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iler Alert : 일부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30대 초반의 전업작가가 아닌 시절에 썼던 중편소설이다. 소설로 발매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책인데, 70대 초반의 나이에 새롭게 고쳐 썼다. 화자인 '나'는 비발디의 재평가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신의 작품을 망각 속에 유기하고 싶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기존 소설의 번역본이 있다면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할 것 같다. 참고로, 작가는 1985년에 동일한 소설을 모티프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작품을 낸 바 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이백 년 넘게 잊힌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백 년은 긴 세월이다. ‘전혀 회고되지 않고 잊힌’ 이백 년. 이백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아니, 이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소설은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은 조연 격인 사서 소에다, 고야스 씨와 그의 가족 정도이다. 이러한 장치는 사(私) 소설의 형태를 띠게 만들어 독자가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작가 특유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후반부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하루키는 동양의 보르헤스, 마술적 리얼리즘이 작품의 지향점인지도 모른다. 특히 이 소설은 인물의 꿈과 내면을 묘사한 영화 <인셉션>의 씬(scene)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나'는 10대 시절 여자친구와 같이 만들어낸 가상의 도시를 오가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그 도시는 벽으로 둘러져 있고, 이 벽을 통과하려면 문지기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어야 한다. 가상의 도시 안에서 그는 현실의 평범함과 달리 비범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바로 '꿈을 읽는 자'가 된다. 그림자를 떼면 본체에 꿈이 남는다. 타인의 흐릿한 꿈을 홀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본체-그림자의 주체는 초반의 설명과 달리 다시 한번 역전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진 않다.


“그래요.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mu용한 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이 '꿈을 읽는 자'는 이윽고 옐로 서브마린 소년(작가가 사랑하는 비틀스 디자인이 프린트된 옷)이 하게 된다. 그가 도시로 홀연히 떠나자(실종되자) 소년의 형들은 주인공을 찾아온다. 둘째 형은 의사인데, 의식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그의 인간 의식은 유물론적 해석이다. 물론 작가는 이러한 의식에 대한 입장을 거부하는 듯하다.


‘의식이란 뇌의 물리적 상태를 뇌 자체가 자각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 있습니다. 글쎄, 어떨까요, 그게 과연 올바른 정의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시에 벽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 나와 엘로 서브마린 소년은 대화한다. 그들은 역병 때문에 생겨났다고 했는데, 코로나(COVID-19) 대유행 시기에 이 글이 쓰인 것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역병은 실제적이지 않다.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정부에서 코로나를 통해 인민의 자유를 영원히 통제를 시도하려고 한 것을 보면 비유로서의 역병으로 기능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나는 큰맘먹고 말했다. “실제 역병이 아닌 역병. 요컨대 비유로서의 역병…… 그런 걸까?”

소년이 아주 작게 끄덕였다.

“혹시, 영혼이 앓는 역병 같은 것일까?”

소년이 다시 끄덕였다. 꾸벅, 하고 확실하게.


또한 여전히 나를 통해 작가의 취향과 연애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상대 여자가 불감증으로 묘사되어 안타깝게도 이 작품에 섹스 신은 없다. 홍상수 영화에 베드신이 사라진 것처럼 작가도 나이를 먹나 보다. 왓치맨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히어로의 발기 불능(impotence)이 연상된다.


“이것도 당신의 의식 같은 것 중 하나일까?”

“그런 거지.” 그녀는 말했다. “나만의 작은 비밀 의식이야. 하루 한 개비의 멘톨 담배와 한 잔의 싱글 몰트. 가끔 와인일 때도 있지만.”


작가는 이제 인생의 황혼에 다다르게 되었다. 30대의 작가로서 마음가짐과 다를 것이다. 그러기에 후반부에 추가로 쓴 2, 3부의 내용은 어느새 70대인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갠지스 강에 오늘날도 화장(火葬) 의식을 하는 이유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나'는 옐로 서브마린 보이를 남겨두고 도시를 떠난다.


'나'는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게 될 후세의 독자일 것이고, 영원의 도시에서 누군가의 꿈을 읽는 작가(무라카미 하루키)로 남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가 아직 현실 세계에 오래 머물길 바란다.


나는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가 끝없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변화는―그게 어떤 종류건―더이상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