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유언은 모두 18장으로 되어 있다. 1945년 2월 4일에 시작해 26일까지 계속된 뒤 일반 중단되었다가 그 후 35일이라는 공백 기간을 거치고 나서 갑자기 4월 2일에 재개되는데 불과 이 하루만으로 《유언》은 끝나고 있다.
4월 2일, 유언의 마지막 페이지가 보어만의 손으로 타이핑된 지 28일째인 4월 30일에 히틀러는 정식으로 그의 부인이 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결했다. 그러나 가차 없이 다가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제까지와 같은 냉정한 정신적 상황을 유지하면서 유언을 계속 작성해 갈 여유가 3월에 들어서서 과연 히틀러에게 있었을까?
히틀러의 내면에는 몇 가지, 때로는 심하게 반발하는 모순된 성격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교묘하게 통제되어 밖으로는 좀처럼 그 정체를 나타내지 않고 어디까지나 냉철한 합리주의자 아돌프 히틀러를 연출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히틀러가 사실은 미신가라고도 할 수 있는 심정의 소유자로 기적을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이라 들으면 사람들은 그 사실을 도저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히틀러만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온 “아, 나의 가슴속에는 두 가지 영혼이 좀먹고 있다”는 말처럼 오히려 독일 국민 전체의 고유한 국민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와 나의 아내는 도망 또는 항복의 굴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우리 두 사람의 결의는, 내가 국민에게 봉사한 12년 동안 매일 하는 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수행한 그 장소에서 유체가 바로 불태워지는 일이다.
6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은,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엔가 한 민족의 생명력이 가장 영광에 찬, 그리고 가장 용감한 증거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지만, 나는 전쟁이 끝나도 라이히의 수도인 이 땅과 결별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땅에 남아서 적의 맹공에 대해서 항전을 계속해 가기 위해서는, 우리 세력이 너무나 작고, 더욱이 우리 쪽 저항은 적의 힘에 현혹되거나 절조를 잃은 분자에 의해서 서서히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나 이 베를린에 남아서, 나의 운명을,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고른 운명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밖에도 나는 선동된 군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유대인에 의해 연출된 새로운 흥행물을 필요로 하는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베를린에 머물러, 총통 및 수상의 자리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고 확신했을 때, 이 장소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결심을 했다. 나는 전선의 우리 병사들, 집에 남은 여자들의 헤아릴 수 없는 행동이나 공적, 우리 농민이나 노동자 여러분이나, 역사상 달리 그 예를 볼 수 없는 청소년들, 나의 이름을 붙인 히틀러 유겐트의 헌신을 보면서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죽는다.
1945년 4월 29일 (오전) 4시
아돌프 히틀러
나폴레옹, 카이사르, 히틀러.
나폴레옹이랑 카이사르는 히틀러랑 다르다
나폴레옹이랑 카이사르도 다르다. 셋이 같다고 쓴 거 아니다. 공통점이 있는 지
나폴레옹은 근대 케사르 주의의 전형적인 예시임
그냥 히틀러를 조금 다르게 바라봄과 동시에 나폴레옹을 깎아내리고 싶었을 뿐임. 카이사르는 척도로써 중간에 넣은거고...
전쟁이야 수천년간 인류가 하던거였지만 수많은 천재급 유대인들을 죽여서 인류학문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게 나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