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난리, 연꽃, 황혼, '4.19'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9월 28일까지 신귀거래 1~5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연휴에도 독회는 멈추지 않는다!!
댓글 16
쌀난리 / 머리가 비어도~ 온몸으로 살지 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니체의 몸 철학이 생각난 건 아주 샛길로 빠진 것은 아닐테다. 김수영은 대구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를 이 시를 썼고 몸 철학과 닮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이처럼 이런 혁명 비슷한 것은 교육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것이라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행에서 꺼림직한 염세가 느껴졌다. 진짜 의도가 어떻던 간 여태 이런 그의 시들을 봤을 때 그렇게 평화로운 의미는 없을 듯 싶다.
1음시발(mw02658)2023-09-23 17:19
답글
연꽃 / 연꽃으로 시작해 해골로 끝나는 데에는 긴장해야 만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꽃이 나오는 연의 끝 과 해골이 나오는 연의 시작에서 ‘사랑’이 있다. 이런 연결이 과연 우연일까? 그의 시선에는 사회주의 동지들이 가혹한 수행을 하다 끝내 파계승이 된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음시발(mw02658)2023-09-23 17:19
답글
황혼 / 공연한 이야기와 전화를 두고 돈을 가지고 떠난 자의 모습이 해외의 것이라는 묘사에서 시가 쓰여질 당시와 전집 기준 103번 째 이 즈음을 보면 한 인물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 이다. 최대한 그 사람은 멀리 두고-사실 불가능 한 거겠지만-황혼과 반동에 집중해보려 한다. 하필 반동과 객소리가 이어져 있어 이 반동은 정말로 물리법칙의 그것이 된 듯한 느낌이어서 싸늘한 눈초리가 느껴진다. 잠시 2연으로 넘어가 보면 하필 들오리가 있는 곳은 시베리아고 생명이 태동하는 장소는 고작 개울가이며 그 생명체 마저 병아리다. 개울가에 사는 들오리가 낳아봤자 병아린데 사는 곳도 시베리아다. 그런 작은 움직임의 이유조차 심심해서로 이 모든 걸 괄시해버리는 것으로 끝이난다. 다시 1연에 와서 2연의 내용을 연결 한다면 뭐
1음시발(mw02658)2023-09-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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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데 뭐 난다고 말하는 꼴이 돼 버리지만 그의 혹독한 침은 몹시 따가울 것이다.
1음시발(mw02658)2023-09-23 17:19
답글
4.19 / 밥보다도 잠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당장의 생활의 빈약함 보다 사상적 배부름이 필요하다는 말로 보인다. 이전의 그의 4.19. 시를 읽어왔을 때 이런 주장은 반복적으로 조금씩이나마 했다고 생각한다. 따분한 세계정부 이상과 보스토크의 귀환이 나열된 건 분명 의도적인 배치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피곤한 시인은 일부러 뒷짐지고 계속 그러나 그러나 읊조리며 지루하다는 듯 하품 하고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이 시인에게 큰 분기점을 강제한다는 건 조금 잔혹한 부조리같다.
1음시발(mw02658)2023-09-23 17:20
연꽃_ 내가 시를 쓴다면, 릴케가 장미를 썼듯 언제나 연꽃에 대해 쓸 것이다. 의외로 그 시기 사회주의 인물들이 남아있었나 보다. 김수영은 덥뻑하지 말고 또 너무 긴장하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나. 연꽃은 물에서, 진흙에서 피는 불꽃이다. 혁명의 불꽃과 고뇌가 있고 흙에 결속된 인간과 사랑이 있다. 허나 작란과 해골로 귀결되었던 해방 전후의 참혹했던 역사
익명(222.106)2023-09-23 18:59
답글
에 대한 기억의 감각, 그 냄새, 죽음의 형상을 상기한다. 긴장하지 말라는 양가적 의미 같다 너무 어려워말고 인간사랑으로 움직이라 버뜨 긴장, 긴장하라 심정적 동지들
09.23 19:01
익명(222.106)2023-09-23 19:07
답글
김수영 시에서 은근 고전 문학이나 불교 철학 종종 나오드라
1음시발(mw02658)2023-09-26 12:31
답글
불교사상은 난 잘 못 느낌. 연꽃에서 시작해 해골로 끝나는 장면을 나처럼(마치 실증주의자? ㅋ) 보지 않으면 좀 더 아름다운 인상을 받을 것 같다
팟총새(222.106)2023-09-26 22:53
쌀난리_ 몸의 불만과 난리를 혁명의 연장선에서 사고하는 의식에 조금 놀랐다. 김수영은 리버럴리스트일 거라 생각했는데 왼편으로 살짝 당겨보아야 하나 싶다 좀 시 외적이 되었나 ㅎㅎ
익명(222.106)2023-09-23 20:39
황혼_ 마지막 연의 주체가 모호하면서 재밌다. 시베리아라는 불모지에 정겨운 개울가나 들러리, 병아리가 있음직하지 않고(실재하더라도) 닭도 아닌 들오리가 병아리를 왜 품겠을까. 것도 심심해서.. 이건 완전히 부조리한 정황이다. 풍자냐 해탈이냐!? 김수영의 이란 표현은 아. 김수영 하게 된다
익명(222.106)2023-09-23 20:56
4.19_ 내겐 잠이 와 죽겠다는 게 시시하고 지리멸렬한 감정이나 의식을 쉬고싶은 한숨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 술어와 접속사 양기능을 하는 것 같아 읽는 호흡이 재밌다. 시가 쓰인 1961.4월 상황을 찾아봤다.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참 답답한 상황이었다 4.19 시 같은 것 안 쓰고 싶다며 쓰고 있는 역설..
익명(222.106)2023-09-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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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답보 끝에 개인이자 소시민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책망없이 바라보며 자신의 시를 4.19시 아닌 ‘4.19 시 같은 것’이라고 비하함으로써 지리멸렬해진 당시 상황을 선연히 전하고 있다. 1달 후 5.16이다.
익명(222.106)2023-09-23 21:44
답글
1음시발(mw02658)2023-09-26 12:32
이쯤에서 김수영 시도 아름다울까 생각해 봤다.. 김수영 시에 쫌 질려가던 중이었음. 찌질하고 약한 독백체가 4.19 이후 상황을 더 감각(+인식)하게 해 주긴 함. 머 독회는 김수영 만세라고 교조하자ㅎ
쌀난리 / 머리가 비어도~ 온몸으로 살지 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니체의 몸 철학이 생각난 건 아주 샛길로 빠진 것은 아닐테다. 김수영은 대구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를 이 시를 썼고 몸 철학과 닮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이처럼 이런 혁명 비슷한 것은 교육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것이라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 행에서 꺼림직한 염세가 느껴졌다. 진짜 의도가 어떻던 간 여태 이런 그의 시들을 봤을 때 그렇게 평화로운 의미는 없을 듯 싶다.
연꽃 / 연꽃으로 시작해 해골로 끝나는 데에는 긴장해야 만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꽃이 나오는 연의 끝 과 해골이 나오는 연의 시작에서 ‘사랑’이 있다. 이런 연결이 과연 우연일까? 그의 시선에는 사회주의 동지들이 가혹한 수행을 하다 끝내 파계승이 된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황혼 / 공연한 이야기와 전화를 두고 돈을 가지고 떠난 자의 모습이 해외의 것이라는 묘사에서 시가 쓰여질 당시와 전집 기준 103번 째 이 즈음을 보면 한 인물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 이다. 최대한 그 사람은 멀리 두고-사실 불가능 한 거겠지만-황혼과 반동에 집중해보려 한다. 하필 반동과 객소리가 이어져 있어 이 반동은 정말로 물리법칙의 그것이 된 듯한 느낌이어서 싸늘한 눈초리가 느껴진다. 잠시 2연으로 넘어가 보면 하필 들오리가 있는 곳은 시베리아고 생명이 태동하는 장소는 고작 개울가이며 그 생명체 마저 병아리다. 개울가에 사는 들오리가 낳아봤자 병아린데 사는 곳도 시베리아다. 그런 작은 움직임의 이유조차 심심해서로 이 모든 걸 괄시해버리는 것으로 끝이난다. 다시 1연에 와서 2연의 내용을 연결 한다면 뭐
심은데 뭐 난다고 말하는 꼴이 돼 버리지만 그의 혹독한 침은 몹시 따가울 것이다.
4.19 / 밥보다도 잠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당장의 생활의 빈약함 보다 사상적 배부름이 필요하다는 말로 보인다. 이전의 그의 4.19. 시를 읽어왔을 때 이런 주장은 반복적으로 조금씩이나마 했다고 생각한다. 따분한 세계정부 이상과 보스토크의 귀환이 나열된 건 분명 의도적인 배치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피곤한 시인은 일부러 뒷짐지고 계속 그러나 그러나 읊조리며 지루하다는 듯 하품 하고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이 시인에게 큰 분기점을 강제한다는 건 조금 잔혹한 부조리같다.
연꽃_ 내가 시를 쓴다면, 릴케가 장미를 썼듯 언제나 연꽃에 대해 쓸 것이다. 의외로 그 시기 사회주의 인물들이 남아있었나 보다. 김수영은 덥뻑하지 말고 또 너무 긴장하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나. 연꽃은 물에서, 진흙에서 피는 불꽃이다. 혁명의 불꽃과 고뇌가 있고 흙에 결속된 인간과 사랑이 있다. 허나 작란과 해골로 귀결되었던 해방 전후의 참혹했던 역사
에 대한 기억의 감각, 그 냄새, 죽음의 형상을 상기한다. 긴장하지 말라는 양가적 의미 같다 너무 어려워말고 인간사랑으로 움직이라 버뜨 긴장, 긴장하라 심정적 동지들 09.23 19:01
김수영 시에서 은근 고전 문학이나 불교 철학 종종 나오드라
불교사상은 난 잘 못 느낌. 연꽃에서 시작해 해골로 끝나는 장면을 나처럼(마치 실증주의자? ㅋ) 보지 않으면 좀 더 아름다운 인상을 받을 것 같다
쌀난리_ 몸의 불만과 난리를 혁명의 연장선에서 사고하는 의식에 조금 놀랐다. 김수영은 리버럴리스트일 거라 생각했는데 왼편으로 살짝 당겨보아야 하나 싶다 좀 시 외적이 되었나 ㅎㅎ
황혼_ 마지막 연의 주체가 모호하면서 재밌다. 시베리아라는 불모지에 정겨운 개울가나 들러리, 병아리가 있음직하지 않고(실재하더라도) 닭도 아닌 들오리가 병아리를 왜 품겠을까. 것도 심심해서.. 이건 완전히 부조리한 정황이다. 풍자냐 해탈이냐!? 김수영의 이란 표현은 아. 김수영 하게 된다
4.19_ 내겐 잠이 와 죽겠다는 게 시시하고 지리멸렬한 감정이나 의식을 쉬고싶은 한숨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 술어와 접속사 양기능을 하는 것 같아 읽는 호흡이 재밌다. 시가 쓰인 1961.4월 상황을 찾아봤다.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참 답답한 상황이었다 4.19 시 같은 것 안 쓰고 싶다며 쓰고 있는 역설..
1년여의 답보 끝에 개인이자 소시민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책망없이 바라보며 자신의 시를 4.19시 아닌 ‘4.19 시 같은 것’이라고 비하함으로써 지리멸렬해진 당시 상황을 선연히 전하고 있다. 1달 후 5.16이다.
이쯤에서 김수영 시도 아름다울까 생각해 봤다.. 김수영 시에 쫌 질려가던 중이었음. 찌질하고 약한 독백체가 4.19 이후 상황을 더 감각(+인식)하게 해 주긴 함. 머 독회는 김수영 만세라고 교조하자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