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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과연 더 나아질 수 있는 걸까요?
미래는 정녕 과거를 답습하지 않음으로써 나아지는 걸까요?
완전사회는 가능한 것일까요?
어쩌면 우린 반복되는 굴레 속에 끝없이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한줄 요약
밝은 사회여, 어서 오라!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문윤성 SF 대상 공모전 덕분이었다. 날 두 번이나 떨어뜨린 알못 공모전이지만, 어찌하겠는가. 내가 아직 세상에 드러나기엔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몹쓸 농담이다. 어쨌든 문윤성 작가는 1965년에 완전사회를 출간했었다.
그렇다. 한국은 1960년대에 SF작가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낱 단편 하나로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상당히 완성도 높고 완결성을 갖춘 470페이지짜리 장편으로서 당당하고 어엿하게 SF작가로서 문윤성이 1960년대 한국 속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이 책을 사고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차고도 넘쳤다.
그리고 난 더 일찍 이 책을 읽지 않은 걸 후회한다. 동시에 지금에라도 다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완전사회의 플롯은 470페이지가 무색할 정도로 간단명료하다.
완전인간 우선구가 구세대의 대표자로서 미래(완전사회)로 건너가 그 실태를 똑똑히 파악하는 이야기
본래 이런 세계관, 곧 세계 설정이 중요한 작품들은 작가의 역량이 도드라지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세계를 얼마나 짜임새 있게 구축하느냐, 그 세계가 정말 살아 숨쉬는 것처럼, 우리가 그 세계를 상상하고, 상상을 넘어 몰입하고, 체험할 수 있느냐. 그런 걸 가능케하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한다.(물론 명작으로만 시선을 국한하면 의외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완전사회는 정말이지 "1960년대 유일한 SF작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역량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시초작은 둘 중 하나다. 어딘가 엉성하지만 그 발상에 있어 시대를 선도하고 필력이 엉성함을 가리고도 남거나, 처음부터 발상도 설정도 필력도 압도적이거나.
완전사회는 감히 후자라고 말하고 싶다. 완전사회가 그려낸 사회상이 오늘날에 이르러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왜 완전사회가 이제야 발굴돼 재조명돼 문학상까지 지정되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정말로 한 세계를 다룸에 있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영역을 꼼꼼하게 다루는 작가는 진심으로 처음 봤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현재까진 유일하다고 여겨도 감히 말하고 싶다. 과학적 소양은 물론이고 상상력 또한 1960년대의 발상임에도 참신한 것들이 있는가 반면, 이미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 있다.(무빙워크라든지)
서사와 주제는 차치하더라도 문윤성이란 작가가 구축한 완전사회라는 세계관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책의 제값은 해낸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전사회라는 세계를 들여다보면 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고, 그 끝에는 완전사회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 홀로 버젓이 존재하는 완전인간, 우선구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사실 완전사회라는 세계 자체가 이 책의 서사이자 주제이다. 161년 뒤의 미래, 5차 세계 대전까지 이어진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린 인류의 형태...... 그건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결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옳은' 결론이었을까?
완전사회의 형태는 페미니즘 담론이 일반화되고, 아직까지고 현재진행형이며, 어쩌면 한국 사회가 몇십 년을 더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되어버린 지금에 있어서 더욱 뼈 아프게 다가온다. 58년 전 작품이 어째서 오늘날을 꿰뚫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더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결론은 결코 흔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흔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 한 마디를 위해 470페이지만을 정녕 달려온 것이냐? 정녕 그뿐이었다면 이 책의 결말 2페이지만에 내 정신이 망치로 뒤통수를 후린 것 마냥 얼얼해졌을까?
문윤성 작가는 결코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모든 조각이 모든 짜임새가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결말은 완전사회라는 거시적 세계에서 순식간에 우선구라는 개인의 미시적 세계로 나를 몰아넣었고, 거기서 받은 충격은 가히 공포에 비견될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일순 절망을 느꼈다.
단순히 작가의 어떤 철학이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소도구로서만 읽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이 작품에서 나온 문학의 기능은 그런 식의 독해를 권장하는 듯하나, 나는...... 나는 그 마지막 장에서 도저히 그런 식으로만 독해할 수 없게 됐다.
마지막 장의 전개는 어떻게 읽자면 좀 급하게, 얼렁뚱땅 다 해결되는 식으로 이야기된다고 볼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장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끝까지 말 안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직접 읽어보라! 나의 독해와 충격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작가가 정말로 모든 조각에 짜임새를 갖춰놨다면, 이것 또한 이미 작품 내내 강조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책장을 덮고 너무 슬펐다.
이 작가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것이(정확히는 한 5개월 정도 동시대에 살았었다) 슬펐고,
더 슬픈 건 문윤성 이후로 한국 SF가 제대로 쓰이긴 했냐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한국 SF가 순문학 시장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 SF가 가진 관(觀)과 세계가 문윤성의 완전사회 한 권에 비해 얼마나 얕고 초라한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슬펐다.
전혀 계승이 안 된 것이다.
너무나 초인이라서...... 정말 말 그대로 한국에 홀로 나타난 SF의 백마 탄 초인이었음에도... 누구도 그 뒤를 잇지 못해 그렇게 잊혔다 오늘날에야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것만이 너무 슬프다.
안읽을 사람들을 위해 말해주면 안됨? 궁금한데
이런 - dc App
난 진짜 니가 쓴 글이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 난 젊작가상들을 비판하는 그 날카로움으로 쓰인 글들은 진짜 니가 말한 그 단점들이 하나도 없는 글일지 너무 궁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