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구례구, 화개」
"아 말만 헌 점잔헌 가시내가
그렇게 픽 픽 길에서 나자빠지기냐?
제미 ×헐 것……"
구례구 앞 언 눈길에 나동그라지는 계집애보고
동행하던 아주머니가 요렇초롬 말씀하는 걸 듣고
과연 상쌍것이로다 하며 화개로 오니,
"아 통일 전날 신라 적 어느 눈 속에선
여기서만 칡꽃도 다 피었다고 화개 아닌가 뵈.
당나라 부처님 육조(六祖)가
그 머리 두고자 한 곳이
바로 여기 아니고 또 어디지러?"
노스님은 눈에 쌍심지를 켜 열변이시다.
그래 아까 상쌍것을 상양반으로 알아 뫼시기로 하다.
- 『떠돌이의 시』(1976)
-
서정주의 산문 「자하문」에 이 시의 모티프 중 하나인 화개 지명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혜능의 사후 신라에서는 김대비라는 인물의 주도로 그의 목을 절도하려는 사건이 벌어진다. 구전 속에서 김대비는 신라 땅에 혜능의 목을 모실 자리를 찾다가 지리산 남쪽에서 한겨울에 칡꽃이 핀 동네를 발견했고, 그 자리에 목을 묻은 뒤 화개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자하문」에서는 이 사건이 신라 통일의 한 계기가 될 수 있었노라고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지만 애시당초 혜능의 죽음은 8세기 초의 일이므로 앞뒤가 맞지는 않는다. 위의 시에서는 말의 순서를 조금 바꿈으로써 용케도 고증상의 오류를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알더라도 시의 내용은 사뭇 이해하기 어렵다. 이 시에서 가장 헷갈리는 것은 '상쌍것'과 '상양반'의 '상'이 상놈의 상(常)인지 상팔자의 상(上)인지의 문제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상(常)쌍것'과 '상(上)양반'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언 눈길에 나동그라지는' 꼴과 눈 속에서 제 혼자 피는 칡꽃의 모습은 각각 '쌍것'과 '양반'의 이미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깨닫게 된다. 아마도 제 철을 잊고 피는 칡꽃의 철부지스러움과 넘어지며 걷는 아이의 어떤 무구함이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 듯하다. 한편 '제미 ×헐 것……'과 같은 표현은 서정주의 시에서 「소×한 놈」이나 「해인사, 1936년 여름」 등에서 아주 가끔씩 볼 수 있는 욕설이기도 하다. 김수영 등 해방 이후의 시인에게서나 시 속에서 욕설이 보편화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세대에서는 희유한 사례라 하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