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나 천민이 지식을 쌓으면 생각이 깊어지고 사고를 하게되서 그들의 반란이나 봉기를 원하지 않는 상위층이 금지시켰다는 설도 있고
단순히 종이라던지 활자?라던지 재료가 되는것들이 매우 비싸서 책이라는 자체가 상위층의 전유물이었다는 주장도 있던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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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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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말한 두가지 주장중 전자쪽이라고 보는거노?
익명(106.101)2023-09-24 05:20
농사지어야되는데 책 읽으면 우야노? 그래도 어딜가든 범법자는 존재하지 ㅇㅇ
익명(219.241)2023-09-24 05:33
난 중세에 평민이 책 읽는게 금기시 됐다는 얘기는 처음들어봄.
그냥 그럴 형편이 안됐던게 크지 않을까? 유럽이면 양피지를 주로 썼기 때문에 책이 완전 사치품인 시절이고, 전근대는 동서양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까막눈이라
익명(222.101)2023-09-2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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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란이나 봉기를 일으킬만한 내용의 책들은 어차피 금서취급이라 상위계층 사람들도 못보거나, 괜히 봤다가 구설수에 휩싸임. 주원장만해도 맹자에 불순한 내용있다고 검열된것만 유포시키려고 하고 그랬어. 나중에는 흐지부지 됐지만
익명(222.101)2023-09-24 05:38
답글
반대로 백성 교화목적으로 삼강행실도처럼 한글에 삽화까지 첨부해서 보라고 각 지방에 배포하는 책들도 있었고ㅇㅇ
익명(222.101)2023-09-2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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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평민이나 천민 노비들이 대부분 까막눈이었던 이유는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였을까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하위층에게는 글공부를 시키지 않은걸까
익명(125.141)2023-09-24 05:41
답글
한글 창제 이전에 한문쓰던 시절 말하는거임
익명(125.141)2023-09-24 05:41
답글
셰익스피어만 해도 내가 알기로는 평민출신임. 그런데 이 사람 집안형편이 괜찮아서 당대 기준으로 고등교육 받았음. 그래서 책을 읽는걸 넘어서 명작들을 남겼잖음.
익명(222.101)2023-09-24 05:43
일단 당시 사람들도 우리만큼 똑똑했단 걸 고려하면 그들도 사회 구조 상 얼마만큼의 엘리트와 얼마만큼의 육체노동자가 필요한지 이해하고 있었겠지. 조선시대에 평민이나 노비가 공을 세워서 나라에서 상을 내릴 때도 양반들의 격한 반대로 '과거시험"만은 못 치게 했다고 함. 또한 양반도 몇대째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 신분을 박탈당하기도 했다고 함.(초기에만) 아마 사회 계층의 이동과 자유 경쟁을 두려워해서 그런 게 아닐까?
공포의떡볶이(badamiso)2023-09-24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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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로마자를 쓰는 서구권은 문자 보급을 통제하기가 엄청 어려웠을 거니까. 문맹률이 높았던건 전적으로 평민들 입장에서 문자를 배울 동기가 없었으니까? 사회도 많은 두뇌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공부해서 성공한다는 인식도 없었을거고. 사회가 고도화되고 프로이센이 처음으로 국민 교육을 시작했다고 들음. 프로이센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국가였고 매우 적은 인구로 고급인력들을 최대한 키웠어야 했음. 프로이센의 성공 이후로 유럽국가들이 국민들을 국가가 교육시키는 편이 효율이 좋구나 싶었지 않을까 싶음.
공포의떡볶이(badamiso)2023-09-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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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상을 내려도 과거 자체를 못 치게한건 처음알았네
양반가에서는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의 세습 또한 이루어졌겠군
익명(125.141)2023-09-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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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 진짜 역겹네 ..
부산좀비(49.165)2023-09-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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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비가 공을 세우고 상을 받았음? 지금도 응시자격 있는 시험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고 응시조건을 면제하는 특혜를 받으면 수험생들이나 그 맘들이 벌떼마냥 형평성 운운하며 들고 일어 날거 같은데?
중세시대 성경 한권에 집 몇채 가격 이었음.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하나하나 손으로 써야돼서. 중세 유럽 대학 도서관에도 책 몇백권 밖에 없었고 귀해서 자물쇠 달려있고
익명(222.98)2023-09-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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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회형태나 구조도 다른게 큼. 근대 이전에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농사같은걸 하면서 지냈음. 당연히 의무교육이라던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지. 지금처럼 보통사람들이 공부하면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사업가도하던 시절이 아니라는 거임. 공부할 필요가 없는거지
익명(222.98)2023-09-24 08:09
나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에게 큰 해를 끼쳐도 된다는 감각을 가진 이들이 없잖았지
닉네임(1.230)2023-09-24 08:10
책읽는게 금기시됐다는건 어디서 본 정보임?
익명(106.101)2023-09-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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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 들음
익명(211.225)2023-09-24 10:15
금기가 문제가 아니고 일단 대부분 평민은 문맹이었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책 자체가 너무 비싸서 유통이 안됐을텐데
익명(220.65)2023-09-24 10:47
나도 금기였단 말은 첨 들어봄. 일단 농사지어야 하는데 방구석에서 책이나 읽고 있으면 부모님한테 뒤지게 맞음 + 책이 비쌈 이거 아닌가
익명(aptx4869s)2023-09-24 11:28
서양 중세에는 고위 신분이나 사제 외엔 글씨 읽을줄 아는 사람이 적었다고 해 귀족 중에도 못 읽는 사람도 있었대 그러니 평민은 오죽 했겠냐 그리고 책이 너무 비싸서 집 한 채 가격이었고, 아예 못 가져가게 쇠사슬로 묶어놓을 정도의 고가품이었다고 해 그러니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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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말한 두가지 주장중 전자쪽이라고 보는거노?
농사지어야되는데 책 읽으면 우야노? 그래도 어딜가든 범법자는 존재하지 ㅇㅇ
난 중세에 평민이 책 읽는게 금기시 됐다는 얘기는 처음들어봄. 그냥 그럴 형편이 안됐던게 크지 않을까? 유럽이면 양피지를 주로 썼기 때문에 책이 완전 사치품인 시절이고, 전근대는 동서양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까막눈이라
그리고 반란이나 봉기를 일으킬만한 내용의 책들은 어차피 금서취급이라 상위계층 사람들도 못보거나, 괜히 봤다가 구설수에 휩싸임. 주원장만해도 맹자에 불순한 내용있다고 검열된것만 유포시키려고 하고 그랬어. 나중에는 흐지부지 됐지만
반대로 백성 교화목적으로 삼강행실도처럼 한글에 삽화까지 첨부해서 보라고 각 지방에 배포하는 책들도 있었고ㅇㅇ
음 평민이나 천민 노비들이 대부분 까막눈이었던 이유는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였을까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하위층에게는 글공부를 시키지 않은걸까
한글 창제 이전에 한문쓰던 시절 말하는거임
셰익스피어만 해도 내가 알기로는 평민출신임. 그런데 이 사람 집안형편이 괜찮아서 당대 기준으로 고등교육 받았음. 그래서 책을 읽는걸 넘어서 명작들을 남겼잖음.
일단 당시 사람들도 우리만큼 똑똑했단 걸 고려하면 그들도 사회 구조 상 얼마만큼의 엘리트와 얼마만큼의 육체노동자가 필요한지 이해하고 있었겠지. 조선시대에 평민이나 노비가 공을 세워서 나라에서 상을 내릴 때도 양반들의 격한 반대로 '과거시험"만은 못 치게 했다고 함. 또한 양반도 몇대째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 신분을 박탈당하기도 했다고 함.(초기에만) 아마 사회 계층의 이동과 자유 경쟁을 두려워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일단 로마자를 쓰는 서구권은 문자 보급을 통제하기가 엄청 어려웠을 거니까. 문맹률이 높았던건 전적으로 평민들 입장에서 문자를 배울 동기가 없었으니까? 사회도 많은 두뇌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공부해서 성공한다는 인식도 없었을거고. 사회가 고도화되고 프로이센이 처음으로 국민 교육을 시작했다고 들음. 프로이센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국가였고 매우 적은 인구로 고급인력들을 최대한 키웠어야 했음. 프로이센의 성공 이후로 유럽국가들이 국민들을 국가가 교육시키는 편이 효율이 좋구나 싶었지 않을까 싶음.
와 상을 내려도 과거 자체를 못 치게한건 처음알았네 양반가에서는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의 세습 또한 이루어졌겠군
양반들 진짜 역겹네 ..
어느 노비가 공을 세우고 상을 받았음? 지금도 응시자격 있는 시험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고 응시조건을 면제하는 특혜를 받으면 수험생들이나 그 맘들이 벌떼마냥 형평성 운운하며 들고 일어 날거 같은데?
어디서 들은건진 모르겠지만 조선의 신분제는 법적으로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는 양천제(양인과 천민만 구분함)였고 상민 출신 과거 급제자도 많음.
https://www.donga.com/news/List/article/all/20130122/52512357/1
이 링크는 과거시험 응시자가 아니라 과거시험 급제자 중 대략 3분의 1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다고 밝히고 있음.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분제는 무지한 자들에게나 먹히는 것이니까
엄..
문맹률이 너무 높고 인쇄술 발달하기 전까지는 책 보기도 힘들었음
중세시대 성경 한권에 집 몇채 가격 이었음.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하나하나 손으로 써야돼서. 중세 유럽 대학 도서관에도 책 몇백권 밖에 없었고 귀해서 자물쇠 달려있고
그리고 사회형태나 구조도 다른게 큼. 근대 이전에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농사같은걸 하면서 지냈음. 당연히 의무교육이라던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지. 지금처럼 보통사람들이 공부하면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사업가도하던 시절이 아니라는 거임. 공부할 필요가 없는거지
나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에게 큰 해를 끼쳐도 된다는 감각을 가진 이들이 없잖았지
책읽는게 금기시됐다는건 어디서 본 정보임?
나도 처음 들음
금기가 문제가 아니고 일단 대부분 평민은 문맹이었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책 자체가 너무 비싸서 유통이 안됐을텐데
나도 금기였단 말은 첨 들어봄. 일단 농사지어야 하는데 방구석에서 책이나 읽고 있으면 부모님한테 뒤지게 맞음 + 책이 비쌈 이거 아닌가
서양 중세에는 고위 신분이나 사제 외엔 글씨 읽을줄 아는 사람이 적었다고 해 귀족 중에도 못 읽는 사람도 있었대 그러니 평민은 오죽 했겠냐 그리고 책이 너무 비싸서 집 한 채 가격이었고, 아예 못 가져가게 쇠사슬로 묶어놓을 정도의 고가품이었다고 해 그러니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