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의 <한비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더불어 비정한 현실주의라는 선입견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는 책을 읽지 않았거나 혹은 오독한 결과라고 보인다. 아래는 현대의 책이라면 서문에 있을 법한 내용인데, 그가 법가를 내세운 사명감이라고 보인다. 그는 법을 무시한 채로 사사로운 인의를 앞세운 유가를 이상주의로 치부했다. 법치주의가 기본인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한비의 사고는 현대인의 사고와 일치한 측면이 크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법도를 분명하게 바로잡고 엄한 형벌을 세워서, 백성들의 혼란을 구하고 천하의 재앙을 제거하며, 강자가 약자를 능멸하지 못하게 하고, 다수가 소수에게 포악하게 대하지 못 하게 하며, 노인들이 타고난 수명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어린 고아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며, 변방이라 해서 침입과 약탈을 받지 않고, 군주와 신하들은 서로 친하며, 아비 자식 사이에 서로 보호하고, 전쟁 때문에 사망하거나 노예가 될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의 공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지하게도 도리어 이것을 폭정이라고 여긴다.


아울러 한비는 군주 개인의 관점에서 법가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마음은 알기 어려운 것이라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감정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표식을 사용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북으로 귀에 들리게 했으며 법으로 마음을 가르치게 했다.


한편, 한비는 사적 보복(재제)를 해선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본인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토마스 홉스의 절대군주에 기초한 사회계약론보다 시기적으로 매우 앞선(거의 2천 년의) 사상으로 보인다. 물론 법가는 한비 혼자 독단적으로 시작한 학문은 아니며, 그에 이르러 집대성하여 널리 알려졌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군주제를 최고의 체제로 옹호하는 측면과 유사하다. 다만, 고대 그리스인은 복수에 대한 가치를 용서보다 훨씬 고귀하게 여겼다. 게다가 당대의 동아시아에는 군주제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따라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금 형제가 해를 입고 반드시 공격하는 것을 염이라 하고,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가 욕을 당해서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을 정이라 고 한다. 염과 정이 행해지는 것은 군주의 법이 침해되는 것이다.


법률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실정을 가마솥에 비유한 것은 마치 성경 저자들처럼 적절하다. 이 책에는 "역린"처럼 유명한 고사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비유들이 차고 넘친다. 저자의 작가로서의 엄청난 자질이 엿보인다.


지금 이것은 물이 불을 이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가마솥을 그 중간에 두면, 물은 끓어올라 모두 위로 증발하지만 불은 솥 아래에서 기세 좋게 타올라 물이 불을 이길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률이 간사함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길 수 있는 것 보다 더 명백하다. 그러나 법률을 집행하는 벼슬아치가 물과 불을 갈라놓는 가마솥의 행동을 한다면, 법률은 단지 군주의 마음속에서만 분명할 뿐, 간사함을 제압할 힘을 상실할 것이다.


이 책은 통치를 위해 경험에 기반한 심리학적인 측면이 곁들여져 있다. 이를 제왕학이라고 하는데, 현대인이 보기엔 자기계발서 구절과 유사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치인이 음흉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군주는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는다.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내보이면 신하는 그 의도에 따라 잘 보이려고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 군주는 자신의 속뜻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그 속마음을 보이면, 신하는 남과 다른 의견을 표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신하는 즉시 본심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지략이나 지혜를 감추면 신하들은 스스로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군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야 신하들이 본바탕을 드러낸다. 신하들이 본바탕을 드러내면 군주의 눈과 귀는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유세, 즉 중요한 거래처 상대로 프레젠테이션 혹은 채용 면접에 있어 상대방(군주)의 기분 안 상하게 하는 법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유세를 잘 못해 비극적 최후를 당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유세할 때에 힘써야 할 점은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점은 칭찬 해주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감싸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개 인적으로 급히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 일이 공적인 타당성이 있음을 보여주어 꼭 하도록 권해야 하며, 상대방이 마음속 으로 비천하다고 느끼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이 아름답다고 꾸며주며, 하지 않는 것이 애석한 일임을 표현해야 한다.


또한 리더가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잘못하게 되면 겪는 군주의 고초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권력의 견제가 필수임을 알려준다.


이와 같다면 군주란 백성의 주인이라는 명목만 있을 뿐 실제로는 신하들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망하려는 나라의 조정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조정에 사람이 없다는 말은 조정의 신하의 수가 줄었다는 뜻이 아니라 권세가들이 서로 자기 집안의 이익 만을 도모할 뿐 나라의 부를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한비자>를 읽다 보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군주와 신하 간의 충성 내지 인의를 지우고 그곳에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손익관계를 넣었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와 상당히 부합한 측면이 있다. 다음은 월급 루팡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


군주의 이로움은 능력 있는 자를 얻어 벼슬자리에 등용하는 데에 있고, 신하의 이로움은 무능하면서도 임무를 얻어내는 것에 있다. 군주의 이로움이 일 잘하는 사람을 얻어 작위와 봉록을 주는 데에 있다면, 신하의 이로움은 공이 없으면서도 부귀를 차지하는 것에 있다.


아래는 시장경제 작동원리를 묘사하는 소름 돋는 대목이다.


뱀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뽕나무 벌레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놀라고, 뽕나무 벌레를 보면 소름이 돋지만, 어부들은 손으로 뱀장어를 잡고 부녀자들은 누에를 친다. 이익이 있는 일이라 면 모두 맹분이나 전저와 같이 용감해진다.


그는 또한 슬기로운 군주 생활 꿀팁으로 권력은 반드시 타인을 의지해선 안됨을 일깨워주었다.


이를 통하여 보면,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분명히 그 자신의 효력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 스스로를 위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근거해서 나를 위하는 방법은 위험한 것이니. 나에 의지해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은 이해관계가 군주와 신하가 엇갈려서 자명한 이치이다. 마치 자신도 믿지 않았다던 이오시프 스탈린처럼 살아야 독재권력은 유지되는 것은 귀납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지배받게 된다. 신하는 군주와 골육의 친분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위세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신하된 자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고 살피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데, 군주는 그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교만하게 처신하니, 이것이 세상에 군주를 협박하고 시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중략)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며,관을 찌는 사람은 관을 만들면서 사람이 요절해 죽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어질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부유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 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을 팔 수 없기 때문이며, 관을 짜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사람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어야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신불해가 말했다.


"혼자만 볼 수 있다면 밝다(明)고 하고, 혼자만 들을 수 있으면 총명하다고 한다. 혼자 결단을 할 수 있으면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발전시켜 아래와 같은 리더의 술책도 제시한다. 읽다 보면 자신의 직장 상사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데에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일곱 가지 술책이 있고, 관찰해야 하는 것으로 여섯 가지 기미가 있다.


일곱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많은 증거를 모아 두루 대조하는 것이고,

둘째는 반드시 형벌을 내려 위엄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는 포상을 믿음이 있게 해서 능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고,

넷째는 신하들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실적을 묻는 것이며,

다섯째는 군주가 명령을 내렸을 때에 의심하는 신하들을 꾸짖는 것이고,

여섯째는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질문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상반된 일을 말하고 반대되는 일을 해서 신하들을 살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비는 사람, 특히 군주의 특출난 재능을 믿지 않는다. 이는 상술한 홉스와도 궤를 같이 한다. 이는 곧 전통에 대한 존중을 배격함을 의미한다. 유가가 최고 존엄으로 받드는 요순의 태평성대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사람은 적고 재물이 많아 국가경영 난도가 낮았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대의 왕위를 타인에게 선양하는 것보다 현령을 양보하는 것이 훨씬 아깝다고 이야기한다.


걸왕이 천자가 되어 천하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해서가 아니라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세 가구도 바르게 할 수 없었을 것인데, 이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수주대토'라는 고사 성어의 원래 취지는 에디슨이 99%의 노력보다 1% 영감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처럼 어리석게 운을 좇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옛 제도와 관습을 답습하는 것을 비난하려는 의도이다. 사회체계의 변화를 칼 마르크스처럼 진화론적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송나라 사람으로 밭을 가는 자가 있었다. 밭 가운데에는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기가 달려가다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러자 농부는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 얻기를 기다렸다.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으며, 그 자신은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지금 고대 제왕의 정치를 좇아 현재의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한비는 법의 이상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교육체계로 고통받는 현대의 대한민국에도 호소력 있는 대목이다.


큰 물건을 보관했다가 자주 자리를 옮기게 되면 손상되는 부분이 많아질 것 이고, 작은 생선을 찌는데 자주 뒤집으면 그 윤기를 잃게 될 것이며,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할 것 이다.


이 때문에 도를 터득한 군주는 고요함을 귀중하게 여기고 법을 자 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찌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만장일치의 위험성도 알려준다. 현대에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국가가 훨씬 많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투표율이 100%를 초과하기도 한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게서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일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스러운 점이 진실로 의심스럽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자가 절반이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자가 절반일 것입니다. 지금 한 나라가 전부 옳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왕께서 나라의 절반을 잃은 것입니다. 신하에게 위협받는 군주는 진실로 그 절반을 잃은 것입니다.


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이유를 정신과 의사 셀럽인 오은영 박사를 연상케 하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사례로 보여준다. 물론 공자는 증자(증삼)의 고루한 면을 디스 했는데 한비자는 오히려 칭찬한 것이다. 한비자를 읽으면 가정교육에서도 쓸모가 있는 법이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그 아들이 따라오며 울자,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가거라. 시장에서 돌아오면 너에게 돼지를 잡아주마." 증자의 아내가 마침 시장에서 왔을 때, 증자가 돼지를 붙잡고 죽이려고 했다. 그 아내는 만류하며 말했다.


"단지 아이를 달래려고 한 말일 뿐입니다."


증자가 말했다.


"아이와는 거짓말 상대가 될 수 없소. 아이는 지식이 없으므로 부모에 기대어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소. 지금 아이를 속이면, 이것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오. 어머니가 아들을 속이면 아들은 그 어머니를 믿지 않을 것이오. 이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오."


그러고는 돼지를 잡아 삶았다.


이 책의 리뷰를 마치는 것을 그의 비유 하나로 대신한다. 한비자는 개와 말이 그리기 가장 어렵고 귀신이 가장 쉽다고 한다. 최초의 동양의 유물론자인 한비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이야기이며, 시대를 불문하고 독자의 가슴에 새겨둘만한 경고문이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빈객이 말했다.


"개와 말이 가장 어렵습니다."


"무엇이 가장 쉬운가?"


빈객이 대답했다.


"귀신이 가장 쉽습니다. 대체로 개와 말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보여 유사하게 그릴 수 없기 때 문에 어려운 것이고,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기 쉬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