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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의 추석날 달밤에」



  순 무명의 흰 이 홑바라지 입고

  어디로 가랴?

  어디로 가면 똑바로 가는것이냐?


  다섯살때 추석날밤에

  그 휘영청하던 밝은 달밤에

  할머니가 따다가 내입에 물려주신

  풋대추!

  그 풋대추 그리워

  이 추석에도 그걸 한됫박 사다가 놓았느니


  이거나 하나 이밤도 입에 물고

  어디로 가랴?

  어디로 가면

  똑바로 가는것이냐?



-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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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김현 공저의 『한국문학사』에는 당시 서정주의 근작 가운데 「연꽃 위의 방」과 「칡꽃 위에 뻐꾸기 울 때」를 각각 서정주가 당시 보이던 거짓 화해의 손짓과 그 손짓 속에서도 언뜻 보이는 일말의 도덕성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에서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전자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지만, 『신라초』와 『동천』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두 시집 속에는 자족의 혐의가 없지 않은 관념적 구축의 시들이 있는 한편으로 이러한 관념적 의도와는 무관한 생활인으로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경향의 시들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칡꽃 위에 뻐꾸기 울 때」도 바로 그런 작품의 하나이다.


세상살이를 도상(途上)에 비유하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칡꽃 위에 뻐꾸기 울 때」는 그런 도상에 선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아주 간결 명확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에 비하면 다소 평범하긴 하지만 이후 30여 년 뒤에 씌어진 「80세의 추석날 달밤에」 역시 도상에 선 인간으로서의 인식을 다시금 표현해본 시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의 시인이 '세계의 끝으로' 앞서 걸어가는 이를 따라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면, 30년 후의 시인은 반대쪽 시선을 향해 과거를 초심처럼 추억하며 '어디로 가야 똑바로 가는' 것인가를 되뇌이고 있다. 80세가 되어도 이러한 고민은 들게 되는 법이며, 또 이러한 고민은 80세가 되어도 해결되지 못하는 법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