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1989년 6월 3일의 북경 천안문광장 대학살 1주년 기념일에, 그곳에서」



  극단의

  슬픔과

  분노와

  절망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 나와서

  한참을 헤매다가

  퍽지근이 주저앉어

  하늘 한쪽만 멍하니 바래보고 있는

  중국대륙의 그런 젊은이들의 광경을

  보신 일이 있는가?


  나는

  그 광경을

  1990년 6월 3일

  북경의 천안문광장대학살 1주년 기념일에

  그 천안문광장에서 목격하고 있었다.

  보무도 과하게 도열행진하고 있는

  군대들의 삼엄한 경계 옆에서

  전개되는

  1990년 6월 3일의

  중공 젊은이들의 그런 삶의 광경을

  똑똑히 내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 『늙은 떠돌이의 시』(1993)




-




최근에 과거 신문을 뒤지다가 서정주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88년 초에 그는 제5공화국과 관련한 여러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당시 출범 직전이었던 노태우 정권의 산하에서 발족된 민주화합추진위원회라는 단체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서정주가 참여했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단체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편이었다. 그의 발언 중 일부가 신문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데 특히 5.18에 관한 발언들은 그의 관점을 거의 당혹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령 그는 5.18의 공식적 명칭에 대해 '광주시민항쟁'으로 지칭하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민주화가 5.18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이유로 '민주항쟁'으로 부르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기념일 및 기념관 건립 요청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가 진보 성향의 위원과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서정주의 정치적 실언을 단순히 정치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견해는 정치적 가치관과 정치적 감각을 혼동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서정주는 구시대적 정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런 자신의 구시대성을 은폐시키기에는 너무나 정치적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1990년 일주일여 동안 베이징을 방문하고 나서 쓴 위의 시는 5.18에 대한 그의 관점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천안문에서 1주년 행사가 벌어진 것은 아니고, 마침 1주년이 돌아오는 날짜에 천안문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청년들의 표정이 어두운 빛 일색인 것을 보고 쓴 것이라고 시인은 밝히고 있다. 이 시는 서정주답지 않게 거의 저항시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제목 외에도 본문에서 날짜가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데 가령 임화가 「현해탄」에서 썼던 '1920년대의/ 1930년대의/ 1940년대의/ 19XX년대의……'를 떠올리게 한다. 천안문 사건에 대한 그의 비판적 감상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인 중국이 외국이고 특히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더더욱 높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남의 집 뒷담화는 잘만 하면서 자기 집 돌아가는 꼴로 향하면 그 칼날이 무뎌지는 언행불일치의 실망감을 우리는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작품 외적인 사실은 작가가 유발하고자 했던 감개를 자연히 손상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