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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과학적 세계관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 일등공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동일한 답이 나올 것이다. 아이작 뉴턴.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그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읽는다면 탄복할 수밖에 없는 수학적 방법으로 물리학을 완전히 정립하는 저서로 손꼽히곤 하며, 그의 공헌은 이후 세계에 대한 탐구가 이 정밀하고도 독창적인 과학이라는 독립적인 영역에 한정되도록 과학을 분리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서술들은 정확하지만, 정확한 서술들만으로 구성된 것이 진실을 전부 전하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수학, 물리학에 대한 기여나 화폐 주조 공사, 주식에 대한 일화와는 달리 그의 삶 대부분을 차지한 분야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비학(오컬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현대에 비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었다. 비학의 계보는 학문적 가치가 완전히 상실될 정도로 말라붙었고, 그나마의 연장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주류 학문에 반대하는 어떤 대안적인 활동, 학술적 진지함을 상실한 일종의 종교적인 이벤트가 대체하였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근세의 비학을 바라본다면 비학에 열중한 마술사, 연금술사들의 열의를 도저히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시대적인 한계로 국한시키기에는 뉴턴을 포함한 수많은 근세 학자들의 비학적 열중을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 뉴턴의 전기에서 그가 수학이나 물리학보다도 오시리스와 모세, 예수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데에 더 열중하며 글을 썼다는 내용을 읽으며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마술>은 이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당시 르네상스에서 근대 사이의 학문적 풍토 및 담론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에 있으며, 과학의 형성 과정에서 비학이 어떻게 기계론적인 접근과 동일한 목표를 향해 발을 맞췄으며 인문학이 비학적 전통을 근본으로 어떻게 과학의 목표를 정의하거나 한정하려 했는지를 파악함으로서 당시 학자들의 이중적인 면모와 과학 형성의 수상한 동기들을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또 하나의 책으로 봄으로서, 비학과 과학은 둘 다 그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두 독립적인 시도에 가까웠다.
둘은 몇 백 년 간의 세월 동안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줬으며, 비학적 언어는 과학적 언어를 새롭게 정립하는 토지로 작용하는 동시에 과학적 언어의 표현력을 의심하는 대항마로 작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언어에 대한 의구심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아담이 최초에 하나님께 받아 이후 바벨의 저주 때 상실한 “아담의 언어”를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기도 했다. 각각의 대상의 의미를 그 자체로 전달하도록 하는 언어느냐, 자의적 기호들로 구성되어 그 의미를 표상하도록 하는 언어느냐? 만약 전자라면, 고대인들의 언어는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면서 우리는 그럴 수 없는가? 그리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고대인들이 정말로 그 언어를 통해 무엇을 알았는지를 질문하며, “현대인”들이 얻을 수 있는 진리는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만 했다.
흥미로운 책이며 과학이 아니라 비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봐도 좋은 책이라고 할 만큼 비학적 내용과 그 맥락에 대한 설명이 충실해 읽는 동안 즐거웠다.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 역시 직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책보다도 더 전체적인 개괄이 된다는 느낌이라 종교의 과학 탄압에 대해 갈릴레이나 브루노의 일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아무래도 이 책보다는 <객관성의 칼날> 같은 근대 과학사에 대한 책을 먼저 읽어보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막연하게 베이컨, 갈릴레이, 뉴턴 등을 과학의 선조 정도로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는 책을 다 읽을 때쯤엔 애초에 과학이라는 것이 대체 뭔지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존하는 무언가의 존재성을 의심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다.
별개로 르네상스 시대의 비학과 과학의 관계에서 푸코의 접근법을 차용하면서 정작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설명한 내용이 역사적으로는 그리 올바르지 않다는 걸 설명하는 게 재밌었다. 이미 전부터 푸코의 글을 엄밀한 역사서로 기대하고 읽지는 않기를 추천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이 어디에서 어떻게 틀린지를 아는 것과 막연한 불신감을 갖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푸코적으로 신화를 설명하는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처럼, 흥미로운 이론과 이론의 사료는 별개로 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실 애초에 그 책들이 언제 나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변화겠지만.)
P. S. 당시의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을 다루는 앤서니 그래프턴의 <편지 공화국>을 한 번 추후 읽어보고 싶다. 아카데미와 저술 활동만으로 당시의 학문적 상황을 파악하기란 아무래도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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