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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홍」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 『동천』(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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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서정주의 중기 시 중에서 의외스러울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정주 시의 대표적 앤솔러지라 할 수 있는 김화영 편의 『미당 서정주 시선집』, 이남호 편의 『국화 옆에서』, 이숭원 편의 『미당과의 만남』에 만장일치로 실려 있으며 특히 이숭원은 중년기 서정주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라고까지 평하고 있다. 이 시가 시 평론가들에게 사랑받은 것은 단어를 정교하게 맞물린 배치와 그에 따른 이미지의 흐름이 유독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독자들의 애호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것은 그만큼 시의 분위기가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 정지용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정지용은 정련된 시의 전형으로서 2연 1행으로 이루어진 명편을 다수 보여준 바 있다.


이 시는 일견 이미지의 제시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사이사이에 감쪽같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소실댁은 '슬픈' 소실댁이라는 것이다. 산 속에서 낮잠 자고 있는 소실댁이 왜 슬픈 처지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슬픔을 전혀 상관없는 듯한 이미지의 제시로 대신했기에 이 시의 품격이 얻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실댁이 왜 슬픈지 구구절절 써버릴 때 시의 정제된 분위기는 산산이 깨어진다(가령 백석의 「여승」이 특유의 말솜씨에도 불구하고 사연의 기구함에의 집착 때문에 신파조로 빠지고 만 것을 생각해 보라). 소실댁의 처지가 '슬픈'이라는 딱 한 단어로만 제시되고 나머지 설명을 모두 극도로 객관적인 이미지로만 처리했다는 데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보통으로 처량한 사람들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장면의 태반은 뚱한 표정으로 잠자거나 밥 먹거나 일하거나 쉬는 모습에 그칠 뿐일 것이다. 이 시는 그 카메라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