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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 지내냐?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금요일 밤이라니!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책 추천하러 온게 아니다. 애초에 책이랑 별로 안 친하므로 내가 감히 니들에게 추천이랍시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내 인생동안 읽은 책을 단번에 다 털어낸 결과로 가능했다. 이제 (이미) 바닥났다.

  

갤에 놀러오는데 책을 안 읽자니 무임승차 하는 기분이고 (근데 내가 뭘 얻어가나? 그렇지도 않은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거 있지않냐? 다들 뭔가 자기들끼리 재밌는 이야기 하는데 나도 같이 웃으면서 한마디 얹고 싶은데 아는게 없어서 걍 입닥치고 눈치나 보게되는 그런 상황. 예능프로에 처음 나간 개그맨마냥 눈치보면서 타이밍 재다가 촬영 다 끝나서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 그런고로 오늘은 읽은 책 감상문을 남기러 왔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중에서 좀 골라봤다. 쥐뿔도 모르는데 내가 이런저런 책 읽었다고 했을때 그게 뭔데? 같은 반응이 나오면 당황스럽고 심근경색이 올지도 모르니까 안전빵으로 상도 받았고 암튼 유명하다는 책중에서 골랐다. 서점에서 책 살때나 갤러리에 글 올릴때나 긴장된다. 이게 뭐라고 심판 받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잡설이 길었다. 글이 올라가면 짤부터 나오니 이미 여기까지 읽기전부터 내가 뭘 읽은건지 알겠지.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이다. 이거 SF맞냐? (내가 뭐 읽어본 SF가 없어서 모른다만 모름지기 SF라면 우주전함이 레이저 뿅뿅뿅 날리고 행성 몇개정도 걍 개박살나고, 우주정복을 노리는 악의 무리가 너님들 다 뒤졌음 ㅋㅋㅋ 아무도 날 막을수 없으센 ㅋㅋㅋ 이런거 아니냐?)


우라스와 아나레스라는 쌍둥이급 행성이 나오고 우주시대의 물리학이 나오지만 이건 누가봐도 냉전기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구도다. 주인공 쉐벡이 물리학자로 아나레스 (아나키스트 진영)에서 우라스로 (자유진영) 오면서 시작해서 우라스에서의 현재와 아나레스에서의 과거라는 회상을 오가는 스토리 진행을 통해 르 귄이 보여준건 한마디로 말해 체제 비판이다. 자유 진영이나 공산(혹은 아나키스트)진영이나 둘다 문제가 있다는 거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라고 하지만 실상은 가진 재산의 여부에 따라 사실상 신분이 나뉘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우라스나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안에서 사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아나레스가 다르지 않다는 거다. 지구와 달 같은 관계의 두 행성은 방식이 다를뿐 많은 사람들에게서 무언가 박탈했다. 여기나 거기나 빼앗긴 자들의 세계인 거시다. 방식이 다를뿐 빼앗긴게 자유라는게 자못 흥미롭다. 다만 가방끈이 짧은 관계로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쉐벡이 동시성 이론의 초석을 다듬어 어디에도 팔지 않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선물로 주고싶다고 한건 아무래도 르 귄이 인류학 공부한 할매라서 증여의 경제 같은걸 소설에 집어넣은게 아닌가 싶은데 어쨋든 이 책이 74년에 나왔던 책이라고 하니 냉전기의 한복판에 나왔던 셈이다. 내가 뭐 아는게 별로없어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이 책이 나왔을때 본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와 미래는 이런 세상일수도 있겠구나가 아니라 무대만 좀 다를뿐 우리시대를 다루는구나 바로 알았을거라고 본다 (아님 말고).


우주전함의 레이저 빔이나 외계인과의 정상결전 같은 것이 없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암튼 재미있었다. 역시 책은 상 받은걸 읽어야 한다는걸 다시 한번 재확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