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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두 형」
양녕대군이 아직도 태종의 큰아들 자격으로 세자로 있을 때 왈패라 해서 그 폐세자론이 일자, 그 바로 밑 아우 효령은 그 자리는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생각하여 매우 근신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형 양녕이가 그 옆을 지나면서 발길로 걷어차며 "에이 못난 놈아! 다음 왕가음은 충녕이란다. 알기나 알아라!" 했다. 효령이는 물론 울화가 치밀어 쏜살같이 산골짜기 어느 절깐까지 치달려 가, 그 절간 문루(門樓)에 매달린 큰북을 하루 종일 두 손으로 두들겨 대서, 그 북가죽을 쑥대머리 귀신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인데, 내 생각 같아서는 이만하면 왕가음이 되고도 남을 것 같으나, 고로코롬은 되지를 않고, 그저 가만히 있던 세째 충녕이가 고걸 차지한 걸 보면 역시나 이런 판엔 무엇보다도 가만히 있는 편이 낫기는 나은 것이라.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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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가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의 조선시대 편을 쓰면서 가장 중심적으로 참고한 책은 『연려실기술』이다. 이는 가령 『조선왕조실록』이 완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자료인 데서 비롯된 차선책이라 보여지지만, 『연려실기술』이 야사적인 측면을 포용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위의 시의 내용은 『연려실기술』에 출전을 밝히지 않고 소개되어 있는데 기록이 아닌 구전에서 직접 긁어 온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원전을 보면 위의 시와 동일한 일화를 설명한 뒤에 "지금까지 세속에서는 부드럽고 늘어진 것을 보고 '효령대군 북가죽이다.' 하는 말이 전하여 온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시가 야담에서 문학적인 통찰로 올라설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문장의 능청에서 비롯된다. 시 속에서 효령과 충녕은 각각 기민한 인간상과 초연한 인간상을 대표한다. 효령을 제치고 충녕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진다.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충녕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왕가음'으로서 지녀야 하는 인간성과 실력을 생활 속에 체화하여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 그를 '가만히 있'어도 정치적 명망에 오르게 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효령이 보인 열정에 대해서도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두 인간상의 대결을 무승부로 이긴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가만히 를 친절하게 설명하네 능청이라고?
능지처참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