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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씨, 무슨 책 읽어? 좀 봐도 돼?”
“인생의 의미? 우와, 어려운 책 읽네. 다 읽으면 나한테도 무슨 내용인지 얘기해줘.”
(싫은데....)
졸지에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에 더해 책을 요약하고 브리핑해야 하는 임무까지 얼떨결에 맡게 되었다. 요즘엔 이상하게 내가 무슨 책 읽는지 확인하고 요약 보고 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책 좀 추천해달라는 말과 함께. 읽지도 않으면서.
하지만 인생의 의미까지 요약 브리핑하는 건 좀 그런데? 사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언가 인생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삶의 의미를 찾는 자는 병적인 인간이라 칭했다. 그리고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폐부에까지 독이 스민. 내가 며칠에 걸쳐 읽은 책을 요약해달라는 거저 먹으려는 심보에 부아가 치민다.
아 책을 읽고 요약해줄까말까 솔직히 나와 마찬가지의 운명을 타고난 독붕이들한테도 그냥 요약해주기 싫은데, 간계를 부리고 싶은 욕망이 그득하다. 에이 별 내용 없던데요? 걍 평범한 자계서느낌이였습니다요. 거짓을 고할까? 하지만, 진정으로 삶 속에서 필요에 의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남이 요약해준 몇 줄로 삶의 의미를 깨닫는게 과연 가능할까? 요약해주기 싫은 나의 합리화 과정이 진행된다.
그렇다면 내 경우는 어떨까? 나는 과연 진정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였다.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물음 안에는 어떻게 살면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면 버러지처럼 사는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삶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을 토대로 나는 누구의 삶은 가치 있고 누구의 삶은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 공통된 가치있는 삶의 보편적 모습을 끌어내어 삶에 실천하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최선의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책을 탐닉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개인의 삶이란 과제를 넘어서 어떤 인생이 의미 있는지, 혹은 인생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지라는 물음으로 발전한다. 이런 거대한 과업 앞에 나는 초라하면서도 나약한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의미라는 것을 과연 정말 얻을 수 있을까? 그런게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게 맞나? 근본적으로 불가지의 영역이 아닐까하는 깊은 회의감과 함께 한숨이 들었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몰?루? 신은 죽었고,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스스로 누군가에게 삶을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공백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창조해야만 한다. 주관적 의미를 세워야만 삶을 지탱될 수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의미를 스스로 세운다고 해도 그게 진짜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회의가 몰려온다. 내가 세운 기준이 옳다면 쟤가 세운 기준도 옳은 건가?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쩌지? 그것도 삶의 의미로 봐야하는 건가?
우리는 주관적인 삶의 의미 발견을 위한 노력에서 더 나아가 좀 더 객관적인 의미의 기준을 찾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기준을 찾는 것이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그 중에 몇 개는 있을 법도 하다. 흠? 예를 들면 남에게 해끼치지 않기, 사랑하기, 지적 탐구하기,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등등?
하지만,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인간을 곤란하게 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객관적인 기준 마련이 가능하냐는 회의는 여전하다. 또한, 인간은 장래에 반드시 도달할 수 밖에 없는 다가올 죽음 앞에 허무감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 나는 곧 죽게 될텐데 그동안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진짜로 의미가 있는 일일까? 아등바등 살아봐야 어차피 죽는건 마찬가지잖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덮어두면 이 문제는 살아있는 인간 옆에 불쑥불쑥 나타나 괴롭힐거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을 하거나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심각하게 몇 개월~몇 년 동안 고민한 문제와 나름대로 임시방편적으로 내놓은 해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생각했던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 이미 있다는게 놀라웠다. 이 책을 좀만 일찍 알았다면 나는 죽음으로 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을텐데, 책은 시간을 잡아먹는 도둑이 아니라 시간경찰이였을텐데, 아쉬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민했기에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위안을 삼아본다.
저자는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위협하는 죽음이 극복될 수 있는지, 극복되어 인간이 불멸을 누려 영생한다면 삶이 유의미해지는 것인지, 이미 밝혀진 과학적 사실에 따른 우주론과 진화론에 따라 과연 세계는 진보적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진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를 확장한다.
저자는 101명의 철학자들과 작가들의 생각을 요약정리한 끝에, 지상 최고의 삶의 목적은 의식적 주체와 객관적인 자연세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삶의 유의미한 가능성은 우리가 인생의 주관적, 객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도에 따라 비례하여 증가하며, 우리는 진화라는 서사시에서 주체적인 주인공으로서 좋음, 즐거움, 아름다움, 지식, 사랑의 의미의 양과 질을 늘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개인들이 무한한 존재가 되는 것에 참여하여 과거의 해악들이 사라진다면 영원의 관점에서 삶은 근본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장 우리 인생 자체가 유의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이란 한계 앞에, 욕망이란 한계 앞에 지속적으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의미를 얻으려는 사고와 행위는 점점 미약해져만 간다.
다만 우리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결사적인 투쟁을 감행함으로써 몸부림치며, 우리는 삶의 의미가 있는지 답을 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삶을 그저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삶이 제공하는 제한된 즐거움과 의미를 누리며 인간의 한계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억누르라는 삶을 살아가는 낙관적인 한 가지의 방법론을 제시하며, 길 잃은 불행한 병적 영혼들을 안내한다.
삶의 의미를 타인에게 확장시키는 지도자적 면모는 분명 인류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되리란 대의와 정직은 제1의 덕목이라는 개인적 소신과 함께 동료에게 이 책 단순 자계서라 요약할게 없던데요 라고 간계를 부리는 대신 빠짐없이 얘기해주리라 마음먹는다. 근본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인간 공통의 문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돌아온 로고테라피의 아버지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본조건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녀도 삶의 의미를 간절히 찾으며 구원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구원의 흑기사 납시오. 에잉? 근데 왜 얘기해달라고 해놓고 막상 기써서 요약하고 얘기해주면 하품을 하면서 딴청을 피는거야? 내 입만 아프게시리. 그래서 나는 책에서 인용된 격언을 적은 메모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내 요약을 대신할까한다. 이 말이 삶의 의미에 대한 정수를 담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질문들을 살아내라. 그러면 먼 훗날 언젠가 어쩌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삶은 당신의 답들에 진입할 것이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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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요
네 맞워요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여러 학문들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신학을 정립하고 발전시키고 그 과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임미다아 - dc App
저번에 본 책에서 자신의 사원을 짓는게 삶의 목적이래서 뭔 개소린가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말하는거였는듯
결국 니체의 위버맨시가 결론인건가
한계를 부수려는 시도라는 측면의 결론에선 유사해보이지만 니체와 저자의 결론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논리흐름(아마, 저자의 논리흐름에 따라 감상을 적은게 아니라 나 자신의 의미탐구 과정에 따라 적은거라 저자의 생각을 미진하게 표현한듯)에 따르면
주관적 의미 탐구를 넘어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의미를 탐구하려는 시도로 나아가 그것을 결론으로 마무리하는데, 니체는 개인의 주관을 중요시 여겨 당대 객관적, 보편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가치들을 약자들의 시대 증표이자 병폐라 비판하였으니
(그 시도 자체도 마뜩찮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의미추구의 태도가 보편적인 것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보편성을 인정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전제가 갖춰진 뒤에도 보편적으로 이끌어 낸 가치들에 대해 비판하고 수용하지 않을 여지가 있으니.. 지향점에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주관적인 의미 추구를 넘어 객관적인 의미 추구를, 니체는 개인의 주관을 통한 의미 추구를 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는듯한데, 저도 정리가 안돼 어렵네요.
리뷰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