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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9월부터인가 쓰기 시작해서 어느새 3메가 가까이 쌓였음.


용량 커지니까 텍스트 파일 켜는데 살짝 렉 걸려서


밑에 553kb가 올해부터 옮긴 거고, 1년마다 위에 파일로 내용 합치는 중.


위에 파일 맨 처음 옮긴 문장은


"좋은 서사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지만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을 쓰는 일 정도라면 자신 있다. 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응모자가 적지 않다고 느꼈다. 번듯하게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답답함이 커진다.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문장을 써놓고는 그 문장이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연결하기만 하면 이근화나 신해욱의 좋은 시와 비슷하게 보일 거라 믿는 것일까. 소설에 비해 시가 독자를 속이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행성 글쓰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문학동네 13년 가을호


마지막 발췌는


책에 소개된 일화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파리 유학중이던 1960년대 초, 존 포드의 <샤이안>을 상영하던 파리의 한 극장에서 영화가 끝날 무렵, 한 프랑스 소년이 의자 세 열 정도를 건너뛰어 연인처럼 보이는 관객을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들면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주먹다짐과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소동이 진정되자 문제의 소년이 주변 관객들에게 외쳤다. "이건 포드의 영화란 말이오. 그것을 잊지 마시오. 그런데 이 칠칠맞은 남자는 여자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화면을 보면서 포드를 계속 조롱했단 말이오...... 오늘 일은 그냥 넘기겠지만 나중에 포드의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서 만나게 되면 나는 저 남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오." 극장 한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거의 울 듯한 감동에 휩싸여 온몸을 떨고 있는 일본인"이었던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로부터 이십 년 뒤에 쓴 글에 "그 소년은 영화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만한 아름다운 영화적 몸짓을 펼친 것"(266쪽)이라고 적었다.

철없는 영화광 소년의 폭력 소동에 바쳐진 이 찬사는 너무 막무가내이며 과도한 호들갑이 아닌가, 라는 느낌이 한편으로 들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 만일 그 프랑스 소년이 그 '칠칠맞은 남자'를 실수로라도 정말 죽였다면? 그때 하스미는 뭐라고 말했을까? 짐작건대, [[영화의 맨살]]이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데, 아마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 소년의 살인이야말로......' 하스미 시게히코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야만적인 시네필이다.

만일 하스미 시게히코 앞에서 누군가가 "영화 같은 건 없어도 돼"라고 말한다면 하스미는 설득하거나 토론하지 않고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 물론 이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현실에서 하스미가 그런 뜻의 글을 읽고 나서 이런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쓰는 일 정도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자식,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자크 베케르의 <몽파르나스의 등불>을 무시한 에릭 로메르, 558쪽), "용서해선 안 된다"(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장례식에 조전을 보내지 않은 고르바초프, 360쪽), "반드시 물리적 제재를, 천벌을!"(가토 타이의 <불꽃과 같이>를 졸작이라고 평한 일본 비평가, 271쪽)이라고 망설임 없이 쓰면서 자기만의 살생부를 작성한다. -허문영, 야만적 유희자의 초상- 오후 11:42 2023-01-05(목)


글 제목은 타이핑 얘기였는데 막상 처음이랑 마지막 문장은 다 긁은 거인 게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