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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캐롤라이나의 노처녀 미스 팍스」
미국 노드 캐롤라이나주에서 군(郡)도서관장을 오랫동안 지내다가 정년퇴직한 예순 여덟살의 노처녀 팍스 양에게 "용하게 잘 견디셨군요." 내가 위로의 말을 한 마디 했더니, 대답 대신 그네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이끌고 그네의 쬐그만 식물원 방으로 가서 분홍빛 동백꽃 한 송이를 꺾어 내 저고리 웃호주머니에 꽂아주며, 어떤 화분에 심어져 있는 일년생의 풀꽃 한 무더기를 손가락질하면서
"이 꽃 이름은 '못 견디는 꽃'이라고 합니다" 했다. --"보세요. 잎사귀만 만져도 부들부들 떨고, 씨를 배면은 누가 거기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만 그걸 터뜨려 와르르 제 씨를 쏟아 버리죠."
"미스 팍스. 그럼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살아오셨나요?" 내가 물으니, 거기에도 그네는 대답을 않고, 다시 그네의 거실로 나를 데불고 가 자리에 앉힌 다음에 이번에는
"팬니!" 하고 잔잔하고 조용한 소리로 불러 그네의 누이동생이라는 또 한 할머니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내 누이 팬니는 귀머거리요. 그래 둘이서 서로 도와 여지껏 살아왔어요."
"호머의 <오디씨>가 생각나는군. 그 무어던가 하는 섬에선 어떻게나 곱게 우는 새들이 사는지, 배타고 가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홀려 그 섬을 갔다간 모조리 목숨을 뺏기고 만다고. '오디시어스'는 같이 배타고 가던 그의 부하들의 두 귀를 모조리 초로 틀어막게 했었지요. 하늘이 오디시어스 노릇을 해서 댁의 누이를 도우신 것인가 보오." 나는 또 위로의 말을 안할 수 없어 또 그걸 했더니, 이번에도 그네는 역시 대답은 않고, 나와 그네의 누이동생까지를 일어서게 하여 또 이끌고 창 쪽으로 가서 그걸 드르르 열어 제치고, 때마침 하늘에 자욱히 돋은 또렷또렷 빛나는 별들을 손가락질해 가리키고 있었다.--
"참 성하지요?"
-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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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며 머흘며 무엇을 보려느뇨』에 이 시의 모티프가 되는 일화가 밝혀져 있다. 서정주는 해외 여행의 틈을 타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를 방문했다. 아들을 본 것이 13년 만, 손자를 본 것은 6년 만이었다고 그는 적고 있다. 「구멍 난 고무공」 같은 시는 이런 기러기 할아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일 가능성이 높다. '미스 팍스'는 이때 아들의 주선으로 만난 인물이다. "내 아들 생각으로는 이 노처녀가 가장 좋은 미국 여성의 슬기와 정을 지닌 한 표본이라고 해서 내게 그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 나는 이분을 앞에 두고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나오는 지혜 있는 할머니--마카리에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위의 시 속의 내용은 여행기에서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대답은 않고'와 같은 표현을 써서 우회하는 듯한 모습을 띠게 만들어 마치 선문답 같은 분위기를 유발한 점이 눈에 띈다. 미스 팍스의 모습에서 시인이 발견하는 것은 견디면서 사는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견딞이 '무슨 재미로 살아오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 되고 있는 점이 역설적이다. '못 견디는 꽃'과 별이 성한 하늘은 그에게 양가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못 견디는 꽃'은 그에게 한쪽으로는 반면교사이면서 다른 쪽으로는 객관적 상관물이 되는 존재이다. 오디세우스를 앞세운 화자의 위로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어져 그가 눈앞에 보여주는 '하늘' 역시 양가적 성격이 담겨 있다. 자신의 삶을 견뎌야 하는 삶으로 만들어버린 '하늘'은 야속한 존재다. 그러나 그 견딞을 사는 재미로까지 승화시켰을 때에는 그 하늘의 예쁨도 눈에 들어오게는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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