 오로지 헤겔 철학에만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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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관념에 이름이 붙지 않으면 관념은 관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웃음) 그래서 당신과 나의 본질적인 차이는 결국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사물에 이름이 있냐 없냐.


전공투 E) 개념.


미시마) 개념에 이름이 있나? 이름은 개념이 아니야. 이름과 개념은 달라.


전공투 E) 관념은 이름이 없으면 관념이 아니다? 관념은 개념이라는 기초 지음이 있으니까 관념인 거야. 개념이 있기만 하면 돼, 뭐든지…….


미시마) 관념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앵포르멜 한 사고방식이지.


전공투 E) 그러니까 가령 이것이 (미시마를 가리키며) 미시마 씨라고 불려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어. 그런 얼굴, 모양새를 갖고, 그런 총체로 있는 거니까.


미시마) 그래도 내가, 하찮은 이름이지만 미시마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제군들이 여기에 불렀고, 그리고 여러 가지로 '이지메' 해주는 것이잖아? 아주 하찮은 일반 사회의 차원 낮은 말을 일부러 하자면 말이지.


제군에게 내 행동은 아주 추하지? 자위대 따위에 입대하고 밀리터리 룩같이 입고 다녀서 추하다고 입을 모으겠지만, 내 쪽에서 보자면 당신들처럼 복면 쓰고 대청소 보조원같이 하고 다니는 것도 추해. (웃음) 뭐 내 쪽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행동의 무효성은 거의 오십 보 백 보라고 믿고 있어. 이것을 어떻게든 유효성으로 만들어보자고 할 때는 목숨 걸고 싸워야지. 지금 목숨 걸고 싸울 때라면 서로 죽이면 돼.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면 결판은 나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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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69년 당시의 토론 및 후기가 1부이고, 2000년에 방송을 통해 모인 일부 전공투 출신의 대담이 2부이다. 31년의 간극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책은 2권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2부는 읽지 않았다. 웬만하면 완독하지만 1부에 보여준 전공투들의 지리멸렬함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과 유사한 한국의 (유시민, 조국으로 대표되는) 586은 전공투 출신과 달리 꽤 오랜 세월 동안 권력 주변에서 중심으로, 끝내 정권을 창출하기까지 한 바 있다. 오히려 다시 23년이 흘러 노인이 되어 살아남은 현재의 전공투(마케이누=패배한 개)와 한국의 (진보, 보수를 초월하여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586 정치인이 대담하는 것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아래는 흥미로운 미시마와 전공투 간 토론 후기 중 일부를 발췌했다.



■ 미시마의 토론 후기


미시마가 생각하는 천황은 인간이 아닌 인간 유전자의 개념이다. 코지키(古事記)에 나오는 자유롭고 신화적 존재를 동경한다. 심지어 그는 이상적인 천황 수립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하고, 전공투에게 권한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천황이란 인간 천황, 즉 통치하는 천황과 문화적이고 시적인, 신화적인 천황이 하나의 인간으로 이중적 이미지와 구조를 갖고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의 천황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 이것이 내 이야기의 핵심이며, 천황기관설*을 생각하면 빨리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절대 천황제 하에서 다이쇼 천황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외국에서 보자면 큰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전 일본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니까요."


* 주권은 천황이 아닌 국가에 있고, 천황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학설 독일의 법학자 옐리네크의 국가 법인설을 일본제국 헌법 해석에 적용한 학설이다.



미시마는 마오쩌둥의 "전쟁의 목적은 전쟁을 소멸하는 데 있다."라는 말을 인용해, 그 말은 곧 자기가 하는 전쟁은 옳은 전쟁이라고 믿는 십자군의 논리와 같다고 일갈한다. 이는 한국에서는 '진영 논리'라고 불린다. 어쨌든 그건 미시마에 따르면 계집애의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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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을 행사하면서 사랑받는 힘, 지지 받는 힘이고자 하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책임 관념을 누락시키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자기 속에서 책임을 포착하려면 악귀 찰나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증오의 표적이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도의의 변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자기만이 언제나 옳다고 봐달라는 것은 계집애의 논리가 아닌가.


그가 왜 (문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 문학과 행동에 대한 독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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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말해왔듯이 문학을 생의 원리, 무윤리의 원리, 무책임의 원리로 규정하고, 행동을 죽음의 원리, 책임의 원리, 도덕의 원리로서 규정하고 있다. 예술이 생의 원리이자 무책임의 원리이며 무윤리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그들과 나와의 예술관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행동이 죽음의 원리이자 책임의 원리이며 도덕의 원리라는 점에서, 바로 이 점에서 그들과 나의 사상적 대립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나에게 생의 원리와 죽음의 원리는 상호 표리 관계에 있고, 나는 무책임, 무윤리의 예술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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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투의 토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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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투에게 있어 기성세대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이들은 시니피에(기의)를 강조한 나머지 시니피앙(기표) 따위는 필요 없다고 울부짖는다(앞의 대담 참조). 조금 치기 어린 나이브 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현실주의에 대한 거부는 청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어릿광대는 전후 지식인들이다. 앎을 남자의 일생의 업으로 삼으면서 말(로고스)과 사물의 관계도 포착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사람들. 말과 경험은 영원히 조우할 길 없이 지식인 속에서 동거한다. 말의 물 신화와 경험주의의 기묘한 혼동, 원래 평화와 민주주의를 결합했다는 사실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평화와 민주주의는 전후 체제에 주어진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덤으로서 주어진 자기 입장에 대한 무한 긍정. 모든 것은 말이 외재적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근대 일본의 앎과 경험 또는 지식인과 민중 사이의 관계가 전통적으로 불모 상태로 머물고 그러한 전통이 풍화되어 나타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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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공투는 미시마를 탐미주의로 몰아간다. 기성세대로 현실주의를 대변하는 미시마가 비현실적이라는 분석은 미시마의 이중적 지위를 알려준다. 천황에 대한 비현실성은 전공투의 혁명에 대한 로베스피에르 적(자코뱅 적) 순수함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실제로 단두대를 들고 다니라고 외치는 전공투가 있었다(글이 난삽해서 옮겨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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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의 환상이 갖는 수직성이 공동체의 수직성에 의해 지탱되는 한 그는 공동체에 반항할 수 없다. 공동체가 공동체적인 환상 영역으로서 만들어내는 문화의 지속 범위 안에서만 미시마는 가치 지향을 가질 수 있다. 행위란 이 수직의 내리막을 일거에 넘어설 수 있는 일회성 속에서 완결된다. 행위의 일반적인 원리인 일회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자의 행위의 일회성. 사모하는 것과 사모되는 것의 환상 속에서의 합리화. 행위자는 연소되어 사라진다. 미시마가 꿈꾸는 행위가 자기 죽음 속에서 종결되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미시마에게 금지와의 동거를 허용하는 절대 천황제=공동체는 현존하지 않는다. 아니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미시마는 천황을 사모한 것 아닌가. 비현존=절대적인것에로의 이중화된 사모 속에서 천황은 점점 현실의 더러움을 벗어나, 표상의 세계를 닮은 순수성을 획득한다. 자살의 이마주는 여기서 완결되어 행위자는 행위의 무구한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상관없는 일에 일절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미는 현실에 닿자마자 부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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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공투의 미시마의 '마음의 빚'이라는 해석은 정당하다. 미시마는 군인 코스프레는 열심히 했지만 정작 태평양전쟁 당시 병역기피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chicken hawk의 삶이 부끄러웠던 미시마라고 해석하면 너무 전형적 아닌가 싶지만, 굳이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사족을 덧붙이면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면 남성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져 남성성이 강해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운동을 덜 열심히 했다면 그의 부고는 평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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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하지만 시대적인 환상의 구조를 갖는 미시마의 치명적인 패배는 요절하지 못했던 것이고, 미시마의 전후 여생은 요절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미시마의 화려한 가면 뒤에서 지속적인 시간의 바람을 본다. 사모하는 것과 스스로가 현존한다는 사실의 심연, 미시마의 지속하는 시간=역사에 대한 관념의 애매함과 수동적인 태도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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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마고그(demagogue)* 혹은 근대 고릴라(전공투가 그를 지칭했던)가 되기 전 미시마 유키오

* 자파(自派)의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가(기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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