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에 대한 것이라면, 경의와 차별은 닮았다.


감정이 많이 살아났다. 차분한 충동의 책. 그 수더분한 분위기를 조금 멀찍이서 느꼈다.

경계의 인간. 투신할 벼랑을 맞딱뜨려도 겁나지 않던 열다섯 살의 꿈속처럼, 책은 담담하게

제 할 말을 놓아두고 있다. 추위 속에서, 그립던 외로움 속에서 모니터 속 모닥불 ASMR처럼

뭉근한 숯불이 그 말을 펼친다. 마음이니, 진위는 중요치 않다. 밑없는 침잠. 충동이 그렇게

가라앉아 끓게 될 때, 욕심이 애틋한 바람으로 장기전의 양상을 띠어갈 때. 가만히 마음을

느끼고 있다.


뛰어내리면 날아오르던 사춘기의 꿈. 무중력의 비행만큼 나는 자랐다. 조용히 바람을 가르며

이불 속을 뒤척이던 나의 성장. 이젠 비행을 그치고 너무도 자명한 한 보, 한 보를 걸어야

하는 들짐승인 나. 먹을 걱정과 당혹스런 성욕에 불안해하는 지금, 갑자기 따뜻한 연말이 왔다.


문득 모든 것이 고맙다. 기꺼운 마음을 안고 잠들 수 있기를.


- 채식주의자, 한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