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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방밑엔 언제나 검은 강물이 흐르고

방밑엔 언제나 싸늘한 구렝이가 사렀다.

소스라처 깨여나 나는 차젔으나

어느 벽에도 문은 없었고


나는 임이 먹키웠었다.



- 『시인부락』(1936.12.)




-




서정주 자신이 주축이 되어 발간한 『시인부락』의 1집과 2집에는 그의 시가 각각 세 편씩 실려 있다. 1집에서의 「문둥이」, 「옥야(獄夜)」, 「대낮」과 2집에서의 「화사」, 「달밤」, 「방」이 그것인데 훗날 이 중 세 편이 『화사집』에 수록된다. 「옥야」와 「달밤」, 「방」이 첫 시집에서 제외된 이유를 알기는 어려우나 본인이 발간한 문예지의 수록 작품인 만큼 의도적으로 제외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최소의 언어로 최상의 효과를 얻고 있는 「문둥이」, 시인 자신이 처녀작으로 꼽고 있는 「화사」, 관능이라는 주제를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낮」에 비해 다른 세 편이 밀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작품 간의 상호 근친성이 짙어 동어반복의 혐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시집 미수록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집에 실린 「옥야」는 한밤중에 홀로 방에 누워 재능을 널리 떨치지 못하는 백수의 설움을 노래한 것으로 시인 자신의 자전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환상을 가미하려는 분위기와 현실적인 소재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2집에 실린 「달밤」은 '푸른 달빛쯤 먹어도 안 질리고/ 간덩이 하나쯤 씹어도 안 질린다'는 첫 연에서 드러나듯이 「문둥이」와 동일한 소재를 공유한다. 압축적이긴 하나 너무 짧다는 인상을 주곤 하는 「문둥이」의 주제를 좀 더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역시 2집에 실린 「방」은 반대로 「문둥이」처럼 압축적인 작품이다. 이 시의 네 번째 행에서 언급되는 '벽'과 '문'이 같은 시기에 동명의 시로 만들어졌음은 유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방'은 자신을 절망 속에 막히게 하는 '벽'과 그것을 뚫기 위해 추구되는 '문'과 함께 서정주 초기 시의 한 시적 공간을 이룬다. '먹키웠었다'라는 말은 '생각키다' 같은 표현에서 파생된 말이 아닐까 한다. 임을 먹고 싶다는 것은 그의 다른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관능과 폭력성의 이미지를 합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