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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꽤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여전히 저는 책 읽는 속도가 특별히 빠르지는 않습니다. 빨리 습득하기는커녕, 심지어 메모를 하고 줄까지 쳐가면서 공들여 읽은 책인데도 몇 달 지나면 대강의 내용조차 기억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책읽기가 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통해 파악한 구체적인 지식의 몸체는 기억 속에 남지 않는 것 같아도, 그런 지식의 흔적과 그런 지식을 받아들여나가던 지향성 같은 것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고 또 쌓여서 결국 일종의 지혜가 된다고 믿으니까요.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1000권의 책'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당신이 읽고 싶은 책과 읽어서 즐거운 책이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단박에 해치울 수 있는 속성법이란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해내는 데 세월이 필요하다면, 그건 긴 시간이 곧 그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결과나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그 중요성이 놓여 있습니다. 순간순간의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면 설혹 그 결과가 끝내 내게 다가온다고 해도, 그 찰나의 지점이 뭐 그리 가치 있겠습니까.


이동진, <밤은 책이다> 중에서 발췌




저게 싫어서 난 책 읽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걸 선호하는데, 서서히 메모 속도가 독서량을 못따라가서 고민인 와중에 만나서 반가웠던 구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