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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방한한 중국 작가 위화를 기념하며 그의 팬사인회를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제목으로만 들은 터라 조금은 부끄러웠다. 작가의 출중한 필력과 번역 덕분에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위화의 또 다른 대표작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하여 영화로 본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라 서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패왕별희>와 더불어 중국 근현대사 격동기를 개인의 미시사(史)로 치환해 보여주었다는 인상은 남아있다. 참고로 이 소설 역시 하정우가 연출한 <허삼관>이라는 영화가 있지만 아직 보진 않았다.


작가의 말은 소설에 비해 꽤 근사한 적이 없었다. 위화의 작가론은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의 지위에 벗어나 자기 작품의 독자가 된다고 밝힌다. 그리고 작품은 독자로 인해 수많은 작품으로 파생한다. 멋진 발상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허삼관 매혈기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피를 팔아 생계를 버티는 주인공 허삼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매달 월급 같은 생활비 개념이 아니다. 주인공은 삶의 굴곡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지출에 대해 목숨과 맞바꿀 만큼 신중하게 사용된다. 이에 반해 그에게 처음 피를 파는 것을 알려준 시골마을 지인 방 씨와 금룡은 훗날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허삼관은 삼 형제의 아버지인데, 첫째 허일락은 아내 허옥란의 전 남자친구인 하소용의 뻐꾸기 자식이라고 생각된다. 아들의 출생에 대한 의심은 아이가 11살 무렵 생겨나게 되어 여러 에피소드를 파생한다. 하지만 이를 작가는 마오쩌둥의 최대 실책인 대약진운동과 절묘하게 엮은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 천만 명의 인민은 굶어죽는다. 기아를 극복하기 위해 허삼관 가족은 가상의 요리를 한다. (작가의 눈물겨운 묘사를 읽고 나면 절로 홍사오러우가 먹고 싶어질 것이다.)


“삼락이 혼자 삼키는 소린가?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게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 거야. 삼락이만 침 삼키는 걸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사오러우를 훔쳐 먹는 거라구."


허삼관은 피를 판 돈으로 이 굶주림을 극복한다. 그런데, 첫째는 남의 자식인지라 국수를 사주는 것이 억울하다. 일락이를 타이르는 대목에서 독자는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락이는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문간을 넘자마자 돌아서서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만약에 제가 아버지 친아들이었으면, 국수 먹으러 데려가는 거였죠? 그렇죠?”


“만약에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널 제일 좋아했을 거다.”


이 말에 일락이는 입을 쫙 벌리며 활짝 웃고는 왕 털보네 가게로 갔다.


일락은 국수를 먹는 데서 소외되어 가출하여 진짜 아버지를 찾으러 가지만 냉대 받고 누구의 아들도 아닌 일락(홍상수 감독,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제목이 연상되는) 신세가 된다. 결국 마음이 모질지 못한 허삼관은 일락을 찾으러 가 승리반점에 아들과 같이 국수를 먹으러 간다.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심지어 허삼관은 일락의 친아버지로 추정되는 하소용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일락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그것은 자신 역시 유년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삼촌에게 자라난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적 투사 때문인지 일락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진다. 후반부에는 죽음까지 불사한 매혈을 통해 일락의 목숨을 구해준다.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둬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또한 작가는 문화대혁명에 의해 망가지는 개인의 일상을 정밀묘사한다. 문화대혁명의 정의 부분은 작가가 중국에서 활동이 가능한 점이 놀라울 정도로 통렬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중국에서 죽은 권력인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라고 한다.)


문화대혁명이 오늘날까지 왜 이렇게 떠들썩한지 이제야 좀 알겠어. 문화대혁명이 무엇이냐? 개인적인 원수를 갚을 때 말이지, 예전에 누가 당신을 못 살게 굴었다 치자구. 그러면 대자보를 한 장 써서 길거리에 붙이면 끝이야. 법망을 몰래 피한 지주라고 써도 되고, 반혁명분자라고 써도 좋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요즘은 법원도 없고, 경찰도 없다구. 요즘에 가장 많은 건 바로 죄명이야. 아무거나 하나 끌어와 대자보에 써서 척 붙이면 당신은 손쓸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잡아다 작살을 낸다 이 말씀이야…….


홍위병의 강요에 의한 악명 높은 자아비판으로 식사도 못하고 광장에 있는 아내에게 맨밥의 도시락을 몰래 싸준 대목은 압권이다. 그리고 그 맨밥 안에는 허삼관이 사랑하는 요리 홍사오러우가 들어있다.


사방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허삼관이 낮은 목소리로 허옥란에게 속삭였다.


“반찬은 전부 밥 아래 숨겨놨다구.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어서 한 입 먹어.”


허옥란이 숟가락으로 밥을 뒤집어보니 과연 아래쪽에 고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허삼관이 그녀를 위해 홍사오러우를 만든 것이다. 그녀는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열심히 씹었다.


이 소설은 어쩌면 피를 팔고 먹어야 했던 의식인 돼지간볶음, 황주(黄酒),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깃든 홍사오러우로 기억될 것 같다. 너무 풍요로운 세기를 사는 지금 먹고사는 문제에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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