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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물과 개그 시리즈는 약간 닮은 감이 있다. 처음에 좀 투박하고 인간적이던 캐릭터는 점차 시리즈가 장기화 될수록 어떤 뚜렷한 특징만을 남기고 녹아내린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세경의 가난은 코드화되고, <빅뱅 이론>에서 쉘든은 점점 자신의 흥미를 드러내진 않는 완벽한 너드가 되어간다. 이것은 매 화, 매 에피소드를 기준으로 한 회로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리느냐에 달린 문제이며 깔끔하게 요약할 수 있는 어떤 캐릭성을 남기면서 캐릭터를 붕괴시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 최적화는 대체로 매우 잘 먹힌다. <월간>은 이 최적화에 성공한 만화이며, 그리 빠르지 않은 연재속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사쿠라 치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월간>에서 치요의 변화와 그것이 만화에 주는 영향을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사쿠라 치요라는 여고생 캐릭터는 <월간>의 시작을 여는 갈등을 만들고, 러브코메디/순정 장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핵심 러브라인으로 기능한다. 치요의 고백은 노자키에게 늘 닿을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치요에게 남자들이 꼬이며 결코 해소되지 않는 숨겨진 연심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야 정상...이지만 <월간>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치요는 그럼에도 페이크 주인공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노자키와 치요의 연애 라인은 분명 작중에서 존재하며 모두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럼에도 치요는 늘 모든 에피소드에서 우스꽝스러운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불편해야 할 유예가 그럼에도 그리 불편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치요와 그녀의 연애 감정의 무게가 이미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의 감정은 작중의 상황에 어떤 변화도 주지 않을 상수처럼 여겨지며, 이 상수는 사건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기에 그녀는 일종의 마스코트로 기능한다. 이 과정을 SD화라고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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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브컬쳐는 이중의 추상화를 보여주곤 한다. 실존 인물에서 오타쿠 캐릭터로의 1차적 변환과, 오타쿠 캐릭터에서 SD 캐릭터로의 2차 변환. 이 SD화는 캐릭터가 SD캐릭터로서 등장하는 장면 속에서 더 이상 어떤 무게감도 갖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하곤 한다. 여기에서의 어떤 연출도 진지하게 봐서는 안 되고, 아무리 맞거나 굴러다니거나 피눈물을 흘리거나 뭘 하든, 그 모든 건 그저 연출일 뿐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캐릭터의 캐릭성으로의 승화다. 물론, 이것이 치요가 <월간>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강철의 연금술사>의 에드워드 엘릭은 스토리적 중요성과 캐릭터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키가 작다'는 키워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면 매우 빠르게 모든 무게를 잃고 코믹한 SD캐릭터로 변형된다. 사실상, 매우 예리하게 벼려진 캐릭성은 SD캐릭터를 호명한다. 그리고 일상물의 장기 연재는 대체로 호명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치요의 특별성은 마찬가지로 밈화되는 캐릭터 미코시바와의 대비를 통해 뚜렷하게 보인다. 미코시바는 등장 시 보였던 '말하는 것과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 속성을 장기 연재 과정에서 거의 잃고 대신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오타쿠스러운'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작중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이행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미코시바의 캐릭성이라는 것을 승화한 결과가 아니다. '말하는 것과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 이는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오타쿠스러운' 이와 닮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치요의 SD캐릭터화를 보장하는 캐릭성, '노자키에게 스토커처럼 집착함'은 '노자키를 몰래 좋아함'에서 나올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미코시바의 캐릭성이 여러 에피소드에서 활용되는 것과는 달리, <월간>의 핵심에 자리 잡지는 못하는 이유가 나온다. 여전히 <월간>은 치요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월간>만큼 사랑이 우스꽝스럽게 활용되는 만화도 별로 없다. 작가의 전작, <본좌 티처>만 하여도 우스꽝스러운 캐릭성과 갈등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꽤나 진지하게 연애 구도를 쌓아갔으며, 매 중요한 에피소드는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 커플의 관계를 진전시키거나 흔들어놓곤 했다. 또한, 개그 캐릭터로서 활약하곤 하는 주인공 마후유는 여러 차례 특이한 작화, 또는 토끼 인형을 입은 괴상한 모습으로 등장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만화의 일원으로서 존재한다. SD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이 장면에서의 존재감을 잃은 이방인이다. 곧, 마후유는 늘 <본좌>와 이어져 있지만, 치요는 <월간>과 줄곧 괴리된다. 이 차이는 미코시바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마후유의 캐릭성이 SD화될 정도로 승화되지는 않는 곳에 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음 역시 한몫을 한다. 이 시리즈는 장기화될 필요가 없다.


시리즈의 장기화는 프렌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에서든 보장된 맛을 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 이는 반복 가능하고 뚜렷하게 구분 가능한 캐릭성의 축약으로서 가능해지며, 여기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소위 '사자에상 시공'이라고 하는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 배경으로 존재하며, 어느 한 날의 에피소드는 다른 한 날의 에피소드와 대체로 엄격한 시간 순서를 따를 필요가 없다. 동적으로 동결된 시간 속에서 극도로 요약된 캐릭성만이 자그마한 몸을 흔들며 우리에게 익숙한 귀여움과 우스꽝스러움의 시작을 알린다. 그렇지만 이 얼음이 녹아내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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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의 최신화들은 여태 입을 다물듯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던 민감한 부위를 건드린다. 노자키가 치요를 이성으로서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우리에게 영원성의 착각을 의심해보게 만든다. 이 만화가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히려 어이 없는 편견이 되고, <월간>에서 이미 추상화된 치요와 노자키 사이의 관계는 급작스럽게 구체화되며 진지하게, 두 캐릭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 경우 SD화된 치요와 노자키 사이의 상호작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득하며 이 상황에서 둘 사이의 관계를 묻는 것은 이미 답이 나온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셈과 다름 없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이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노자키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요는 여전히 SD화해 있다는 점이다.


곧, <월간>은 치요에게 달려 있다. 그녀가 다시 서사의 무게를 갖게 되는 순간, <월간>은 마치 소련이 급작스럽게 무너진 것처럼 치요와 노자키 사이의 진지한 관계의 조명과 함께, 급작스럽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 나는 치요와 노자키가 커플이 된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 <월간>을 아직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치요는 여전히 SD 캐릭터로 남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노자키의 마음은 그저 한 에피소드에서 끝나는 그저 그런 복선 에피소드 정도로만 작용하며 사자에상 시공은 다시 몇 권이고 이어지게 된다. 오시이 마모루는 아마 이런 점이 우스꽝스럽다고 느꼈기에 <시끌별 녀석들> 극장판 <뷰티풀 드리머>를 찍은 것일 테다. 감정이 더 이상 서사적으로 진지하지 않은 채 추상화되어 반복되기만 하는, 꿈 같은 나날들. 마모루는 그러나 오타쿠 문화가 바로 이 꿈 위에서 부유하는 문화가 될 것임을, 모든 것의 SD를 종국적으로 꿈꾸는 이들이 이루는 문화가 될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새로운 시대의 오타쿠가 될 수는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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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넣은 치요 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