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r-fareast;mso-hansi-font-family:"맑은 고딕";mso-hansi-theme-font:minor-fareast">Ⅰ: 근대 소설의 틀에서 벗어난 채만식의 ‘생활문학론’-
헝가리의 철학자인 루카치는 ‘근대 소설은 타락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악마적인 추구의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타락한 세계는 근대 자본주의를 일컫는다. 근대 자본주의는 모든 것이 자본화 되어서 사물 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까지도 물질적으로 변한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는 물질 대 물질로 교환되는 가치만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 근대소설은 이러한 근대적 자본주의의 병폐와 함께 식민지배라는 억압된 통치 체제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근대 소설들은 강한 실천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향성을 가진 소설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1. "HY신명조",serif">일상인의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는 예외적 인물.
2. "HY신명조",serif">훼손된 사회 내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는 적극적 인물.
3. "HY신명조",serif">개인주의적 가치에서 벗어나 역사의 방향성과 결부되어 제기되는 공동체적 가치에 기본을 두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물. (한국 근대소설의 이념과 윤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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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행동 지향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근대소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이광수의 『무정』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의 모순점들은 소설 속 주인공인 이형식의 성격으로 대변된다. 소설은 이형식이 느끼고 있는 모순이 사회의 모순을 은유하며, 그의 행동이 사회의 개혁 방식이라는 계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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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탁류는 근대소설에서 보여지는 적극적인 행동 의지가 드러난 소설은 아니다. 역사적인 배경에서 살펴보자면, 탁류가 집필되던 시기인 30년 대는 일제의 통치 강화로 일체의 사상 활동이 금지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와 맞물리면서 30년 대의 소설들은 식민 체재 극복 방법을 표면에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면서 좌절하였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만 했다. 채만식은 새로운 방법으로 ‘생활문학론’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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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이전의 근대소설은 역사적 배경, 역사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념에 따라 창작되는 제한적인 작품세계가 보였다. 『무정』의 후반부에 보여지는 모습은 작가의 이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전개를 제한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채만식의 소설은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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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인물의 행동이 역사라는 큰 틀 안에 위치해서 수직적인 영향을 받는 이전의 소설들과는 다른 작가의 리얼리즘적 태도는 이전 문예사조들과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과 역사가 수평적으로 이루어지고 인물들의 ‘생활’이 이념보다 우선적으로 등장하면서, 현실에 대입하지 못한 채 추상적인 사상으로 굳어진 계몽의식을 주장한 『무정』과 『혈의 누』, 현실 일탈과 개인주의를 표현한 『날개』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과 다른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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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r-fareast;mso-hansi-font-family:"맑은 고딕";mso-hansi-theme-font:minor-fareast">Ⅱ: 초봉과 돈을 통해 표현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비판-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탁류』를 이끌어가는 소재는 돈이다. 소설 속에서 초봉이와 연관된 인물들은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 작품 속에서 돈이나 재화들은 저축을 하여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소비되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 분배되지 않는다. 『탁류』의 돈은 모두 소비되는 성격만 가지고 있다. 소비 지향적인 그들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나 희망보다 당장의 삶의 영위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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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돈과 함께 작품에서 소비되는 것은 주인공인 초봉이다. 작품 전개 내내 초봉은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주변인들이 말하는 설득과 요구에 반발심을 느끼지만 저항하지 못한다. 태수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초봉은 집 마당 앞에 있는 작은 꽃밭에 꽃을 심고자 하는 마음 같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가며 타자에게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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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초봉이 자신을 되찾으며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은 극단적인 방식인 살인이었다. 돈을 주고 박제호에게서 자신을 ‘구입’하여 착취해오던 장형보를 죽임으로써 초봉은 비로소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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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작가는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돈이라는 물질 위에 초봉이라는 인물까지 덧붙였다. 초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물질화하는 모순적인 선택을 했다. 이는 ‘타락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악마적인 추구’라는 루카치의 정의와 정확히 부합한다.
종반부에 와서 자주적인 모습을 획득한 초봉의 모습이 나오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설이 끝난다. 형보를 살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그 순간에서도 초봉은 자신의 판단보다는 승재의 판단에 의존한다. 물론, 승재라는 인물은 초봉에게 있어 단순히 사모하는 인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10.0pt;line-height:107%;font-family:"HY신명조",serif">승재가 뚜벅뚜벅 들어온다. 얼굴이 마주치고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 환상의 가운데의 웃음이 현실로 육체에로 옮아 방긋이 웃던 초봉이는…’ (탁류-태풍/문학과지성사)
‘10.0pt;line-height:107%;font-family:"HY신명조",serif">지금 이 아이가 승재와 사이에서 생긴 아이로, 그래서 송희가 승재더러 아빠 아빠하고 부르고 이쁜 짓을 하고 하는 재롱을 승재와 마주 앉아 보았으면 재미가 있으리라는 공상으로 생각은 둘러앉혀지고 말았다.’ (탁류-흘렸던 씨앗/문학과지성사)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이렇듯 승재의 존재는 초봉에게 착취되는 삶에서 벗어나 이상을 좇게하는 탈출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질로써 존재해온 초봉이 믿는 유일한 존재는 승재 뿐인 것이다. 초봉은 형보를 살해하기 전과 다르게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는 얻었지만 그 의지의 실현만은 얻어내지 못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초봉은 스스로 할 수 없는 미성숙의 존재로 남았고,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보여지는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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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hansi-theme-font:minor-fareast">Ⅲ: 승재의 인물성과, 그가 드러내는 한계의 의미.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초봉이 사모하는 이웃인 승재는 소설 속에서 올곧은 마음을 가진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승재와 초봉은 서로 연심을 품은 사이지만, 그에게는 재화의 결핍 때문에 초봉과 이루어질 수 없었다. 초봉이 자신과 연이 맺어진다면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에 팔려가듯이 맺어지는 혼인을 방관했다.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승재는 작품 내내 자본주의로 인해 피폐해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한다. 태수가 진정 부자라는 착각을 하며 팔아버리듯이 혼인을 시키는 정주사나 아버지가 쌀을 훔쳐도 순경들에게 잡히지 않게 하려고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겠다는 어린 아이를 통해 이 사회는 다른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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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로 사는 건 몰라두 시방 가난한 사람네가 그다지 가난하던 않을 텐데 분배가 공평털 않어서 그러우.”
“분배? 분배가 공평털 않다구? ……”(탁류-노동 ‘훈련일기’/문학과지성사)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초봉의 누이인 계봉과의 대화에서 승재는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지 알아차린다.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회주의적인 생각, 곧 작가의 생각이 수면 위에 살짝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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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그렇지만 이러한 사상은 구체화되거나 방법을 갖추어서 현실적인 것으로 변화하지 못한 채 수그러든다. 승재와 계봉의 사상이 이루어지려면 역시나 현실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두 인물 모두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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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사회주의를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꾸는 작가의 바람은 승재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사회주의 사회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듯, 사상의 실체화인 승재를 흔들리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초봉의 여동생인 계봉에게도 드러난다. 두 인물 모두 초봉을 구조할 수 있는 순간마다 판단을 미루면서 초봉이 끝없이 전락하게 하는 빌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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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초봉이가 애원하는 그 명일의 언약을 거절하는 눈치를 보일 용기는 도저히 나질 못했다.’ (탁류-서곡/문학과지성사)
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승재는 자신의 의식적 동반자로 인식하는 계봉과 초봉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초봉이에게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자수하라는 말은 확신보다는 난처함이 더 커 보인다. 이는 선량한 목적과 개인적인 이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승재를 보여주며,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속물적인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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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fareast-theme-font:minor-latin">이처럼 새로운 이념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현되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작가의 의도는 명확하다 할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한 조선이지만 변화할 수 없는 자가당착의 상황에 빠져 있는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배경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활동이 금지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채 현실을 직면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허무와 냉소적인 작가의 생각이 소설 속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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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더 있는데 좀 길어서 요기까지만 잘라올려요 ㅎ...
정성ㅊㄷㆍ
정성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