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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바커의 호러 단편 <언덕에, 두 도시>(<피의 책> 수록)에는 이런 소재가 나온다. 온 마을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날, 모두 한데 모여 자기들의 몸을 밧줄로 이어 붙이고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만들어 마찬가지로 그러한 형태를 취한 건너편 마을과 전투를 벌이는 풍습. 머리 부분을 구성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래쪽으로 갈수록 버텨내야 하는 부하는 높아지고, 거인이 아무렇게나 움직일 때마다 근육과 힘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신축되는 묘사는 섬뜩하기 짝이 없다. 아마 이 거인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위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이런 풍습이 계속되지도 않았을 것도 아마 분명할 테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된다. 흥미롭게도, <극장국가 느가라>가 묘사하는 19세기 발리의 정치체제는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19세기 발리의 정치체제 그 자체에 관심 있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다. 덕분에 저자 역시 발리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은 최대한 미주로 몰아넣어 읽고 싶은 사람은 이것도 읽고, 그쪽에는 관심 없는 사람은 미주 없이 본문만 읽어도 충분하도록 책을 구성해두었다. 그래서 이 본문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발리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정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던 것은 단지 통상적으로 승인되는 구체적 권리들이 결절되어 있는 그물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아시아식 생산양식"이라고 말하는, "수리농업을 하면 관개를 조직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생기"며 "엘리트의 출현 및 권력의 집중화로 귀결"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발리의 왕실을 정의하는 종교적 존재론과 함께, 실질적인 일을 하는 자그마한 공동체들을 동시에 설명한다. 먼저 후자에 대해서 이야기도록 하겠다.
수박Subak이라고 불리는 "수리 조직, 물관리 조직. 지역적 경작의 기초 단위"는 강의 상류에서 시작해 논에 도달하기 전까지 서로 다양한 자리에서 물의 흐름을 관리한다. 하지만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고유한 의미에서 생산조직으로 기능한 적"은 없다. 그저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는 개별 농민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수박은 노동의 맥락을 설정해줄 뿐"이다. 하나의 논에 물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박의 관할 구역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수박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다만 이것은 실질적으로 중앙의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마치 먼 옛날 누군가가 거대한 수로로서의 마을의 기능을 설계한 것처럼, 그들은 일상적으로 자기들이 맡은 곳에서 자신의 할 일을 조금 했고, 마저 자기의 농사로 돌아갔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발리의 지정학적 상태가 발리 국가조직의 통일을 방해한 것도 있지만, 그러한 방해 속에서 이룩된 특이한 종교적 존재론이 있었던 탓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으로부터 내려온 존재"이지만, "신성에서 출발한 지위가 단순한 인간성으로 쇠락해왔으며, 이 과정을 통해 엄청나게 복잡한 현재의 위세 순위 체계가 형성되었"고, "카1스트 체계"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칭호 체계"는 "칭호에 의해 표시되는 각자의 서열"로 "그 사람의 부계가 신성한 조상들로부터 보다 덜 존엄한 신분으로 점진적으로 하락해온 신화적 역사를 반영한다". 이 쇠퇴 속에서 "인간의 노력들, 특히 영적 지도자와 정치적 지도자들의 노력은 역사를 뒤집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사건들이 교정될 수 없듯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념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이상적 상태로부터 연속적으로 후퇴하는 것을 기념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리인들은 오히려 역사를 무효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곧, 중국의 요순 시대와 유사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겔겔과 마자빠힛 사람들이 그 시대의 인생 지침으로 삼았던 문화적 모범을 가능한 한 강력하고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재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왕과 사제는 그 재표현을 위한 국가의례의 중심에 있었지만, "왕과 왕을 둘러싼 궁정, 그리고 궁정을 둘러싼 나라 전체는 자신을 그 이미지들이 규정했던 질서에 대한 모사품으로 변형시켜야만 한다". "발리의 국가 체계 안에는 직원이 사실상 거의 없었고 마찬가지로 관리직도 전혀 없다시피 했"으며 "실질적으로 행정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책이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느가라의 괴상한 역설을 이루는데, "누군가가 권력의 이미지화로 가까이 갈수록 그 사람은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생긴다는 역설이다". 발리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다고 여겨지는 문화적 모범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고 여겨지는 실재적 조정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사회"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다시 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실재"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외려, 발리에서의 정치체제는 이 종교적 중심과 실재적 중심을 두 축으로 두고 구성되었고, 쌍방은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다는 듯 전제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라는 개념은 신분, 위엄, 통치술의 세 주제를 품고 있는데, 근대적 정치담론은 마지막 통치술에 방점을 찍으며 정치의 사회적인 지배와 상징이라는 "매개물에 올라타서 움직이는 의미"를 완전히 분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19세기 발리의 사례는 실재적인 행정적 절차와 별개로 의례 속에서 구현되는 지위를 통해 어떤 상징적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연극이 온 삶을 사로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권력의 드라마가 권력의 작동으로부터 외재적이라는" 19세기 사회과학의 형이상학적 망령을 내려놓고 "실재적인 것은 가상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상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설득한다. 이 주장은 지금에 와서 더 흥미롭게 들리는데, 현대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적 기획의 실패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수출되기 위해 미국 독립 당시의 선언에 담겨 있던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상징을 제도로부터 분리해야만 했고, 그 결과는 비단 다른 나라들에서 이 수출된 제도가 그리 잘 작동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미국에서조차 자신의 정치체제를 위선적이거나 문제적이라고 느끼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최근 여러 자유민주주의의 기원과 현대의 병폐에 대한 수호, 그리고 그 대안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현대 자유민주주의 학자들의 수호에는 의미가 너무 없으며, 반대로 대안들에는 실재가 없다. 왜 인권이 그렇게나 근본적으로 수호해야 하는 것이고, 왜 자유가 그렇게나 다른 모든 것들에 비해 우선권을 가지고, 왜 평등을 위해서 전체적인 이익을 포기해야 하느냐에 대한 이유. 그러니까, 그렇게 아득바득 더 오래 사는 것에만 중점을 뒀을 때 사실 나올 말이 그리 많지는 않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불리는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만 해도, 요점은 결국 이것보다 나은 체제는 딱히 없다는 것이고, 다른 이들 역시 반농담삼아 민주주의는 대안이 없는 차악책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 그런 의미 없는 단언에 대한 반동이 <자본주의 리얼리즘>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회귀나 신반동주의, 근본주의 같은 의미는 가득한 대안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점에서는 예전에 읽은 칼 슈ㅁ1트의 <로마 가톨릭주의와 정치형태>가 흥미로웠는데, 이 자유의 근본을 종교 전쟁을 멎고자 종교를 사적인 곳으로 밀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자유에서 기인했다는 계보학적 분석이었다.)
P. S. 사실 이 글을 보고 읽어보게 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유익했다.
글 진짜 너무 좋네요
저 트윗을 본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 재고가 남았구나
재밌어보이네 꼭 읽어봐야겠다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