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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린 독립운동 혐의」
그러나 친일파 그것 한 가지로써만
내 일정치하의 생애가 종지부를 찍기는
무언가 좀 승겁고도 섭섭했던 것인지,
1944년 봄 그 원수 것의 진달래가 또 피자
나는 독립고취 연극운동의 지도혐의로
수갑을 차고 끌려 가게 되었지.
새벽잠에 꿈을 꾸니
피사의 사탑처럼 비스듬이 기우는 탑의 옥상에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고
그리로 올라오는 사다리에는
내 고향인 전북 고창의 경찰서 고등계 주임인
이윤길 씨가 나를 잡으러 올라오고 있었는데,
꿈에서 깜빡 깨어나 들으니
비어 있던 건넌방의 벽시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져내려 산산조각이 나고,
그로부터 오래잖아 우리 집 대문 밖에서
"서 선생…" 하고 누가 찾더니
아까 꿈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그 이윤길 씨가 문 열어 준 내 아내의 뒤를 따라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내 생애에서 꿈과 생시가 일치하는 걸
몇 번 경험한 일이 있었으니
이것도 그 중의 하나다.
전주 검사국 검사의 구속영장 제시를 받고
고창 경찰서에 끌려가서 알아보니,
내가 7, 8년 전에 고창서 묵고 있을 때 사귀었던
선배 청년 몇 사람이 순회연극단을 꾸며 공연하고 다니다가
그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체포되었는데,
그들에게 "누구의 영향을 받았느냐?" 채근하니
그것은 7, 8년 전의 서정주의 영향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여 나는 여기 유치장에 잡범들과 함께 수감되어
두 달 반쯤을 썩고(?) 지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게 그건 썩는 게 아니라, 좀 얄궂은 대로의
일종의 휴양소는 휴양소였던 것 같다.
쇠창살 틈으로 새여드는 햇살에 비쳐서
옷의 이들을 잡고 지내기,
양말 위춤의 실을 풀어 그걸로
양복 바지 엉덩이 헤어진 델 누비기
(바늘은 이런 곳엔 비장품의 전통으로
늘 남아 있는 것이니까),
낚시로 간수의 책상에서 낚아들인 담배를
피우는 그 연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간수 반대쪽의 쇠창살을 향해 뿜어올려 내보내기,
공범 누구의 가족이 밤에 간수를 매수하여
고사리 넣은 조기국이라도 들여오는 때는
이거야말로 이 세상에선 다시 없는 진미이기도 했나니,
이런 데 오래 묵을 형편이어서
제절로 어느 사이인지 감방장으로 한등 올라앉는 날에는
여기도 아쉰대로 괜찮기사 괜찮은 것이라구.
내가 한참만에 여기서 그 감방장이 되었을 때,
일본에 징용간 아들이 남기고 간
제 며누리를 붙어 애를 낳아 죽인 죄로
잡혀들어온 목수놈이 하나 우리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 놈은 나이가 내 아저씨뻘은 되면서도
나보고는 늘 "선생님 선생님" 하고
또 한문으로 소동파의 적벽부도 곧잘 외고 있었지.
내가 불교의 수식관(數息觀)으로 숨쉬는 그 수를 세고 지내는 걸 보고
저도 내게 배워 그걸 본따 하고 지내기도 했는데
그 뒤 어찌 됐는지 궁금키도 하군.
내가 여기서 풀려나온 이유도
검거된 거나 마찬가지로 엉터리였으니,
6월 어느 날 취조받으러 나가보니까
전북도 경찰부에서 나 때문에 온 젊은 일본인 경부가 보였는데,
그가 8, 9년의 평순사 시절에
우리 집에 청결검사를 나왔다가 나와 알게 된
어느 만큼의 시 애호자였기 때문이었네.
그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도 다니던 사람으로
석천탁목(石川啄木)이란 즈이 시인의 시를 아주 좋아한다 하더니
그 사이에 진급이 빨라 어깨에 금빛 찬란한 경부나리가 되어 있어서
나의 아리바이를 인증해 나를 곧 석방해 주기도 하더군.
아니었으면 나는 해방 때라야 나왔을거야.
- 『팔할이 바람』(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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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유명한 「종천순일파?」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종천순일파?」가 친일에 대한 구차한 변명 토로로 일관한 글이라고 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자신을 '종천순일파'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면 그 시의 제목에 물음표를 붙이지는 않았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어적 서술은 바로 이어지는 「다시 걸린 독립운동 혐의」라는 제목에서 이른바 확인 사살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이 시 자체보다도 앞의 시인 「종천순일파?」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써 지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겠다. 사족이지만 독립운동 혐의가 '다시' 붙었다고 쓴 것은 서정주가 고등학생 시절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실제로 참여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위의 시의 내용은 친일과 항일의 거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당시의 시대 풍경을 담담한 관점에서 그린 것에 가깝다. 시인은 피사의 사탑 위에서 자신이 쫓겨 다니는 꿈에서 깨고 나서 실제로 체포당하는 우연을 겪는다. 하지만 당시 그가 얼마간의 공포감 또는 죄책감을 겪고 있었기에 그런 꿈을 꾼 것일 터다. 본인으로서는 낭패였겠지만 이때의 구금은 본의 아니게 일제 말기 당시의 감옥 풍경이 어떤 것이었나를 실감 있게 그릴 수 있게 하였다. 저항 의식으로 감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서술은 분개의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이것이 이 시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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