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은 '제국'이 만들어내서 퍼뜨리는 모순된 현실을 정확히 응시하고 살아가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무능력함을 이지적 논리로 포장한 존재가 전면화되어 이끌어간다.


따라서 이문열의 작품은 <황제를 위하여>(민음사 펴냄)의 '백제 실록'이나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예수'처럼 비록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나 심지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변화무쌍한 현실을 벗어나 존재하는 하나의 완벽한 논리와 대응될 때만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도 아니라면 평역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랜 세월을 견디며 생명력을 가진 논리의 수정·보완을 통해서만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사실 이문열의 소설 세계를 몸 바꾸며 이끌어 가는 존재가 현실과 유리된 허공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존재가 구체적 현실에 던져지는 순간, 오히려 우리가 애를 쓰며 살아가는 현실의 모든 의미들은 순간 무화되고 만다.






이것이 내가 이문열의 오딧세이아 서울을 그 시대에 실시간으로 읽을 때 실소하고, 지금에 와서 그 시대를 살지 않았으면서 그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아 90년대는 이런 정서였구나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게 매우 위험하다는 면에서 개차반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이유지.


그리고 심지어 저 평역소설의 생명력이란 것도 삼국지 연구자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문열 삼국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생각하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